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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른 분배-이해 안되는 말

"20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 서유럽 자본주의국가들은 아직 기본소득을 실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처분GDP의 40-50% 수준에 이를 만큼 상당한 수준의 ‘필요에 따른 분배’를 실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필요에 따른 분배’의 차원에서 현대 자본주의국가 중 일부는 이미 맑스의 코뮌주의 첫 번째 국면보다 앞서 있다."(곽노완. 여러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젼)

 

"두 번째 문제는 보다 고차적인 코뮌주의 국면의 경제원리로 맑스가 제시한 “각자 능력에 따라,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MEW 19: 21)는 지속불가능한 유토피아라는 점이다. 맑스의 원리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경제원리를 뜻한다. 그런데 앞서 판 빠레이스를 검토하면서 보았듯이 이는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의 천국이자 헌신적인 사람들의 지옥으로 귀결될 수 있는 원리이다."(곽노완. 여러가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비젼)

 

 

위의 두 인용문은 별 개의 글이 아니라, 바로 앞뒤로 이어진다. 앞에서는 '필요에 따른 분배'원리가 현존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미 앞서 실현되고 있다고 하고, 바로 뒤 문장에서는 지속불가능한 유토피아이자 '헌신적인 사람들의 지옥'으로 귀결될 수 있는 원리라는  무지막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도저히 이해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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