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 이 글은 시다바리님의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의견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의 발달,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최소한의 조치' 역시 국민의 사회의식의 변화, 사회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므로...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을 함께 고려하여..."

 

헌법재판소를 만들어 놓은 주권자의 의지는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단지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를 읊어보라고 한 것은 아닐게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아주 간단하게 "헌법 교과서를 보시오"라는 문장으로 끝나도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율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세계적으로도 수위권에 들 정도의 중등학력 이상의 학력을 가진 터라 헌법교과서 읽어 내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문장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헌법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어려운 것이다. 요즘 도올이 한참 오마이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데, 도올 특유의 헛소리도 문제이지만 도올같은 사이비한테조차 욕먹을 짓을 골라가지고 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또라이 기질이 더 큰 문제이다. 헌재를 둔 이유는 교과서만을 봐서는 도대체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사회적이고 법률적인 차원의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남들 다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들이대고 결정을 끝내버리면 국민들은 허탈해지고 도올같은 사이비는 제 세상 만난듯이 설칠 수 있다. 결국 헌재의 권위를 지들 스스로 갉아먹는 것이다.



이번에 기각결정을 받은 최저생계비 건은 현재 헌재의 판단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를 분석해보자.

 

우선 헌법재판소는 자신들의 결정이 어디에서 근거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에 있어서는 다른 국가기관 즉 입법부나 행정부가 국민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하여 객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국가기관의 행위의 합헌성을 심사하여야 한다는 통제규범으로 작용한다"

 

전형적인 사법소극주의의 입장이다. "객관적으로 필요한 조치"의 내용이 무엇이고 거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어 헌법의 규범구조 안에서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되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지금의 헌법재판소 결정처럼 단지 행정부가 그러한 "최소한의 조치"을 했는지 여부만을 합헌성 심사의 대상으로 한다면,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부문에서 행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헌재의 논거처럼 "객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국가기관의 행위의 합헌성을 심사"하려면 차라리 헌재가 없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떻게 해서든 행정부의 재량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헌재의 사법소극주의는 당연히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의 최저생활보장의 구체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입법부 또는 입법에 의하여 다시 위임을 받은 행정부 등 해당기관의 광범위한 재량"에 맡겨버리고 만다. 필연적 귀결이다. 이로 인하여 다시금 "국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의무를 다하였는지의 여부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 경우에는, 국가가 최저생활보장에 관한 입법을 전혀 하지 아니하였다든가 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여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 한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지극히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도출된다.

 

보시다시피 계속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정부가 일을 하지 않았을 때만 헌법에 위반된단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에만 헌법에 위반된단다. 그런데 어느 정부가 최저생활보장을 위한 조치를 아무 것도 한 적인 없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다못해 수출 100억불에 목매달고 달라붙으면서 노동자들의 등골을 뽑아먹었던 박정희도 그런 일은 했고, 학살로 정권을 잡고 집권 내내 총칼에 의지했던 전두환도 그런 일은 했다. 하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는 결국 그걸 누가 했느냐, 또는 어떻게 했느냐, 그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의 구체적인 부분들은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근거는 당연히 헌법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헌법으로 표상되는 주권자들의 의지이다. 그렇다면 최저생계비에 대한 문제를 판단할 때, 헌법이 어떤 형식으로 최저생계비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내용이 적어도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주권자들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입법부나 행정부가 주권자의 의지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지, 그 노력의 내용이 과연 정당하고 타당한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헌재의 결정은 앞뒤가 바뀌었다. 즉, 입법부나 행정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여부를 먼저 살피고 나서 그 과정에 재량 일탈이 있었는가를 따지고, 이러한 표면적인 양태가 헌법의 조문구조에 반하는가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당연히 행정부에 유리한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행정부는 최저생계비 지급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 사실이고, 그 기준 역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헌재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행정행위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합헌이 될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문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좀 길지만 한번 보자.

 

보건복지부장관이 2002년도 최저생계비를 고시함에 있어서 장애인가구의 추가지출비용을 반영한 최저생계비를 별도로 정하지 아니한 채 가구별 인원수를 기준으로 한 최저생계비만을 결정, 공표함으로써 장애인가구의 추가지출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최저생계비에 따라 장애인가구의 생계급여 액수가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생계급여액수는 최저생계비와 동일한 액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생계비에서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 등을 공제한 차액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장애인가구와 비장애인가구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까지 동일한 액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때 공제되는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은 장애인가구의 실제소득에서 장애인가구의 특성에 따른 지출요인을 반영한 금품인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수당, 장애아동부양수당 및 보호수당, 만성질환 등의 치료, 요양, 재활로 인하여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지출하는 의료비를 공제하여 산정하므로 결과적으로 장애인가구는 비장애인가구에 비교하여 볼 때 최저생계비에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을 반영하여 생계급여액을 상향조정함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점, 

 

장애인가구는 비장애인가구와 비교하여 각종 법령 및 정부시책에 따른 각종 급여 및 부담감면으로 인하여 최저생계비의 비목에 포함되는 보건의료비, 교통, 통신비, 교육비, 교양, 오락비, 비소비지출비를 추가적으로 보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가 생활능력 없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할 것이고, 또한 장애인가구와 비장애인가구에게 일률적으로 동일한 최저생계비를 적용한 것을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장관이 2002년도 최저생계비를 고시함에 있어 장애로 인한 추가지출비용을 반영한 별도의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지 않은 채 가구별 인원수만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결정한 것은 생활능력 없는 장애인가구 구성원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수 없다.

 

"상향조정"이라는 부분에 주목하자. 헌재의 판단은 짧게 말해 이거다. 최저생계비를 계산함에 있어 장애인이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근거가 되지는 않았지만, 장애수당, 장애아동부양수당 및 보호수당, 의료비 공제 등을 통해 최저생계비를 많이 주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원래 목적과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 일의 반사이익을 마치 원래 목적을 위해 했던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 최저생계비에 대한 헌법소원이 반사이익의 존재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일을 제대로 했느냐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장애수당, 장애아동부양수당 및 보호수당, 의료비 공제 등의 반사이익을 주는 분야의 행정행위가 있었는가를 문제로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포함된 가정에 제공하는 최저생계비가 과연 장애의 유무는 차치한 채 가족구성원의 숫자만으로 판단되어야할 문제인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서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보다 각별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재가 이야기한 장애수당 등의 최저생계비와 다른 차원의 수당은 이 조문에 의해 요청된다.

 

그런데 이렇게 요청된 수당은 그 자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 따른 국가의 별도 책임을 규정한 것이지 최저생계비에 도움을 주는 반사이익을 위해 준비된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헌법재판소는 간과하고 있다. 요컨데, 최저생계비는 그 자체로 계산기준에 장애인 가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 한 목적을 달성할 만큼의 합리성을 갖춘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최저생계비의 근거가 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라는 것은 헌재가 이야기했듯이 매우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인간의 생활유형에 따른 상대적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 상대적 차이라는 것을 획일적으로 머릿수를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고, 여기에서 행정행위의 어려움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적어도 행정행위를 하는 행정부가 획일적 머릿수 기준을 들이밀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족구성원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여 최저생계비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 결정에서 헌재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은 이거였다.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을 함께 고려하여"  바로 이거다. 결정적인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을 보자. 돈 있는 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통에 국가 재정규모 맨날 허덕이는데 끝내 돈 있는 자들에게 세금 걷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겠다는 정책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국민 각 계층은 이로 인해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이해관계는 반드시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그런데 고려되는 이해관계의 당사자는 한 쪽으로 국한되어 있다. 바로 돈을 가진 자들이다. 돈을 가진 자들의 이해는 결코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며,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한 국가의 재정규모는 최저생계비에 가족 구성원의 장애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헌재는 바로 이 요구에 충실하는 것이 헌법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헌재의 결정은 다시 말해 너희 빈민을 위해 우리 가진자들의 주머니를 털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말을 하기 위해 헌재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들먹이고, 재량행위의 일탈을 들먹이고 반사이익을 들먹인다. 그러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만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다. 그 높은 자리, 그 고결한 법복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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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0 17:16 2004/10/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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