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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에 대한 국가인권위 의견표명

국민연금, 의료급여에 이어 유시민 장관이 건강보험에까지 손을 대었다. 이른바 '경증환자'에 적용되는 본인부담을 정액제에서 정율제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덧붙여 암 등 중증질환자의 본인부담은 경감한다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감기 환자 등에게는 본인부담을 더 늘리고(채찍?), 암환자 등에게는 당근(?)을 주는 이 정책은 얼핏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생각이 든다. 가벼운 질환의 환자에게 본인부담을 늘려 의료이용이 줄어드는 데에 따라 마련된 재정으로 무겁고 중한 질환과 6세 미만 아이의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이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보험료를 올리는 방법, 보험료 상한선을 없애는 방법, 의료공급자에 대한 통제를 가하는 방법(수가체계를 바꾸는 것) 등 여러가지 중에서 1만5천원 이하의 본인부담을 정액(현행 3000원)에서 정률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본인부담이 2-3000원 늘어나게 되고 그만큼의 보험재정의 여유가 생기는 방법을 택한 것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두가지 문제가 있다. 저소득층, 차상위 계층 등에게 이러한 본인부담의 증가는 의료이용을 하는 데에 장벽으로 작용한다. 2-3000원이 소득이 많은 계층에게는 작은 액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소득이 작은 이들에게는 커다란 액수이다. 저소득층은 조금 아픈 정도는 참고 견디라라는 것과 마찬가지 조치라는 것이다. 결국 병을 키우게 된다. 다른 하나의 문제점은 만성질환 같은 정기적으로 자주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의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득층과 만성질환 등의 의료이용을 제한한 조치로 중증질환의 본인부담을 줄인다는 이러한 정책은 전형적인 '아랫돌빼서 윗돌 메꾸는' 방안이다. 나중에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결과까지 초래하게된다.

 

이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본인부담을 부여하는 의료급여 개악조치와 맥을 같이하는 정책이다. 마침 국가인권위는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개혁에 대해 생존권과 의료접근권이라는 사회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의견표명을 하였다. 기간 의료급여개악에 반대하고 저항했던 인권사회운동의 작은 성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 16 금세기빌딩 12층
전화 02-2125-9973 / 전송 02-2125-9988 / 언론홍보담당자 : 김민아(right25@humanrights.go.kr)

<보도자료>
2007년 2월 15일(실무담당자 : 정책총괄팀 서현수 2125-9728)

「의료급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2006년 12월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의료급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하여 보건복지부의 의견 조회와 인권․건강․빈곤 관련 시민단체들의 진정 접수 등을 바탕으로 관련 사안을 검토한 결과, 이번 개정안은 ‘의료급여 수급권자’(과거 의료보호대상자)들의 건강권․의료권 및 생존권,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침해의 우려가 있고, 일반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등과 비교할 때 불합리한 차별적 소지도 존재하며, 국가의 최저생활보장 의무 및 공공부조의 원리에 저촉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이므로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급여 수급권자 및 관련 전문가 등과 충분한 사회적 토론 및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보건복지부 개정안은 최근 의료급여 재정 급증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면서 이 중 수급권자 관련 대책을 우선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외래 진료시 본인부담금 부과 및 매월 일정액의 건강생활유지비 지원, △의료급여일수 상한일수 과다초과자에 대한 선택병․의원제 실시, △단순치료보조제인 파스의 비급여대상 전환, △의료급여증의 플라스틱 카드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위원회는 정부의 의료급여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그동안 의료급여 재정이 대폭 증가해온 사정을 감안할 때 국가 재정의 합리적 개선책을 마련하고, 일부 불필요한 오남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번 보건복지부 개정안의 몇 가지 내용들은 대다수가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건강권 등 인권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검토 결과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1종 수급권자의 외래 진료시 본인부담금 부과 조치는 일부 오․남용 이용자에 대한 개별적 제한 조치가 아니라 1종 수급권자들의 병원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성격의 조치라는 점에서 다수 수급권자들의 의료 이용 접근성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다수 수급권자들의 건강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월 6천원 상당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선지원하여 본인부담금을 감당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한 환자 등 일부 수급권자들은 불가피하게 건강생활유지비 이상으로 본인부담금을 지출하여야 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로 인해 이들의 의료 이용 위축이나 생계 장애 등 피해 규모에 대한 추계나 보완 대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도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가 높은 수준이어서 개선 과제로 논의되어온 점을 감안할 때, 1종 수급권자에게까지 본인부담금을 부과하여 추가적 의료비가 지출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최저생활보장 의무에 위배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둘째, 선택병․의원제도 역시 본인부담금 면제를 조건으로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1종 수급권자의 의료기관 이용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의료급여기관 선택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됩니다. 이처럼 당사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제도를 취약 계층인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은 차별적 소지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셋째, 만성질환자와 노인질환자가 많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특성상 필수적인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파스 품목을 비급여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은, 일부 오․남용 자에 대하여 수급권자 사례관리나 공급자(약국 등) 규제 등을 통해 충분히 개선 가능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에게 획일적인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과잉 침해의 소지가 우려되고, 파스에 의존해야 하는 일부 수급권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켜 의료 접근성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넷째, 의료급여증을 플라스틱 카드화해서 수급권자의 신상정보를 담고, 진료 전에 수급권자의 자격 여부 등을 확인하고 진료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에 대하여도, 이러한 시스템 구축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제시되지 않고 있는 점에서 개인정보의 침해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와 비교할 때 차별적인 측면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 규약’) 제12조는 건강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보건시설,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비차별적인 접근, 특히 취약집단이나 주변화된 집단을 위해 비차별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규약 당사국의 ‘최소 핵심 의무(the core obligation)’ 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사회권 규약에 포함된 각 권리의 최소 필요수준을 충족시킬 것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 핵심 의무’가 모든 당사국에게 부과되고 있으며, 최소 핵심 의무의 침해는 국내 법원에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일반논평 3. 당사국 의무의 성질” 및 “일반논평 14. 도달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 등 참고.
이고, 건강권의 필수적 요소인 ‘접근성’(accessibility)에는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접근성(부담가능성)이 포함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살펴본 의료급여 수급권자 대상의 본인부담금 부과, 선택병의원제의 도입, 파스류의 비급여화, 의료급여증의 플라스틱 카드화 등과 같은 조치는 사회권 규약의 당사국으로서 최소 핵심 의무에 저촉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이므로 정부의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상과 같은 판단에 기초하여 우리 위원회는 이번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담고 있는 일부 인권 침해적, 차별적 요소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제도의 도입과 변경을 추진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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