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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눈 내린 제주의 모습

"여보세요"

 

"나여, 별일 어시냐? 미깡 보내신디 받아시냐?"

 

"네..받았쑤다. 집엔 별일 어쑤광?"

 

"여긴 눈 내렸쪄...많이 추웡이넹...거긴 눈 안 와샤?"

 

"여긴 춥긴 추운디..눈은 안 내렸쑤다.."

 

 

오늘 오전 모자간의 대화다...눈 내린 제주의 모습이 인터넷 뉴스싸이트에 떠 있길래 퍼 올린다...

 



저 눈 속에 아픔을 묻어버리고 싶다
[포토에세이] 제주도 동북지역 중산간지역의 눈 내린 풍경

 

김민수 시민기자 gangdoll@freechal.com

2004년 12월 31일 11:46:17

 

   
▲ ⓒ김민수

다랑쉬오름이 하얀 눈으로 새단장을 했습니다.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오름의 맹좌로 우뚝 서있는 오름에 오르면 그 어딘가에서 마음졸이며 모진 삶을 살아갔던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내가 걸어가며 남기는 그 발자국 아래 이미 지워진 또 다른 발자국들의 무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여 한 걸음을 뛰는 것 초자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손만 대면 날선 이파리로 살갗을 베어놓던 억새의 이파리가 세월의 무게를 뒤로하고 부들부들 부드러워졌습니다. 그 부드러운 이파리에 눈을 이고 조용하게 누워 어머니 대지와 호흡을 하며 자기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하략

김수영 시인의 '풀'

   

망자의 무덤에도 눈이 내리고 저 깊은 땅으로 흘러 들어가 풀과 들꽃으로 다시 피어났을 망자의 육신의 남은 뼈들에 새 살이 돋고 핏줄이 돋아날 날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죽어진 것들을 죽이는 부활이 우리의 삶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인에게 있어서 돌담은 삶의 흔적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들이 하나 둘 쌓여 바람과 동물들의 침입을 막고, 경계를 이루었듯이 우리 삶 어딘가에 쳐진 돌담들로 인해 서로 막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성한 돌 틈 사이로 통해 서로를 살리는 그런 돌담들, 자기를 지키는 돌담들을 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아픔이 몰려와도 절망할 수 있으니까요.

   

이국적인 풍경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서있는 그 곳인데 내가 서있는 곳 같지 않은 현실 같은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행복해서, 때로는 삶의 무게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어도'도 이렇게 이국적인 풍경의 한 자락처럼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저 들판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들판의 끝자락과 맞닿은 하늘을 맑기만 한데 저 들판 끝에 서면 그 하늘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도가도 끝없는 만날 수 없는 하늘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서 있는 그 곳도 하늘과 만나고 있는 그 곳인데 내가 만난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매한 한 존재를 봅니다.

   

나무의 가장 나무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목의 가지들이 구름을 욺켜잡으려는 듯 하늘을 향했습니다. 나목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도 부끄럽지 않는 나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 새 봄을 잉태하는 비밀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도 남지 않은 올 해에 놓아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그러나 놓아버려야 사는데 놓지 못하는 내 욕심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습니다. 때로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치부를 다 드러내 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들,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능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도 감추어짐으로 더 아름다운 법인데 추한 것을 다 드러내고는 당당한 이들이 있습니다.

   

비썩 말랐던 억새들이 이렇게 한껏 부풀어오르면 이내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를 인간들의 오만방자함이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분노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우리 곁에서 분노하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살고자 할 때, 그 마지노선을 넘어가지 않는 지혜를 가지고 있길 소망해봅니다.

   
돌담과 푸른 밭과 저 멀리 바다와 하늘.
저 눈 속에, 저 풍경 속에 올해의 모든 아픔들을 묻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을유년 새해에는 혼돈의 시간들을 끝내는 닭의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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