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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무상의료에 관한 단상

친구요청 수락하러 페북에 들어갔다가..타임라인에 형근이 글이 보이길래, 참조하려고...

 

 

 

 

무상의료에 관한 단상

첨부한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이자 전 복지부 장관께서
2008년 대구 출마 직후에 경북대에서 특강을 개설했던 적이 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강의로 소문이 났고,
강의 개설 몇분만에 수강생이 넘쳐서 대강당으로 
강의실이 변경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 내용이 녹음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첨부된 파일은 그 강의의 일부분이고,
무상의료에 관한 부분을 재편집한 자료이다.

이 자료에서 유시민 대표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근거하여
무상의료 실현의 어려움을 주장한다.
이 동영상을 보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상의료가 되면 누구나 아프면 쉽게 갈 수 있고,
좋은 병의원 찾아가게 되고,
수요 곡선 자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곡선도 같이 따라가고,
비용 상승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소위 선진국들에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핵심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있다.

첫째, 공급 자체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필요한 만큼 적절히 공급한다.
사회에 필요한 공급을 미리 기획하고, 적절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영리법인의료기관을 제외한 공급에 대한 규제가 없다.
당연히 수요공급의 법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필요한 공급에 대한 세밀한 기획, 집행, 관리가 필수적이다.
지역사회와 국가수준에서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영국 NHS 대기 환자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영국은 1962년 Hospital Plan이란 걸 만들어서
10여년 동안은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왔다.
실적을 보면 초기 계획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나름 지속적으로 공급을 확충하면서 수요에 대응을 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초 케인즈주의에 기초한 경제운용 방식이 실패했고,
대처가 정권을 잡으면서 Hospital Plan을 폐기하고,
보수당 집권 시기 동안 내내 병원 시설 확충 자체를 하지 않았다.
1997년 블레어가 집권했을 때 영국 병원의 절반 가까이가
2차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근거다.
이후 노동당은 PFI(대표적인 민자유치 사업)를 통한 시설 확충에 몰두한다. 

하옇든 그 결과로 발생된 것이 대기환자(waiting list)였다.
일부지역에서는 고관절 수술에, 관상동맥우회술에 5년까지.
이 문제는 보수당이 실각하고, 노동당이 집권하는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우리는 공급에 대한 세밀한 기획, 집행, 관리 기능 자체가 없다.
왜냐면, 시장기능에 맞겨 놓았기 때문에 이런 것 신경 안쓴다.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이 부분을 담당하는 부서와 인력이 없다.
그 만큼 정부 돈이 덜 들고, 효율적인 부분도 있다.
짧은 기간 고도 성장 과정 속에서
공급이 부족하던 시절,
공급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부족한 공급을 충당해왔다.

이 와중에서 국민들이 겪어야 할 불만과 문제를
고스란히 떠 안은 것은 의료기관과 의료인이었다.
왜냐면 운영의 책임자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에.
물론 의료기관 운영자와 의료인들 잘 살았다.


셋째, 일단 전문가에 의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환자에게는 이윤동기가 배제되거나 최소화된 조건에서 환자를 최선을 다해 진료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돌봄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려면 상당히 많은 인력과 조직이 필요하고, 적지 않은 운영비가 들어간다. 쉽게 말하면 의료기관에 있는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이 더 많아져야 하고, 각종 의료서비스 인력들이 더 필요하고, 서비스 단계별로 환자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연계하는 인력들까지.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그 과정에 들어갔을 때 신뢰할 만한 서비스가 가능 하다. 

미국의 경우 그 과정에 대해 전문주의를 통한 통제 기전이 살아 있는 것이 차이지만, 진료 건 당 진료비가 비싸다. 의료수가 올려달라고 하는 의사들의 요구와 맞다아 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일단 의료인들이 이윤동기와 무관하지 않고, 인력도 적고, 환자 진료와 돌붐 과정에서 연계할 시설도 인력도 없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편하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주의가 판치는 지금 환자들은 그 꼴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의료인에게 이이제기를 하고, 성질 드러운 사람 혹은 참기 어려운 국면에 도달하면 누구나 쉽게 난폭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종합병원 응급실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의료기관들은 시설, 장비 확충에 바쁜 반면 인력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하고, 거친 현장은 고스란히 의료인의 몫이며, 환자들은 이러한 경쟁구조에 적응하며 영악해지고 있다. 신뢰가 없으니 아산이니, 삼성이니 찾는 것 아닌가! 


넷째, 공적인 영역에서 의료인들에게 자율성, 사회적 권위,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이윤동기에 의한 의료행위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게 하면서, 국민들의 의료이용 과정에 있어서 일정한 통제와 관리를 하는 역할을 부여해주고 있고, 그 사회에는 문화적으로 잘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치의 제도가 대표적인데, 주치의는 담당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2차, 3차로 이어지는 진료과정에 있어서 안내자 역할도 담당하지만,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차단하고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도 적지 않다. 그리고 2차, 3차에서도 이윤동기가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적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능이 없다. 이러한 관리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자유롭게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주었고, 환자들 스스로 가벼운 증상이나 병은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고, 중증이다 싶으면 큰 병원 가는 게 상식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없는 곳에서 주치의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수요관리를 위해서라도 주치의제도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주치의에 대한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다. 일정 수준이상으로 앞서 이야기한 첫째, 둘째, 셋째 부분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다섯째, 의료이용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 그리고 의료기관 간 신뢰가 전제되어있다. 아파서 찾아간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료인이 권하는 치료방법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믿음이 전제되어고,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질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무상의료가 가능하고,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최소화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이러한 믿음이 없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거나, 필요한 경우 적시에 적절하게 다른 기관으로 안내하고 의뢰하고 이송하며, 그 곳에서 최적의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보니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그러니, 좋은 시설과 장비, 유명의사와 평판을 얻은 곳을 선호하고 쏠림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시장 원리에 충실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수요공급의 법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무상의료 운영원리와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른 유시민 전장관의 무상의료 비판 논리가 적절하다.

무상의료를 주장한 2002년 민주노동당 이후 10년의 기간동안
좌파는 이 문제를 잘 풀지를 못했다.
단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수준으로 문제를 다루었고,
이제는 세금이든 보험료든 투입요소를 늘려
본인부담을 최소화하는 수준이다.

일시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뚜렷하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유시민 전장관이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을 뛰어넘는 것은 정치논리일 것이고.

이 대목에 있어 진보신당을 뛰쳐나간
심상정 그룹이나 '실질적인 무상의료'를 주창한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고.

내가 작금의 무상의료 담론 흐름에 
삐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상의료 실현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정파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무상의료를 활용하고 이용하려는 것이 거북한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이렇게 된 데는
박통령시절 만들어진 시스템 자체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에 기인한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장관이 젊은 시절 기획한 대로다. 

그 역사적, 문화적 경과의 무게가 누르는 꼬임의 정도와 세기 탓에,
쉽게 실타래를 풀 고리를 찾기도 어렵다.

의사들, 그리고 의협의 즉자적 대응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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