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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반빈곤통문12호]신용불량자? 금융채무불이행자?



지난 7월 11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금융채무 연석회의)'는 불법채권추심의 실상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을 해야 할 금감원의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금융피해자에 대한 불법채권추심 근절과 인권보장을 위한 집단민원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왜 이들은 ‘금융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신용불량자’ 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95년 4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가 폐지되면서 ‘금융채무 불이행자’ 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용이 불량하다는 표현이 한 인간을 신용의 문제아로 낙인찍음으로써 온전한 개인의 인권마저 침해할 소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아직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금융채무 불이행자 역시 신용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개인에게 자산과 신용을 적절히 관리를 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며 신용불량을 벗어나고 싶으면 스스로 빚을 청산할 것을 부단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작금에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부채와 채무의 문제가 단지 한 개인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소위 ‘금융채무 불이행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금융피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빈곤의 늪, 늘어만 가는 이자율과 가계 빚

 

99년 금융피해자가 200만명 정도였던 것이 2001년 245만, 2002년 263만, 2003년 327만, 급기야 2006년에는 40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12월 362만명으로 추계한 이후 현재까지 그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동안 신규 신용회복 신청자중 월평균 소득 100만원이하 극빈층 금융피해자의 비중은 지난 2003년 2월 16.9%에서 그해 11월에는 51.9%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50%를 넘었고 2005년 4월에 60%대에 이르렀다. 월 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금융피해자 수’ 는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채권추심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삼중고

'금융채무 연석회의’의 자료에 따르면, 채무자 2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응답)를 한 결과 응답자중 236명(82.2%), 즉 10명중 8명 꼴로 마치 법적권한이 있는 것처럼 위조된 ‘강제집행착수통보서' 를 받는 등 불법채권 추심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 빚의 고통과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중고에 민중들은 불법채권추심으로 인한 인권침해의 고통까지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채권추심’ 업무라 함은 제3자가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서 채권자를 대신해서 채무자에 대한 재산조사와 변제촉구 및 변제금 수령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신용정보의 이용및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적으로 규정되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실효성이 의심될 만큼 그 제한범위를 넘어서 채무자에 대한 신체적 폭행과 협박뿐만 아니라 채무자의 보증인과 가족 및 친척, 그리고 직장 동료에게까지 채무에 관한 허위사실을 전화, 우편, 방문 등을 통해 유포하고, 공포심과 불안감을 조장함으로써 채무자가 온전한 인간으로 생활하기가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단 한번이라도 카드사로부터 카드연체로 인한 독촉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피해자!!

 

한국에서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노동력 유연화는 소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인 비정규직을 급격히 양산했고 현재 그 수가 800만을 넘어서고 있으며,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수준에 이른다. 따라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빈곤할 수밖에 없거나 심지어 일을 하지 못해 소득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게 되었다.
반면 정부는 내수시장 활성화의 명분하에 금융자본에게 무분별한 카드발급의 자유를 제공했고 99년 현금서비스 관련 규제 철폐로 대표되는 신용카드관련 규제 완화를 계기로 신용카드 회사들의 경쟁이 시작되고, 이들은 신규카드 발급 및 신용카드 이용액과 채권 잔액의 증가 등 무분별한 정책들을 제시하였다.
한편 98년에는 25%로 제한해오던 이자제한법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대부업자나 사채업자들은 무한대의 금리를 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 하루 1% 이자를 요구하는 업체부터 평균 230%, 최고 1000%가 넘는 업체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민중들이 고금리로 만신창이가 되자 정부는 2002년 10월 ‘대부업법’을 제정해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66%로 제한하였다.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소위 서민형 금융기관들조차 시중 은행 못지않은 까다로운 대출심사기준으로 인해 급전이 필요한 민중들과 더 이상 제도금융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민중들의 경우, 사금융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사금융의 이러한 고금리로 인해 원금에 복리로 연체이자까지 붙는 통에 채무자가 빚을 갚기는커녕 빈곤의 악순환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이 금융자본과 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부실 책임의 몫까지 ‘신용불량’이라는 이름으로 떠안고 있는 ‘피해자’ 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신용의 문제로 인해 모든 인권적 권리가 박탈되고 차별과 배제가 용인되는 현실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과도한 고금리를 제한하고 불법채권추심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요구하는 1차적 인식의 틀이 금융채무의 문제를 정권과 자본에 의해 양산된 피해로서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되는 맥락에서 진행될 때 보다 획기적 변화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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