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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진보는 ‘혁명’을 꿈꾸는가?
80년대를 혹자는 ‘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혁명을 꿈꾸는 이들의 시대’일 것이다. 이들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좌경용공세력’으로 매도당했다. ‘좌경용공세력’은 80년 이후 1990,2000년대에는 ‘386세력’이라 불리우며 제도정치권으로 대거진출하였다. 제도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각계각층으로 나아가 지금은 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 들 세대 중에는 술자리의 뒷담화에서 80년대 시절의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꺼내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혁명이론을 말하는 ‘민족해방’(NL) ‘민중민주’(PD)는 이들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이다. ‘미제축출’ ‘파쇼타도’라는 구호와 주장은 대학 교정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혁명’이라는 말 대신에 ‘민주’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정치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의 ‘혁명’에 대한 향수는 ‘레미제라블’에서 바리케이드를 넘어 혁명을 노래하는 파리민중을 통해서 표출되거나, ‘설국열차’ 맨 뒷칸의 승객들이 열차엔진을 접수하려는 모습에서 표출된다.
그런데 기억과 향수로만 존재하는 ‘혁명’이 어느날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현직 국회의원이 연관되고 제도 정당인 통합진보당의 당직자들이 연관된 이른바 ‘RO사건’이 정국을 흔들면서이다. ‘내란을 예비하고 음모’했다고 하고 나아가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하는 죄’인 ‘여적죄’마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 이전에 현재의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세력에게 한국사회는 ‘종북’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었다.
‘좌경용공’대신에 ‘종북좌파’란 규정과 낙인을 덧씌우는 것이 80년대와 다른 지금의 상황이다. 또 다른 것이 있다면 80년대 ‘좌경용공세력’사이에는 서로 다른 이념과 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비판이 전개되었지만 지금은 이들 세력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혹은 ‘체제 밖 진보’ ‘반시대적 사고’라는 식의 정치적 수사와 비판으로 ‘그들과 우리는 다른 세력’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혁명’을 얘기하거나 ‘혁명을 꿈꾸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민주진보의 길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시대가 ‘미국에 대한 반대’만을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제의 축출’이 혁명의 목표로서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군사적 방법으로 혁명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과 희생을 동반하길래, 군사주의적 방법이 유력한 혁명의 수단으로 간주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또한 한반도의 북쪽 사회는 이미 혁명 이후에 도달해야 할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한 현실에서 이들과 연계하여 남한 사회의 진보적, 혁명적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사회 또한 혁명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사회이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 일상적으로 국민과 정당활동을 사찰․감시하고, 이들의 활동을 뚜렷한 물증도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탄압하고, 사회적으로는 ‘종북’이라는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메카시즘적 광풍’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국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대법원에서마저 불법으로 판결이 이루어진 사안에서마저 검찰이나 경찰은 불법을 저지른 가해기업과 기업주보다 불법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현실은 ‘법치주의’마저 ‘돈과 권력’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부 소수세력의 점유물임을 입증해준다. 민주적 절차와 제도, 법적 질서마저 국가기관에 의해서 부정당하고, ‘법보다 돈’임을 보여주는 사회에서 이를 변화시키는 길은 잘못된 국가기관을 없애고 돈이 지배하는 질서가 바뀌는 것일 뿐이다. 이는 현존하는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회의 ‘새로운 시작’은 없으며, 또한 더 나은 미래라는 희망도 없다. 지금 이 체제에서 미래가 없는 이들이 선택할 길은 이 체제를 바꾸고 뒤엎는 것 말고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RO사건”을 통해 진보진영이 성찰해야 할 것은 혁명을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혁명을 꿈꾸는가?’란 진지한 질문이며 ‘혁명을 위한 이론적․정치적․대중적․물질적 토대의 준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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