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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20
    김종철과 원용수의 젊은 사회주의
    시다바리
  2. 2006/04/19
    가난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다
    시다바리

김종철과 원용수의 젊은 사회주의

 

김종철과 원영수의 젊은 사회주의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평등서울 공공서울’이란 기치하에 ‘젊은 사회주의’를 내걸고 출마하였다. 사회주의를 내건 후보는 두 번째이다. 2002년 선거에는 사회당의 원용수 후보가 출마했었다. 2002년 원영수의 득표수가 미약했듯이 김종철 후보의 득표력도 그다지 신통할 것 같지 않다. ‘젊음’이라는 이미지를 압도하는 ‘강단있는 쿨한 깨끗한’ 이미지의 열린우리당 후보와 도덕성과 녹색의 이미지를 한나라당 후보의 틈바구니에서 헤쳐나가는게 녹녹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철 후보가 강금실후보와 오세훈 후보와 견주어 얼마나 대중적인 득표력을 가질 것이냐는 사실 관심밖이다. 바란다면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만 득표해도 성공이라고 본다. 관심의 주된 초점은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내건 후보의 출마에 있다. 더 나아가서는 2002년 원영수와 2006년 김종철의 차이는 얼마나 있을 것인가이다. 김종철과 사회당 대표가 최근 언론인터뷰를 통해서 몇 가지 차이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 김종철은 지금 자기가 내거는 ‘사회주의’가 2002년 원영수와 차이에 대해 2002년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철학적이고 규범적’이었다면 지금 자기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중적 토대가 다르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조직적 토대를 갖고 있음에 비해 사회당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희망사회당의 신석준 대표는 간접적인 답변(?)을 했다. 민주노동당과의 비교에 대해 정책으로만 따지면 민주노동당보다 더 급진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덜 사회주의적이고 덜 급진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정책’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운동’보다는 ‘의원단의 활동’에 집중되는 것 같다는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사회당은 ‘정책’에 우선하여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 사회주의 정치를 일구는게 임무이자 과제라고 천명했다.


사실 양자의 비교와 비판, 부족함에 대한 지적은 대립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사회주의적 대중운동’을 얼마나 펼쳐왔고, 앞으로 펼칠 전략과 계획을 갖고 있느냐이다. 서울지역에서 이러한 대중운동의 사례는 많지 않다. 사회당이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는 사회당의 ‘독자적인 운동’ 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장애이동권투쟁을 비롯한 장애인투쟁에 대한 사회당의 헌신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장애인 투쟁을 사회당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제외하고 이렇다할 운동을 펼친 사례가 드물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쟁을 천명했지만 선전사업, 캠페인 활동을 제외하고 이를 대중의 운동으로 만든 예는 거의 없다. 반빈곤투쟁이든 여타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써(사실 이만큼 하는 운동주체도 드물다. 그런 면에서 양 당은 타 운동진영보다 훌륭하다) ‘운동’을 대신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찌보면 양당의 득표력이 미약했거나, 그러리라고 예상되는 것은 사회주의 정책의 부족함이나 실천력, 현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회주의 정신이나 정책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거나, 대중에게 설득력있게 제시된다고 해서 득표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득표력은 평소, 일상시의 대중의 의식과 행태, 움직임 그리고 관심사가 반영된 것일 뿐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바람’을 바랜다는 것은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설사 ‘바람’이 분들, 대세를 바꾸기는 힘들다. 물론 과거 역대선거속에서 ‘바람’이 분 적이 있다. 85년 신민당의 약진,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4년 탄핵후의 총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도 알고보면 시대적 흐름과 대중의 의식을 간파하고 반영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전후로 하여 대중의 일정한 ‘운동과 실천’이 있었다.


지금 부족한 것은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정책이나, 확실한 지지력을 가진 대중적 토대가 아니다. 사회주의적 비젼을 내포하거나 담지한 대중운동의 형성이 아닐까? 앞장선 이들의 ‘선언’이나 ‘헌신’이 아닌 대중스스로의 자발적 운동. 진정 필요하고 요구되는 건 이것이 아닐까? 선언이나 헌신은 이 운동에 복무하는 한에서 유의미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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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의 목표는 당선이다. 당선을 위해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쓴다. 공천만 되면 당선이라는 사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온갖 비리와 행태가 저질러진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향응제공, 금품수수 등의 불법 사태는 다반사이다. 선심성, 장밋빛 공약의 남발 등은 고전에 속한다. 최근에는 시대적 변화의 추세,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 호응하고, 비쥬어적인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이미지 정치라고 불리우는 추세가 유행이다. 보랏빛, 녹색, 파란색 등 ‘색깔’의 동원은 전형적인 모습이다. 2002년 대선 시 ‘기타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이젠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고달픈 삶과 생활도 이미지 정치에 활용된다.


17일자 한 일간신문에는 ‘가난의 추억’을 득표마케팅으로 활용한다는 보도기사가 실렸다. 강금실, 진대제, 이계안, 오세훈, 맹형규, 홍준표, 박주선 등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어린 시절 ‘가난의 추억’을 되살리는 득표마케팅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몇백억 재산을 가진 재력가로, CEO로, 전문직으로 ‘성공 신화’를 일구었다는 것이다. 등록금을 못내기도 했고, 판잣집에 살았는데 그나마 살던 집이 철거당하기도 했고, 도시락도 싸기 힘들정도로 가난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으며, 어머니가 피를 뽑아 받은 돈으로 등록금을 냈다고 하는 등 애절한 사연들이 많다. “ ‘성공 신화’뒤에 ‘가난의 추억’이 자리잡고 있다”라고 신파극을 읆조리는 듯하다. 


기사에서 분석했듯이 ‘양극화’가 심해진 현실에서 그만큼 고통스런 삶과 생활을 영위하는 노동자, 민중의 숫자가 늘어난 것을 반영하는 선거전략이다. 노동자․민중의 가난한 삶과 고통, 그리고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전략인 셈이다. 사실 현실 노동자․민중의 삶은 그들의 ‘추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역 앞에는 한사람 누우면 그만인 쪽방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의 숫자는 10만여명을 넘기고 있으며,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의 숫자도 그만큼 된다. 개발의 포크레인에 살던 집을 철거당하는 철거민은 7,80년대의 모습이 아니라 돈암동, 오창동, 창신동 등 서울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하늘을 향후 부의 상징처럼 솟아있는 타워팰리스 바로 곁에는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하루벌어 하루 살아가는 ‘하루살이’인생들도 넘쳐난다. 이들에겐 ‘가난’은 성공의 뒤안길에서 기억해 내는 추억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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