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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인권을 침해하는 의료급여개악

 

지난 연말부터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급여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개악안을 확정짓고, 이후 규개위 제출-법제처 심사-국무회의제출 확정 등의 과정을 거쳐 2월 중순에 공고를 하고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참 나쁜' 장관이고 '참 나쁜' 정책이다.

아래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요청을 해와 작성한 글이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인권을 침해하는 의료급여 개악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은 신년사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소홀”히 한것을 반성하면서 올해 목표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된 ‘사람’에 ‘의료수급권자’는 제외되어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을 합리화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급여제도혁신이 그것이다. 혁신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입원이나 외래진료때 본인부담이 없던 의료급여 1종 수급자에게 본인부담금 1000원, 약국이용시 500원을 부담지우고 건강생활유지비를 한달에 6000원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월 2만원 이상이면 초과액의 50%를 지원하는 본인부담보상제와 월 5만원 초과금액은 전액을 지원하는 본인부담상한제로 환불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급여일수가 365일을 초과하는 경우 급여를 제한할 수 있는 수급자를 대상으로 선택병의원제도를 도입한다. 셋째, 의료급여증을 플라스틱카드로 바꾸어 수급자의 의료급여기관 이용실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정책을 실시하게 된 배경으로 의료급여비용의 급증을 들고 있다. 실제로 의료급여 진료비는 2005년 3조 2370억원으로 2001년 1조9495억에 비하면 66%가 증가하였다. 건강보험이 같은 시기에 39% 증가한 것에 비하면 두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의료급여비용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정부가 차상위계층 중 희귀난치성 질환자, 만성질환자, 그리고 아동을 의료급여 대상자로 지정하는 바람직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다른 이유로 의료급여수급자가 필요 이상으로 병원이용이 너무 잦고, 한번 이용할 때 많은 진료비를 소요하는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의료를 과잉이용한다는 것은 왜곡된 것임을 정부 스스로 실토한 바가 있다. 작년 12월 입법예고안을 발표할 때 의료급여환자가 건강보험 환자보다 3.3배나 병원이용을 자주한다고 밝혔었다가, 올해 1월 1일 보도자료에서는 3.3배가 아니라 1.4배에 불과하다며 잘못된 통계였다고 정정한 바가 있다. 의료수급자들은 대부분이 노인이어서 여러질환을 갖고 있거나, 희귀난치성 질환 등 중증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일반 건강보험 환자보다 더 많이 병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의료수급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언급하면서 의료수급자를 마치 범죄자로 간주하고 책임을 지우는 오도된 사고에서 의료급여혁신을 강행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럼 정부의 의료급여혁신 내용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첫째, 의료수급자의 의료이용을  제한하여, 치료접근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 예로 캐나다의 경우 의료이용에 있어 무료였다가 본인 부담을 지운 결과 20%이상이나 의료이용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른 예로 본인부담이 없다 하더라도 고소득층에게 건강보험 50%의 본인부담을 지우는 것과 유사하며, 본인부담 25%를 지우면 고소득층에게 본인부담 95%를 지우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는 연구도 있다. 의료수급권자에 경제적인 문제는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의료이용에 있어 무엇보다 큰 장벽인 셈이다. 의료급여제도가 존재하는 일차적 이유는 저소득층에게 의료이용의 장벽을 없애고 적절한 진료를 통해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한정된 재원에서 재정의 운영을 하는데 있어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다. 보건복지부의 혁신내용은 의료급여제도 존재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대책인 셈이다. 정당하고 필수적인 의료이용마저 가로막는 장벽을 설치하는 것이다.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을 지급한다고 하나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의료수급자에게 본인부담을 지움으로써 절감되는 재정규모에 대한 조사나 실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도 제출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둘째, 의료급여일수가 365일을 초과하는 수급자를 대상으로, 약물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선택병의원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이를 주치의 제도와 비슷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주치의 제도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일차의료제도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이지, 여러 개의 병원이용을 제한할 목적으로 한 제도가 아니다. 실제로 의료급여일수가 365일을 초과하는 사례는 흔하다. 퇴행성관절염, 두통 등 여러 가지 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노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을 약물오남용의 당사자로 지목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더군다나 만개 이상의 파스를 이용하는 사례를 들면서 파스를 의료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조치까지 취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의료급여수급자에 대한 명백한 사회적 차별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플라스틱 카드의 도입은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2003년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증을 건강보험카드로 대체하려다가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재정 소요가 많이 될 우려가 있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부딪혀서 좌절된 바가 있다. 플라스틱 카드의 기능은 1종인지 2종인지, 본인부담대상자인지 여부, 선택병의원제 대상 여부 등을 확인할 목적으로 도입한다고 한다. 건강보험 대상자에게 이를 도입하는 것도 문제일뿐더러, 의료수급자에게 도입하려 한다는 것은 사회적 낙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게 뻔하게 예상되는 사회적 차별 조치이다.


유시민 장관은 작년 10월에 낸 ‘의료급여혁신에 대한 국민보고서’에서 ‘의료서비스의 오남용을 막기 위하여 일정하게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다른 국민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또 1월 12일에 진행된 시민사회단체 대표와의 면담에서 복지는 ‘사회적 최소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얘기한 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전근대적이고 반인권적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는 모든 국민들이 필요에 따라 경제적, 성별, 사회적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이와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이러한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사회적 최소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복지라는 인식은 천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서 통용되었던 철학이다.


잘못된 철학에 기반한 잘못된 처방은 ‘혁신’이 아니라 ‘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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