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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야 말로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과 관행이 배어 있는 어찌보면 훌륭한 격언이기도 하고, 세상을 풍자하는 촌철살인의 경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이 속담만은 자신의 가난과 고통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느낌을 가진다. 물론 긴 세월동안 위정자들의 행태와 지배적 의식과 제도가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랜 동안의 '관습'을 인정했는지, 헌법재판소가 예의 판결을 내렸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생활을 할 권리'와 경제, 성, 장애여부 등에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을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위반하고 있다는 위헌소송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국가는 '최소한의 조치'를 다하고 있으며, 다른 여타 법률을 통해 보완하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빈곤사회연대(등)은 '헌법재판소가 빈민을 버렸다'며 강력하게 규탄을 했다.
올해는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해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150만에 달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들의 3년 생활과 삶이 달라진다. 참여연대에서 시행했던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 체험 프로그램에서 대다수 참여한 사람들이 적자생활을 면치 못했던 것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했던 말이 '빈민처럼 살지 않아서'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낸 말일 것이다. 왜 '빈민처럼' 살지, 자꾸 더 많은 걸 요구하냐는 것일 게다. 주면 주는대로, 하라면 하는대로 해야지 왜 자꾸 꿈틀꿈틀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냐는 것일 게다.
이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마지않는 헌법에서 여러 생활적,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문구는 '악세사리'로 여기는 게 틀림없다. 그러니 '관습헌법'이라는 것에까지 기대어 기존의 질서와 의식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이제는 앞의 속담을 읖조리는 오래된 관습을 버릴 때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가구는 암보험을 비롯하여 생명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가입자수가 800만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있다. 다들 30대에 들어서면 보험가입 권유를 안 받아본 이는 드물 것이다. 보험에 가입하는 이의 심정이야 다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것일 게다. 누구 한 사람이 중병에 들면 가산을 탕진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사회적 보호막이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보호막이라도 갖추어야 안심이 될 터, 그 심정이 이해 못갈 바는 아니다. 나는 보험권유를 받으면 그런 얘길 한다. 나는 민간의료보험 도입 반대운동을 한다.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이 암보험 등 민간질병보험을 가입하면 이율배반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보험설계사들은 권유를 포기한다. 물론 자동차보험은 가입을 한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보험회사 중 자동차보험을 주로 취급하는 손해보험회사가 제일 이윤이 적다고 한다.
아래 글은 월간 '말'지에 실린 기사이다. 암보험을 비롯한 생명보험의 실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실렸다. 다들 우리 국민들은 건강보험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반대를 한다. 나도 물론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바꾸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명보험 등 민간보험시장에 보험료로 지출하는 돈을 기꺼이 공보험인 건강보험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과연 없을 것인가? 하고 물어보고 싶다. 물론 그 이전에 현재 '반쪽짜리'인 건강보험을 온전한 '사회보험'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아마도 건강보험제도가 대부분의 질병에 드는 비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기능했다면, 생명보험회사의 비중은 엄청 줄어들었을 것이다.
보험료 낼 돈 3분의 1이면 무상의료도 가능 | ||||||||||||||||||||||||||||||||||||||||||||||||||
보험을 잡아야 복지가 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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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blue@digitalmal.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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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연간 보험료 109만 원, 가구 당 4.1건 가입 보험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낸 보험료는 모두 50조3924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은 721조3천억 원, 이 가운데 7% 가량이 보험료로 들어간 셈이다. 자동차보험이나 손해보험을 빼고 생명보험만 놓고 뽑은 통계다. 한 사람 앞에 한해 109만 원꼴이고 한 집에 3.5명씩 잡으면 한 해 382만 원꼴이다. 건수로 따지면 집집마다 평균 4.1건씩 보험을 들고 있다.
이 규모의 돈이면 전 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하고도 남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비 지출은 한 집에 107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보험료 382만 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보험료 낼 돈의 4분의 1만 모아도 온 국민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병에 걸려도 누구나 돈 걱정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그 돈을 우리는 보험회사에 바치고 있다.(‘바친다’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느끼신다면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란다.)
보험은 복권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복권은 운이 좋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만보험은 거꾸로 혹시나 있을 수도 있는 끔찍한 불행에서 당신을 건져준다. 복권과 마찬가지로 보험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결국 ‘손해’다. 그러나 물론 복권이나 보험이나 손해를 보면서도 투자할 만한 가치는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우리는 한 사람 앞에 한 달 평균 2만5000원씩 의료비를 썼다. 평균이라 그렇지만 실제로는 몇 년 동안 한 푼도 안 쓰는 사람이 있고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내고도 결국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에 든다. 지난해 우리는 한 사람 앞에 한 달 평균 9만 원씩의 보험료를 냈다. 9만 원을 내고 수천만 원의 위험에서 벗어난 셈이다.
지난해 10월 생명보험협회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험 가입률은 89.9%, 10명 가운데 9명이 하나 이상의 보험을 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만큼 보험을 많이 드는 나라는 없다.
보험의 만기는 10년이나 20년, 길게는 30년까지 걸쳐 있다. 받기는 지금 받지만 돌려주기는 30년 뒤에 돌려줘도 된다. 결국 해마다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훨씬 많다. 덕분에 보험회사들의 자산은 1993년 50조 원에서 지난해에는 187조 원으로 네 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평균 13.8%씩 늘어났다. 그래서 이를테면 당신이 낸 보험료 1만 원 가운데 4193원이 보험회사의 자산이 된다.
보험회사의 수익구조는 크게 사차익과 이차익, 비차익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받으면 먼저 예정 사업비를 뗀다. 예정 사업비라는 것은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말한다. 보험설계사들을 동원한 극성스런 판촉 비용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보험회사는 예정 사업비를 뗀 나머지로 보험금과 만기 또는 해약 환급금을 지급한다.
사차익이란 나갈 걸로 예상한 보험금과 실제로 지급한 보험금의 차이다. 이를테면 1만 명이 죽을 걸로 예상하고 보험료를 받았는데 9천 명밖에 안 죽었으면 그만큼 보험회사는 돈을 번다. 아픈 사람이 예상보다 적어도 돈을 번다. 이차익은 말 그대로 이자의 차이다. 예를 들어 다음해 금리를 5%로 예상하고 보험료를 잡았는데 실제로는 7%까지 올랐다면 역시 보험회사는 그만큼 돈을 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차익이다. 비차익은 예정 사업비와 실제 집행된 사업비의 차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의 입장에서는 예정 사업비를 높게 잡으면 잡을수록 유리하다. 쓰고 남는 금액은 고스란히 보험사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자의 입장에서는 예정 사업비가 높을수록 전체 납부액 중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몫(보험금이나 환급금)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예정 사업비는 보험 상품마다 제각각으로 그 내역은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계약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외국계 보험회사들은 더욱 과감하다. 프루덴셜생명보험의 경우 지난해 보험료 7516억 원 가운데 3391억 원이 예정 사업비로 빠져나갔다. 계약자가 보험료 1만 원을 내면 45.7%, 4570원이 그대로 보험회사로 흘러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집행된 사업비가 2170억원밖에 안 된다는 데 있다. 보험료 1만 원 가운데 4570원을 예정 사업비로 챙겨서 그 가운데 2880원을 쓰고 1690원을 남긴다는 이야기다. 이 돈은 계약자들과 무관한 이 회사 주주들의 몫이다. 정작 계약자들이 받은 보험금은 314억 원, 이를테면 보험료 1만 원 가운데 417원밖에 안 된다.
프루덴셜뿐만 아니라 메트라이프, 뉴욕, 카디프, 라이나생명보험 등 외국계 보험회사들은 모두 예정 사업비 비중이 높다. 모두 전체 보험료의 50% 이상을 예정 사업비로 챙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국계나 국내 보험회사나 다같이 비싸게 보험료를 받고 있고 소비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그 가운데 하나를 들 수밖에 없다.
보험회사 전체를 보면 같은 기간 동안 예정 사업비가 모두 12조3145억 원으로 보험료 50조3924억 원의 24.4%에 이른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실제로 집행된 사업비는 8조6201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나머지 3조6943억 원은 그대로 이들 보험회사의 이익이 됐다. 이익은 해마다 늘어난다. 보험회사들은 해마다 더 많은 예정 사업비를 책정하고 보험료는 갈수록 비싸진다. 고스란히 계약자들이 그 비용을 떠안는다는 이야기다. 예정 사업비와 실제 사업비의 차이는 1998년 5542억 원에서 1999년 1조2194억 원으로 2000년 1조6346억 원, 2001년 2조9553억 원, 2002년 3조8383억 원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은근슬쩍 유배당 상품이 종적을 감추는 추세다.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계약자들의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보험회사들이 계약자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4848억 원, 1999년의 9104억 원에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무배당 상품이 늘어나면서 배당금은 해마다 이렇게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조만간 배당금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보험회사들은 해마다 예정 사업비를 높여잡아 이익을 늘리는데, 그 이익은 모두 계약자들의 보험료 부담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횡포는 이들 보험회사들이 담합해서 시장의 질서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삼성생명보험을 비롯해 대형 보험회사들이 앞장서서 폭리를 챙기는 상황에서 중소형 보험회사들이 굳이 ‘대세’를 거슬러 출혈 경쟁에 나설 이유와 여유는 없다.
그래서 삼성생명보험이 나서면 다른 보험회사들이 따라가는 상황이 계속된다. 예정 사업비를 크게 늘려잡고 무배당 상품을 늘리는 과정에서 보험회사들이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보험소비자협회와 보험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보험상품마다 사업비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내는 보험료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품마다 보험금과 사업비의 비율이 모두 다르고 상대적으로 더 큰 불이익을 보는 계약자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다
무배당 저축성 보험의 경우 지난해 보험료 14조6621억 원 가운데 2조4447억 원이 예정 사업비로 빠져나갔다. 또 6조9502억 원이 보험금으로 지급됐다. 결국 예정 사업비와 보험금을 빼면 정작 저축에 들어가는 보험료는 5조9186억 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이자도 요즘은 5%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보험은 결코 재산증식의 수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보험으로는 보장만 받고 재테크를 할 거라면 다른 데서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1980년의 백수(白壽)보험이 대표적인 피해사례다. 100살까지 살라는 뜻의 이 백수보험은 달마다 3만4600원씩 7년 동안 내면 22년 뒤에 해마다 1천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며 계약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때만 해도 금리가 25%에 육박했으니 충분히 가능한 계산이었다.
그러나 22년 뒤 금리는 4%까지 떨어졌고 이 보험의 예정금리 12%에도 턱없이 못 미쳤다. 결국 ‘해마다 1천만 원’ 주겠다던 약속은 ‘해마다 1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금리에 따라 배당금이 변동될 수 있다는 조항이 약관에 어 있기 때문이다. 보험 계약할 때 약관을 그렇게 꼼꼼히 읽어보는 계약자는 거의 없다. 피해를 본 계약자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승소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백수보험의 피해자는 모두 9만 명을 넘어선다.
요즘 유행하는 종신보험에도 함정이 많다. 우선 종신보험이란 상품명은 ‘종신토록 보장해 준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쉬운데 사실은 ‘사망할 때 딱 한 번 혜택을 주겠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사망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빨리 죽을수록 이익이고 오래 살수록 손해다. 보험회사로서는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최상의 보험상품이다. 왜 그럴까.
30세 남자가 50세가 될 때까지 20년 동안 달마다 17만3천 원씩 낸다면 원금만 무려 4152만 원에 이른다. 보험회사가 제시하는 4.8%의 이자를 감안하면 원금과 이자는 모두 6153만 원이 된다. 50세에 죽어도 4천만 원 가까이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돈(6153만원)에 다시 이자가 붙어 1억원을 넘어서는 시기는 62세 때다. 무배당 종신보험에 든 30세 남자는 62세 이상 사는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또한 생명보험협회의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30세 남자는 앞으로 평균 44.4세를 더 살 수 있다. 이 남자가 평균 수명인 74세까지 산다면 원금과 이자가 1억5천만 원을 넘어서는데 1억 원밖에 못 받는다. 무려 5천만 원 이상 손해를 보게 된다.
만약 이 돈을 이자가 센 상호저축은행에 집어넣는다면 이자율 7%만 잡아도 20년 뒤에 70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복리예금에 넣어둔다면 이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러나 이 종신보험은 해약하는 경우 4764만 원밖에 돌려주지 않는다. 무려 2306만 원이 손해다. 사망할 때 1억원 을 받기 위해 20년 동안 보험료를 낸 계약자에겐 너무 가혹한 조건이다. 더욱이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앞으로 20년 동안 이 남자가 죽을 확률은 4.4%밖에 안 된다.
더 주목할 부분은 해약 환급금이다. 해약을 하게 되면 이자는커녕 원금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다. 만기가 따로 없는 이 종신보험의 경우 1년 안에 해약하면 단 한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2년 동안 415만 원을 내고 해약할 경우도 67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원금이라도 건지려면 최소 14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계약자들은 흔히 죽을 때 받게 될 1억원의 보험금을 생각하느라 정작 해약환급금을 생각하지 못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1년 이상 계약 유지율은 73.6%, 2년 이상 계약 유지율은 62.6%에 그쳤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해약률이 높아도 상관없다. 환급금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해약자가 그때까지 납부해온 보험료 중 상당 부분이 그대로 보험사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보험회사들은 ‘적은 보험료를 내고 높은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해약환급금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고집해 왔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렇게 1년에서 길게는 2년 안에 해약할 경우 보험사측은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한 수당을 상당 부분 회수한다. 그렇다고 이 수당을 계약자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해약을 핑계로 보험설계사들의 수당까지 뺏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한번 계약을 하고 보험료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해약을 하거나 말거나 처음 몇 달 동안 이익을 충분히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손해가 없다. 해약을 해도 보험회사는 이익을 낸다. 결국 손해는 모두 계약자의 몫이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사업비 내역 공개가 보험회사들의 담합을 깨뜨리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보험상품마다 각각 사업비를 공개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싼 보험과 비싼 보험이 가려지고 그 과정에서 터무니 없이 폭리를 챙기는 보험회사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보험회사의 이름만 보고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 조 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백수보험의 경우처럼) 만기 때 내가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금융감독원에서 몇 가지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보험회사의 전체 통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내는 보험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이춘근 보험감독국 상품계리실장은 "보험상품마다 조건이 달라 사업비만으로 변별력을 찾기 어렵다"며 "사업비 공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실장은 "오히려 호주의 경우 사업비 내역을 밝혔다가 계약자들 사이에 불신이 확산돼 보험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헌수 순천향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예정 사업비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책정해 이익을 남기는 현재의 영업방식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 실장과 반대로 김 교수는 "신뢰를 얻지 못할 경우 오히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미 국내 보험산업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외국계 보험회사의 시장 잠식이 계속되고 있고 방카슈랑스의 도입으로 생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결국 정보공개와 합리적인 가격 형성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이야기다.
우선은 보험회사들 폭리를 바로잡아 보험료를 낮춰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보험의 역할을 정부와 사회가 다시 조금씩 넘겨받는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이지만 민간 보험의 역할을 점차적으로 축소하고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과 사회복지 제도를 확대하는 방향도 추진할 만하다. 그게 돈도 훨씬 덜 들면서 다같이 공존하는 방법이다. 발상의 적극적인 전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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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말 2004년 220호 이정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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