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행인이 왠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

경찰서, 법원, 기타 관공서... 그리고 병원...

뭐 다들 마찬가지신가.

 

아프면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곳이 병원인데, 병원 가기 싫어서 괜히 병 키우다가 되려 쌩돈 와장창 깨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병원 가야할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또다시 뭉기적 거리는 이 체질상의 귀차니즘은 앞으로도 꽤나 고치기 힘든 습관일 터이다.

 

암튼 지난 번, 어떤 사고를 통해 발목에 심각한 무리가 갔던 행인, 깁스를 하고 두 달이 지나 깁스는 풀었지만 여전히 걷기조차 불편한 발목 컨디션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 꼴을 보다못한 짝지가 병원 가면 금방 좋아질 걸 왜 버티고 있냐며 핵폭발을 일으키는 통에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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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동 소재 아나파의원. 2층이다.

 

그래서 간 곳이 아나파의원이었다. 면목동에 있는 거. 그나마 행인이 알고 있는 유일한 개업의가 하고 있는 통증크리닉 전문의원. 집에서도 멀고 학교서도 멀어 여간 지리적 취약함이 심하지 않으나 짝지의 핵폭발을 두 번 경험하느니 통원치료를 하는 것이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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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동 명의, 닥터 강의 위엄~!

 

 

아나파의원의 원장은 강용주. 언젠가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혹은, 강용주라는 세 글자의 이름보다도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이나 "최연소 장기수" 아니면 "마지막까지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은 사람" 등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용주형에 대한 이야기는 포털에서 관련 검색어를 검색해보면 많이 나오는 것이므로 과감히 생략. 다만, 몇 개 글을 걸어보면

 

하종강, "강용주-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최후의 1인"

 

김환균, "강용주를 말한다"

 

경향신문, "강용주, 인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의 대강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개요"라는 글을 살짝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어쨌든 간에 면목동 명의, 닥터 강의 과거사는 학술적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 하고, 그의 현재사와 행인의 치료기를 얽고 설거서 구라를 풀자면 이렇다.

 

우선, 이 동네에서 용주형이 '명의'로 손꼽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는 진심과 뛰어난 치료술...도 물론 한몫 하겠지만, 수년 간 '빵' 안에서 장기수 어르신들과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획득된 특유의 어떤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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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창구를 빛내고 계신 간호사님

 

동네가 동네인지라 이 병원에는 큰 병원에 가기 어려운 처지의 노인 환자들이 많이 있다.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알게 된 건데, 이 노인들에게 아나파의원은 일종의 사랑방 같은 거였다. 치료비가 싼 건 차치하고, 까운 입은 병원 원장이 붙임성 좋게 아들노릇 손자노릇도 하거니와, '빵'의 어르신들에게도 먹혔던 넉살좋은 구라가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에게도 먹히는 거. 만병치료의 근본은 마음을 편히 하는 거 아니겠나.

 

어쩌면 그건 용주형이 겪은 과거의 고통이 그에게 선물한 안목일지도 모른다. 조작, 고문, 투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진실로 아픈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으로 깨닫고, 그래서 환자들에게도 무엇보다 먼저 즐거운 마음을 제공하는 것. 통증클리닉은 단지 삐걱거리는 무릎을 주물러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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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 같은 치료실. 근데 사진이 영 음침하다능... ^^;;(실제론 밝음. ㅋ)

 

그러다보니 여타의 병의원과는 달리 이곳 아나파의원의 치료실은 언제나 씨끌벅적하다. 시골장터처럼 윗녘 할머니와 아랫녘 할머니가 침상을 나란히 놓고 왁자하게 떠들기도 하고, 간혹 주사맞으러 온 아이들이 방성대곡을 할 때면 동네 어르신들이 서로 달래주기도 한다.

 

우짜되었던동, 발목을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인 행인, 여기서 한달 넘게 물리치료며 약물치료를 했다. 그런데 사실, 다년간 운동으로 몸을 다져왔던 행인(푸웁..)의 입장에서, 발목 인대파열 정도는 장기간 푹 쉬면 어느정도 낫는다는 것을 아는 이상, 치료에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고, 다만 그 기간을 좀 단축시켜보겠다는 의지 정도만 있었더랬다.

 

하나, 사람 심정이라는 것이 밥 먹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거라. 몇 차례 발목치료를 받다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회복이 되는 것이 느껴지는 통에 슬쩍 욕심을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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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진료 대기실. 통증치료 전문이지만 왠만한 의원에서 하는 진료는 다 한다.

 

원래 행인에겐 고질병이 있었더랬는데, 그건 바로 오른쪽  어깨의 통증. 이건 상당히 오래된 병증인데, 병원도 다녀보고 한의원도 다녀보고, 주사도 맞고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해봤으나 그닥 호전되질 않는 통증이었다. 몇 년 전에는 아예 팔이 어깨높이 이상 올라가질 않아서 눈물을 질질 흘리며 한의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머리 허연 의원께서 하신다는 말씀이, "일을 하지 말게"였다...

 

그런 전력이 있었던 터라, 어깨통증은 그냥 달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의'가 치료하면 뭐 좀 달라지는 것이 있을라나 싶어서 어깨치료도 병행했다. 오호...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어차피 생활습관이라던가 통증이 진행된 기간이라던가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완치', 즉 완전히 통증이 없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거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원래 몇 시간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질을 하다보면 어깨가 아픈 것은 물론, 그로 인해 두통까지 심하게 발생하곤 했는데, 한달여 치료를 받고 난 후 이제 그전 같은 통증이나 두통은 일어나질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만으로도 '명의' 타이틀 붙여줘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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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면목동 명의 닥터 강의 포스를 흡수하고 있는 듯한 저 뼉다구들은...

 

용주형에게는 미래에 관한 모종의 그림이 있다. 인권활동가들이 마음 편히 찾아와 통증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거. 많은 활동가들이 알게 모르게 통증 하나씩은 달고 산다. 어깨와 팔목, 손가락은 물론(워낙 키보드와 마우스를 많이 다루므로), 허리며 기타 관절에 고통을 느끼는 활동가들을 많이 보아왔단다.

 

인권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경제적인 곤란은 차치하고라도 쉽사리 시간 내서 물리치료받기도 힘든 상황이 많이 있다. 달랑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몸이 꽤나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시간내는 거 조차 힘든 게 인권활동가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

 

그래서 용주형은 인권활동가들의 접근이 쉬운 곳에서 그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어허... 그렇다면 면목동 노인네들은 어떻게 하라고...

 

하긴 그 때가 언제가 될라는지는 모르겠다만, 인권활동가들이 사랑방처럼 몰려가 여기가 아파여, 저기가 쑤셔여 하면서 마음 놓고 치료를 받는 때가 오면 좋겠다.

 

용주형은 바쁘다. 인권연구소 창에서 개최하는 강좌에도 나간다. 수강생으로. "아니, 인권강의를 하실 짬밥이 거기 가서 수강생으로 앉아 있음 거 다른 사람들 되게 부담스럽잖우?"라고 농을 쳐봤는데, 용주형은 그렇지 않단다. 워낙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보니, 요즘의 인권담론을 따라잡기 힘들단다. 그래서 가서 배우는데, 어렵긴 해도 재밌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조작간첩사건 등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과 함께 "진실의 힘"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진실의 힘"은 과거 조작간첩사건의 피해당사자들의 치유와 재활지원, 인권침해사건의 진상규명, 연구활동, 고문방지조약 이행감시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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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7호선 상봉역 하차, 5번이나 6번 출구로 나와 청량리방면 버스로 딱 한 정거장. 동부시장.

 

솔직히 고백하건데, 아나파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좋기는 했지만, 그와 더불어 아나파의원을 찾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이 아나파의원이 자리잡고 있는 면목동 동부시장의 시장통.

 

이 시장통에는 맛있는 집들이 꽤 많다. 면을 기가막히게 깔끔하게 삶아내는 골목길 국수집, 근 30년을 빵을 만들어파는 진짜 싼 가격의 시장빵집, 20년 되었다는 튀김어묵 핫바가게 등, 시장골목을 지나가다보면 통증치료보다도 허기를 달래는 것이 급선무가 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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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쟈게 맛난 집들이 요소요소에 숨어 있는 동부시장

 

시장통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 많이 먹어 원기 회복하고, 아나파 의원에서 각종 치료를 받고 그러다보니 발목은 이제 축구를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치, 어깨는 훨씬 좋아졌다. 제일 좋은 건 두통이 사라졌다는 거. 물론 그 전처럼 삐딱하게 살면 여지없이 재발하겠지만. ㅋ

 

면목동 명의 닥터 강의 장난기 어린 웃음과 격의 없는 구라가 동부시장 한 구석에서 여전히 터져나오기를 바란다. 삶이 그 자체로 고통이라지만, 그 고통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삶은 그런 대로 버텨볼만한 거 아닐까. 자신이 버텨왔던 것처럼, 다른이들도 버틸 수 있게 용주형이 그렇게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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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8 14:04 2010/11/08 14:04

막는다고 막아지냐?!

from 옛글 2009/10/07 23:37

행인[웃을 권리를 보장하라!!!] 에 관련된 글.

이건 뭐 잊을만하면 툭툭 튀어나오는 이야긴데, 한국의 검경과 정보통신부...가 아니라 이젠 방통위, 이것들이 떼를 지어 불량사이트 차단한다고 설레발이 치는 짓을 아직도 하고 있다. 물론 세계 최강 IT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IT인프라 선진국인 대~한민국의 뛰어난 두뇌들은, 검경과 방통위, 그리고 최근 들어 군바리들까지 나서서 온라인을 청결하게 만들겠다고 수작질을 하던 말던 지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고야 마는 아름다운 능력들을 구사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지금껏 온라인 검열하고 차단한다고 난리 버거지를 쳐왔던 국가기관들이 사실은 쥐뿔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뭔가 하고 있다고 생색내기 행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 사실상 얘네들이 한 짓이라곤 자유로운 온라인을 왜곡시키면서 이 씨잘데기 없는 짓에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하여튼 돈지랄을 해도 유분수지, 이것들은 왜 해봐야 소용도 없는 일에 세금을 처바를까? 지돈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러는 걸까나?

 

아무튼 이런 삽질들이 얼마나 캐삽질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시츄에이션이 발생했다. 통일부 국감장에서 한나라당의 정진석의원이 이 사실을 폭로하였던 거다. 아예 시연까지 하면서 얼마나 쉽게 정부의 사이트 차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게 통일부 국감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먼저 유심히 살펴야 한다. 또한 질의자가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이 시츄에이션이 왜 나타났는지를 알게 될 거다.

 

간단히 말해, 정진석은 정부의 사이트 감시와 차단능력이 쥐뿔이나 프록시 프로그램 하나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거고 바로 그런 이유로 청정무구해야할 남한의 인민들이 북조선 사이트를 쉽게 드나들면서 주사돌이들의 빨갱이 사상에 시뻘겋게 물들고 있다는 것. 물론 정진석은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온라인 대남적화사업을 걱정하면서 언능언능 하루속히 제대로 차단해보라는 주문을 하는 거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지만, 이 지적에 대해 통일부 장관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문제가 통일부 국감장에서 다룰 일이 아니라 방통위나 정통위에서 다룰 일이라는 것밖엔 없다. 통일부장관은 지금 그랜드 바겐 뒤치닥거리로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니까.

 

사실 문제는 정진석이 주장하듯 북한 사이트에 풀방구리 쥐드나들듯이 하면서 주체사상에 흠뻑 젖어버릴 위험이 있는 남한 인민들이 아니다. 누누히 말한 것이고, 위에 트랙백 건 지난 행인의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북한 사이트, 예컨대 김일성대학 온라인 판이건 뉴스사이트 '내나라' 건 조선중앙방송이던 간에, 제정신 박힌 남한 인민들은 그 사이트들을 보면서 '1박2일'보다 더 재밌다는 생각을 하긴 어렵다.

 

이건 뭐 철지난 비주얼에, 무슨 남한에서 국방위원장을 흠모하는 학생들 수만명이 연일 데모질 한다는 개구라에, 고막에 똥침 놓는 듯한 주체창법 합창이 난무하는 사이트를 보면서 뭔 재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행인처럼 폐인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갖가지 오덕질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인류들에겐 심심풀이 땅콩쯤 되는 우스개로 보일 수도 있다만.

 

따라서 오히려 북한 사이트들에 대한 폐쇄조치는 걍 풀어 놓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남한의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어떤 사람이 이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가 북한 헌법을 보게 되었다고 하자. 이 북한 헌법의 서문만 보더라도, 햐~ 이거 완전 개독하고 트윈스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서도, 북한 사회주의헌법 서문은 이게 제정신박힌 헌법 서문이라기보다는 김일성 용비어천가 혹은 창세기에서 조물주가 천지창조하는 대목쯤 된다. 이거 보고 감동먹고 주체사상 만쉐이 하는 사람을 우리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물론 지금도 그런 애들이 있긴 있다만, 남한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때마다 성조기 들고 광장으로 뛰어나가는 아메리카교 신도들에게도 자유를 허락하는 나라기도 하고.

 

정진석은 매우 적절하게 한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남한 정부의 사이트 차단이라는 것이 조또 헛지랄이라는 거. 반면 정진석은 그 해법을 잘 모르고 있다. 이런 건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어차피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최대의 사기꾼들은 주사파라기보다는 개독교다. 주체사상은 실체라도 보여줌으로써 가부간에 결정을 할 수 있도록이나 해주지, 이넘의 개독교는 실체도 없는 천국을 운운하며 개뻥을 쳤지만 지난 2000년을 지겹게 살아남아 이 땅을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함성으로 덮어버렸다. 그래도 놔두고 있잖나?

 

막는다고 막히는 일이 아니다. 여담이지만 정진석이 예로 든 그 자동 프록시 프로그램, 이미 문제가 된 일이 있다. 현재 관공서 내에서는 포털사이트에 접근이 안 되는데, 보안문제가 그 이유다. 지난번에 국가인권위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넘의 포털을 이용할 수가 없어 프로그램 하나 내려받는데 아는 후배에게 전화질하고 이메일고 프로그램 주고받고 생 쑈를 한 일이 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국가기관 내에서 외부 포털에 접근하기 위해 이런 자동 프록시 프로그램을 까는 경우가 있나본데,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오히려 바이러스 감염 등 보안에 더욱 취약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냥 다 열어라. 이 참에 되도 않는 성인인증제 역시 폐지하고. 어차피 이런 프록시 프로그램 사용하는 연령층 중 상당수는 민쯩 발급받지도 않는 청소년들이다. 니들 대가리로는 자라나는 백년지동량들의 출중한 두뇌를 따라잡을 수도 없다. 애들도 다 그런 거 보면서 크는 거다. 니들은 안 그랬냐? 다시 한 번, 이런 거 막는다고 막아질 일이 아니라는 거, 이거 재삼 강조하는 바다. 엉아 말 들어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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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7 23:37 2009/10/07 23:37

386이 586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진보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을까? "민주화"로 상징되던 어떤 세대가 기왕에 자신들이 주장했던 이상의 가장 저급한 수준에 자족하면서 살고 있는 이 시기에, 20년을 격해 자기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상은 또 언제 어느만큼이나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 줄 수 있을까?

 

말걸기 덕분에 보게 된 연극,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는 그 제목과는 달리 결론적으로 "20대여, 니들이 구해라, 대한민국" 뭐 이런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극중에 드러나는 각종 사건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인은, 그러나 개별 사건들에 대한 나레이션 속에서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왜 다 아는, 어찌보면 식상하기까지 한 소재들 안에서 왜 이토록 낯선 이물감이 느껴지는 걸까? 그건 극의 주제에 동의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각 장에서 드러난 상황들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캠퍼스, 물론 행인이 70년대의 캠퍼스를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현장의 현실들, 청소년들의 고민들, 어른들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의 이중성, 뭐 이런 것들을 그나마 지금 20대보다는 더 실감나게 겪으면서 그 시간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뻔하디 뻔하면서도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이는 결말부분을 볼 때까지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은 어쩌면 이미 기성세대화되어 20대의 아픔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 현실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중 내내 개인으로 고립되어 홀로 자신의 고통에 분노하던 화자들이 결론에 가서 급작스레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정도의 수준으로 모이게 되는 흐름에 충실히 감정을 실어 따라가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행인이 주변에서 보게 되는 20대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니라 분노의 거세이다. 아니,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꼭 그렇진 않다. 그들은 과거 우리 삼촌뻘 세대, 혹은 우리 세대, 조금 더 쓰자면 한 10년 터울의 동생뻘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각각의 개인적 분노가 더하면 더 하지 덜하진 않다. 하지만 못내 아쉽고 안타깝게 느끼는 부분은 그 분노가 공유되지 못하고, 분노를 매개로 연대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주변에 보이는 20대의 한계는 바로 그들 세대가 분노의 자각을 넘어서 분노를 세력화하는 데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뻥구라닷컴에서도 몇 차례 세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행인은 그때도 그렇지만, 세대구분을 통해 전선을 형성하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선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 연극의 참고가 된 88원 세대가 가지고 있는 함정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고, 다만 그러한 세대구분은 결국 지배제력의 담론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아닌 말로, 한 10년 후에 이 연극의 제목이 계속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로 남을지, 아니면 "누가 대한민국 30대를 구원할 것인가?"로 업글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은가?

 

어찌되었건 간에 중요한 것은 20대로 상징되는 현실상의 피착취계급(혹은 계층?)은 단순히 20대라는 세대구분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령 알바원들이 속속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혹은 아직도 전태일 시절의 평화시장 봉제공장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이 상황에서, 오직 20대만이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에 녹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연극은 20대하고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행인에게 이처럼 다른 각도에서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다시 20대로 포인트를 돌려보면, 적어도 "20대여, 니들이 구해라, 대한민국"이라는 귀결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이미 잃을 것이 조금이라도 생겨버린 기성세대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거, 혹은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는 거, 이건 그닥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도 있지만, 역사는 장년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돌려말해 장년의 비애일 수도 있겠으나, 장년들은 슬퍼말 일이다. 청년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 장년은 청년들에게 언제나 짱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금, 변혁의 주체는 분노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걸어야 할 대상을 찾아내고 그들과 함께 분노를 공유하고 분노로 연대해야 한다. 다만 그 연대가 단지 연배가 비슷한 집단 안으로 수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극 말미에 "우리가 한 달에 만원만 내면 20대를 위한 시민단체를 만들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단체는 영원히 재생산되는 20대만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몇 년 후에는 30대, 또 몇 십년 후에는 60대를 위한 시민단체가 될 것인가?

 

탄탄한 구성과 훌륭한 연기 덕분에 간만에 몰입할 수 있었던 연극이니만큼 속이 쓰리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20대라는 세대구분의 한계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연극을 좀 봤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공연장 바깥의 음습함이 꼭 연극을 보고난 후의 심정 같아 갑갑해지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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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6:45 2009/07/13 16:45

순직

from 옛글 2009/01/22 12:16

이제 서른 둘이었단다. 남겨놓고 출근하기가 망설여질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도 있었단다. 이렇게 단란한 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동시에 그는 직분에 충실하고 명령에 충성하면서 살던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 아침에 불에 타 숨졌다.

 

경찰과 언론은 이 죽음에 대해 "순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안타까운 젊은이의 "순직" 앞에 그를 순직케한 명령을 내렸던 어떤 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순직한 부하의 영정을 목전에 두고 흘리는 안타까운 눈물?

 

"순직"이라는 것은 소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사망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뜻 봤을 때, 이번에 사망한 경찰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순직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순직일까?

 

아수라장의 현장, 과잉진압.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누가 죽느냐, 얼마나 죽느냐의 문제였을 뿐. 제정신이 박힌 지휘자라면 현장의 상황을 숙지하고 그곳에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했어야 한다. 적어도 이 사건에 있어서 경찰은 사건의 현장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부터 판단했어야 한다. 어차피 보상과 관련해 벌어진 문제. 일차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당사자들은 재개발 조합이었고, 개발이익을 노려 뛰어든 건설사였고, 이들의 이해를 적절히 조절해야할 서울시와 용산구였다. 경찰은 원천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불법과 위법을 분쇄해야한다는 독수리 오형제식 지구방위의 사명만이 있을 뿐이다. 아, 정확히 말하면 경찰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경찰의 수뇌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경찰, 아니 정권의 입맛에 맞춰줌으로써 한 자리 하고 싶은 경찰 수뇌부들의 머리속에는 상황에 대한 판단, 개입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리하여 떨어진 명령. 대 테러진압을 담당해야 할 테러진압부대를 철거용역깡패들이 하는 짓에 투입했다. 한국 경찰이,  그 경찰 중에서도 정예 대 테러진압부대의 위상이 철거용역깡패들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상추락을 아무 의심도 없이 경찰의 수뇌부가 결정한다. 권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물론 명령을 내린 당사자는 전혀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위축을 받을 이유가 없다. 현장의 몸빵은 저 밑에 보이지도 않는 끝자락에 있는 어느 쫄따구가 때울 것이고, 지구방위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미천한 철거민들 몇 명의 몸에 피멍이 든들 어떠하랴? 지휘권을 가진 그는 명령만을 내리면 그뿐이다. 그 이후에 사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알 바가 아니다.

 

부하가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센스만 발휘하면 된다. 폭도에 의해 "순직"한 그에게는 일계급 특진과 국립묘지 안장으로 모든 보상이 끝난다. 철거민이 죽으면? 법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라고 한 말씀 해주시면 끝난다. 죽은 사람에게 살짝 애도의 한 마디 던져주고 앞으로도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노라고 안면 근육 굳혀가며 단호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마치면 그뿐이다.

 

손해볼 거 없는 장사 아닌가? 그래서 명령했다. 진압하라! 그 명령에 따라 애꿎은 부하경찰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철거용역깡패들에게나 적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할 여유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침투를 감행한다. 그리고 옥상에는 불이 붙었다. 옥상바닥을 따라 흘러가는 불붙은 시너 위로 물대포를 쏜다. 시너는 더 빨리 더 넓게 퍼지면서 좁다란 건물 옥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죽고 경찰 1명이 죽었다.

 

이거 순직인가? 지휘관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무리한 작전명령으로 죽어간 그 경찰은 과연 "순직"한 것인가? 명예로운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던 것이 아니라 기껏 철거용역깡패의 대리인 노릇을 하다가 죽은 것이 "순직"인가? 적절한 보상을 통한 합리적 해결의 방법을 팽개치고 경찰을 동원한 공권력으로 철거민들을 쫓아내기에 혈안이 되었던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 "순직"인가?

 

일반적으로 이런 죽음을 두고 "순직"이라는 표현을 하기 보다는 "개죽음"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이 개죽음을 당한 그이에게 영예로운 "순직"의 화관을 둘러줌으로써, 그리고 그 앞에서 살짝 눈물을 찍어내 줌으로써 지휘관은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물론 현장에서 "순직"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그는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우아하게 달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과잉진압명령으로 인해 5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죄과를 물어야 하는 동시에, 그는 부하경찰을 개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이런 지휘관이 있는 한, 그 밑에 부하들은 언제든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 명예라는 것 하나를 긍지로 삼고 사는 그들의 목숨값을 단지 개값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자는 지휘관의 자격이 없다.

 

이런 자를 경찰수뇌로 임명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명박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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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12:16 2009/01/22 12:16

1. 짱돌 투척의 주체

 

짱돌을 던질 주체는 오히려 20대다. 어쩌면 이 20대가 이젠 짱돌을 던질 이유조차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은 된다만.

 

이번 18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이 28%라고 하는 조사가 나왔다. 물론 이 결과는 부재자 투표를 한 군바리들을 포함한 것이므로 실제 자발적 투표참여율을 보면 28%보다 훨씬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20대 층의 겨우 전체 5분의 1도 하지 않은 투표에서 53%에 달하는 청년들이 한나라당을 찍었단다. 청년의 보수화가 우려되니 어쩌니 하던 이야기들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수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온라인에서는 20대 성토론이 한참 유행이다. 숫자도 많거니와 뭐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링크까지 걸어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관심있는 분들은 포털이나 메타블로그 사이트에서 "20대", "투표"라는 태그만 쳐도 상당한 분량의 글들을 볼 수 있을 거다.

 

비판하는 측도 있고 옹호하는 측도 있는데, 양측 다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또 일부 극단적인 이야기를 한다손 치더라도 한편으로는 양쪽 모두에서 받아들일 부분이 있기에 개별적인 논의에 대한 평가를 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은...

 

시간적인 한계나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보니 요즘 20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이 없었어도 대강 주변에 보이는 20대들의 현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학가는 이미 양극화가 진행될 대로 진행되었다. 양극화의 표본실이 된 대학에서 지난 하반기를 보낸 결과 대충 오늘 벌어진 이 20대 성토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어쨌든 결론은 그거다. 20대에게 짱돌을 던지시는 분들, 그분이 같은 20대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사회에 짱돌을 던질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20대이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는 그 짱돌을 던져야할 주체들이 지금 짱돌을 던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결과를 놓고 20대가 이토록 성토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은 물론 짱돌투척의 주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거다.

 

왜 그럴까?

 

 

2. 20대에게 진보를 원하기 전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 것은 "뉴타운"이었다. 노회찬이라는 걸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노원병의 선거는 7막7장의 승리였고, 홍종욱은 이제 4년 임기동안 8막 8장을 쓰게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없다. 일요일(4월 13일)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을 보면 그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먹고 살기 빠듯한 사람들조차도 "뉴타운"이란 단어 앞에서 설레임을 주체하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공약집에서 빼버린 "대운하" 대신 "뉴타운"을 전면에 내걸었다. 뒤늦게 유인태가 후회의 탄식을 내뱉었지만 야당의 입장에서도 이 "뉴타운"의 위력은 피해갈 수 없는 초특급 태풍이었다.

 

한달 벌이 해봐야 가게 월세 내고 애들 학비 하면 남는 것이 없는 사람도 심정적으로는 노회찬을 지지하나 표는 홍종욱을 찍어야 겠다는 이율배반적 행위를 고민한다. 그건 당장 내 주머니에 뭔가가 남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하는 대표자가 장차 어떤 훌륭한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포크레인 소리 웅장하게 울리면서 타워크레인이 윙윙 돌아가는 마천루를 향한 청사진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물론 이 분들은 자신들이 기대를 한껏 가지고 있는 뉴타운이라는 존재가 결국 자기 자식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선 별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투기심리가 자식들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정도다. 오른 집값만큼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이분들에겐 버블의 붕괴로 잠정추계로 200조엔이 날라간 일본의 부동산 열풍은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나마 그 나라엔 1억이 넘는 인구의 내수라도 있지...

 

부모의 심리가 이러한 터에 그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아닌 말로 우리 부모님의 "집값"이 오르면 내 앞으로 떨어질 떡고물이 그만큼 늘어나는 판국이다. 20대가 가지고 있는 인지능력 또는 사회적 각성이라는 것이 이 유혹을 피할 수 있을만큼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단 벽보고 반성해야 한다.

 

물론 20대는 자기 사고를 가지고 세상물정을 판단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20대라고 해서 눈감고 앉아서 돈놓고 돈먹기만이 국민성공시대를 살아갈 국민된 자세라고 자기세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에게 "뉴타운" 공약에 현혹된 부모들의 심기를 거슬러가며 그 "뉴타운"이 결국 당신들의 자식들을 잡아 먹을 거라고 큰 소리로 외칠만한 내면의 무엇인가를 우리 사회는 마련해주지 않았다. 일부 20대가 각성했을지라도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왜? 소위 기성세대라는 사람들, 또는 20대의 형뻘 되는 30대 조차도 20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대의 보수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봤는데, 그 걱정하는 만큼 그들이 20대의 보수화를 막기 위해 한 일은 뭘까? 아닌 말로 길거리에서 좌판 벌려놓고 20대들과 함께 뒹굴기를 했나,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제 얘기처럼 들어보길 했나? 거창하게 글쓰기 하고 거창하게 강연회하는 것으로 만족한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돌아앉아 요즘 애들이 걱정이야 하면서 홀로 우뚝 서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벌써 마음만은 "뉴타운"에서 살고 있는 부모세대와 다른 어떤 선택을 20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과욕을 넘어 공상이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20대를 사회에 관심도 없고 어른보다도 더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총선의 투표성향을 놓고 짱돌 투척을 하기 전에 과연 우리는,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3. 20대가 짱돌을 들어야 하는 이유

 

등록금 천만원시대에 돌입했는데, 어째 그 당사자들인 학생들은 이렇게 조용한가라며 통탄하시는 분들, 통탄 하시기 전에 그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시기 바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학가의 양극화, 이거 단지 양극화되어 심각한 것이 아니라 그 양극화가 가져오는 결과가 무섭기때문에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혹은 선거가 아니더라도 사회문제에 대해 20대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 혹은 그 원인은?

 

양극화의 한 켠에선 하루에도 2~3개의 알바를 해야 겨우 생활비를 버는 학생들이 있다. 새벽엔 신문을 돌리고 낮엔 커피숍에서 서빙을 하고 밤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뛰는 학생들. 이게 지금 1970년대 얄개시대 찍던 그 시절의 고학생들 이야기같은가?

 

이들에게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충분한 독서와 다양한 취미활동, 폭넓은 인적 교류를 하라고 백날 이야기해봐야 그건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강의시간에 졸지 않는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친구들에게 충분한 독서, 다양한 취미활동, 폭넓은 인적교제 같은 이야기는 시간 널너리 하게 남고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할 돈은 여유있게 들고다닐 수 있는 별나라 친구들의 이야기다.

 

다른 한 켠에서는 등록금이 1000만원이 되건 2000만원이 되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학생들의 부모가 모두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이 앉아서 돈을 긁어모아 등록금을 대주던, 등골이 휘게 쎄가 빠지도록 일해서 겨우겨우 등록금을 마련해 주던 간에 부모들에게 경제적 금전적 책임을 모두 맡기고 있는 학생들은 지금 등록금이 문제가 아니다.

 

취업준비해야하고 영어시험준비해야 하고 틈나는대로 해외연수도 해야하고 더 여유가 있으면 유학준비도 해야한다. 이런저런 여유가 없더라도 당장 등록금의 걱정이 없다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차원에서 고시공부를 하기도 하고 한 발 더 나가서 까이꺼 기왕 들이는 돈 알차게 들여보자는 심정으로 로스쿨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중간에 있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적절히 아르바이트 하면서 적절하게 부모님의 뒷배를 받고 있는 학생들. 그러나 이들 역시 바쁘긴 마찬가지다. 양극단의 어느 한쪽에 약간 치우친 생활을 하느라고.

 

어쨌든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그 처지에 관계 없이 바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바쁜 와중에 어른들은 강력한 소비계층으로 부상한 20대의 주머니를 어떻게 울궈먹을 것인가를 연구하며 돈만이 지상 과제임을 음으로 양으로 주입한다. 19살에 치룬 수능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은 졸지에 낙오자라는 오명을 써야 하고, 정치인은 탈법 불법을 하던 성범죄를 저지르던 사기를 치던 간에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친다.

 

총체적으로 보자면 이 땅의 20대는 말 그대로 "방치"되고 있으며, 방치를 한 주제에 어른이라는 작자들은 이들에게 잘 날 것을 요구하고, 그 잘 나는 방법 역시 돈이라는 지극히 속물적인 결과물이 얼마나 내 앞에 놓이는가를 기준으로 판별됨을 가르친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느니 보수적이라느니 한다.

 

이런 차원에서 20대는 짱돌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보수고 진보고 간에 양측 모두에 짱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 양쪽 모두 오늘날의 20대를 만들어낸 제조업자들이므로. 양쪽을 향해 짱돌을 던지는 20대를 향해 양비론이라고 비판하는 닭짓은 무시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그런 비판을 하는 이들에게는 한 개 던질 짱돌 2개를 던져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온라인에서 20대를 성토하는 글들에 달리는 덧글 중에는 상당히 전투적인 20대의 글들이 보인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 행위"라는 초현실적 자기방어에서부터 니들은 그렇게 잘났냐는 항의까지 다종다양한 의견들이 보인다. 어쨌든 온라인상에서는 일부 20대가 자신들에게 날라온 짱돌을 다시 주워 던진 쪽으로 집어 던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오프에서는?

 

 

4. 20대가 짱돌을 놓을 수 있는 조건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진보신당이 선거기간 중에 진행했던 온라인 미디어가 있었다. "칼라TV"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애초 컨셉은 차치하고라도 이게 거의 "막장TV"가 되었다. 진중권이 나와서 전화도 받고 기타도 치고 하면서 막장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상당한 인기를 끌어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

 

사실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긴박하게 급조되다보니 진중권의 원맨플레이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디씨인사이드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삘"받는 진중권의 폭주가 발생하는 등 완전 난장판으로 진행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다가 4월 7일(월)에 홍세화선생이 출연하고 진중권씨가 대담을 하는 형식의 방송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놀라운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애초 이 "칼라TV"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방송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고, 그래서 진행 중에 전화도 받고 채팅도 하고 그랬다. 아프리카 방송을 통해 진행되는 동안 채팅창에는 예외 없이 디씨의 소위 "찌질이"들이 몰려와서 채팅판을 특유의 난장질로 도배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세화선생과 진중권씨의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채팅창의 분위기는 "찌질이"들의 분위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나갔다. 사람이 바뀌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시덥잖은 소리 해가며 깔깔대는 것을 낙으로 삼던 그 채팅창이 왜 그렇게 토론하고 사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을까?

 

문득 떠올랐던 것은 "마스터 키튼"의 한 에피소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런던 어느 지역에서 파괴된 건축물들을 강의실 삼아 노상 강의가 열린다. 거기서 사회에 대해 강의하고 질의하고 토론한다. 그 전쟁의 참혹한 한 가운데서, 그들은 구태여 왜 당장 살아남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을 하는 것일까?

 

또 하나의 에피소드. 아우슈비츠의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수용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낭송회를 했다는 어떤 사람. 매일같이 벌어지는 지옥도 속에서, 공포와 원한이 가득찬 그 속에서 시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채팅창에 들어왔던 이들이 배고팠던 것은 자신들의 상상력이었다. 그들에게는 홍세화 선생이 말하는 볼테르가 그냥 "네이버에게 물어"봤던 볼테르와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거다. 그 말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 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상상력이 어떤 건지를 그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확인했고, 그걸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던 거다.

 

20대가 처한 오늘의 현실은 희망적일까, 아니면 절망적일까? 등록금마련에 지치고 취직준비에 지친 오늘의 20대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도록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무엇인가를 그 윗세대, 또는 그 위의 윗세대들은 얼마나 준비해 주었던가?

 

총선의 결과를 보고 20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짱돌을 기성세대를 향해 집어 던진 거다. 그걸 맞은 기성세대들은 많이 아픈 거고. 아프다보니 비명을 지른다. 이 어린 놈의 쉐이들이 우째 사회엔 관심도 가지지 않고 지 생각만 하면서 사냐고.

 

그들이 이번에 집어 던진 짱돌이 아팠다면, 그들의 손에서 짱돌을 놓게 하던지 아니면 그들이 진짜 짱돌을 집어 던져야할 대상이 누군지를 가르쳐 주던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공허하게 강단에서 또는 언론 지면에서 우아한 말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이 "막장"까지 가는 컨셉으로 전화연결 해가며 진행했던 "칼라TV"는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특히 홍세화라는 사람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표현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혹자는 그 두 사람이 한 이야기가 너무나 흔하디 흔한 이야기기 때문에 무게감이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진중권은 진보신당의 정책에 대해선 완전 무지하면서도, 더불어 자신이 알 수 있는 분야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이를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것에 대해 비판할 소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중권 홍세화 두 사람의 "막장컨셉"은 고담준론으로 무장한 채 고고하게 아래를 바라보며 자신의 먹물이 얼마나 진한지를 보여주던 수많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줄 건 주고 나서 욕을 하던 비난을 하던 해야 한다는 것. 20대가 지금 배고픈 것은 자신들의 현실을 보듬어 안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무엇인가이다. 그거 주지 않으면서 짱돌을 던지거나 왜 짱돌 던지냐고 항의할 일이 아니다.

 

 

5. 색다른 프로그램을 고민하자

 

폭탄맞은 런던의 어느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던 난민들이나,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 옆에 있던 유태인들보다 지금 대~한민국의 20대가 나은 점은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기엔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다.

 

그런데, 폐허가 된 런던의 어느 한 구석에서, 그리고 아우슈비츠의 한 수용실에서 철학과 사회사상과 시와 노래가 공유되었다. 폭탄을 피하고 독가스실을 피하는 시간 외에 그들에게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건 아닐 게다. 그들은 내일 당장 자신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한계상황속에서조차 실존하는 현재의 고통을 근원부터 살피고자 하는 욕구에 충만했다.

 

우리 20대라고 해서 그런 욕구가 없을라나? 천만에 말씀이다. 물어보는 족족 대답을 꼬박꼬박 해주는 "네이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충족시켜주는 것은 단지 간단한 상식일 뿐, 그것으로는 지적욕구를 만족시키고 이를 통해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게 하진 못한다.

 

지금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에 앉아 역사와 철학을 이야기해주고 시를 읽어주고 질문에 답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소통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광장에서 20대와 만나고 그렇게 20대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20대가 부당하게 얻어맞고 있는 짱돌의 포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20대가 가지고 있는 적의가 올바른 방향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이 뭐 없을까?

 

총선이 끝나고 난 후 계속 머리속을 헤집고 다니는 고민이다.

 

 

덧 : 짱돌은 투석을 함으로써 인마살상용으로 이용되며 한 손에 맞춤한 돌멩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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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4 14:50 2008/04/14 14:50

동동이님께 답변

from 옛글 2007/12/24 11:00

행인님의 [주름없는 뇌] 에 관련된 글.
 

동동이님의 덧글 :
음 근데 '그런데 이렇게 한나라당 기사회생 시켜준 것이 누구였더라? 사실은 바로 2004년 연말에 노무현과 열우당의 생쑈에 홀라당 속아 "열우당 2중대"를 자처하면서 국회의사당 앞을 새까맣게 메워가며 삭발 단식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때 이렇게 해서 열우당만 좋은 일 시켜주는 거 아니냐는 말도 많았지만 정말 조금만 더 하면 국보법 철폐될 것 같았거든요;; 지력이 떨어지는 저를 위해 몇줄만 더 설명 좀 부탁드려요.

 

동동이님의 덧글에 대해 조금 부연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답글을 달다가 내용이 길어질 듯 해서 아예 걍 포스팅을 합니다. ^^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선 이미 2004년도에 올린 포스팅 중에 일부 내용이 있구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2004년도 하반기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할 때, 미안하게도 저는 이런 식으로 운동하는 것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구세력의 집결만 추동한다고 생각했고, '끝장' 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제 기억으로 아마도 2004년도 여름쯤 민중연대 박석운씨가 '끝장'에 철폐연대의 기획단위가 되줄 것을 요구했는데, 제가 강력하게 반발했고 그 결과 공식적으로는 '끝장'이 철폐연대 내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끝장'의 멤버들이 거의 대부분 철폐연대 사업을 하게 되었죠. 사실 이 부분에서 저는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정세를 돌이켜 보더라도 탄핵정국 이후 갑작스레 다수 여당이 되었던 열우당은 애초부터 4대개혁입법을 끝까지 밀고 나갈 저력이 없는 완전잡탕정당이었습니다. 오직 바라는 바는 외곬수 노무현이 지들 뒷배가 되서 내내 지원사격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아시다시피 노무현은 어떻게 해서든 이라크 파병을 위해 한나라당의 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죠.

 

또한 잇다른 보수정당의 헛발질로 인하여 전세 자체가 극히 불리하게 된 남한 보수세력들은 어떤 계기로든 집결해야한다는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비록 수구세력이 궁지에 몰렸다고는 하나 그들의 세력 자체가 완전히 깔아뭉갤 수 있을만큼 축소된 것은 아니었죠.

 

국보철폐투쟁이 가열화되면서 제가 생각했던 이러한 부정적인 부분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국보철투쟁을 돌이켜볼 때 얻은 교훈은 딱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뭐든지 작명(作名)이 중요하다. 둘째, 믿을 놈을 믿어야 한다.

 

국보철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참 에피소드도 많이 있었는데요,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거는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는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법의 내용은 그저 미운놈 때려잡는 법에 불과합니다. 핑계야 북조선이지만 각 규정은 북조선을 빙자하여 누구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주어 팰 수 있도록 해놓은 거죠.

 

그러나 이름만큼은 번지르르 하게 "국가보안법"입니다. 이름이 이렇게 휘황찬란하다보니 그 법의 내용이 뭔지는 모르지만 국가를 보안하자는 법을 왜 폐지하려 하느냐는 비난이 빗발칩니다. 이게 딱히 "보수"나 "수구"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구요, 이데올로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인장에서부터 대학다니는 학생들조차도 그걸 왜 없애려고 하지? 하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애초 국보법 철폐에 관해서 이 사회의 논란은 이미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당위가 다 드러났습니다.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조차도 이게 문제가 있긴 한데 어차피 전가의 보도, 필요할 때는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다보니 함부로 없애긴 아까운 것일 뿐이구요.

 

그렇다면 국보법이 왜 문제다 하는 이야기를 새삼 네삼 할 것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자연도태시킬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더랬죠.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공안기관의 해체죠. 국정원은 해외 정보수집 등으로 그 역할을 한정시킵니다. 검찰 공안부는 해체해야죠. 경찰의 보수대도 마찬가집니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는 그놈의 '분실'이라는 거 없애는 것도 중요하구요. 이런 방식으로 국가보안법을 집행하는 단위들이 본래 제 역할만 충실하게 하고 괜히 간첩잡는다고 설레발이치는 짓 못하게 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의 손발을 먼저 잘라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그닥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믿을 놈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때 민주노동당에 와서 "열우당 2중대가 되더라도" 어쩌구 했던 참여연대 김기식 류는 원내 다수당이 된 열우당의 속칭 386 의원들과 탄핵의 구렁텅이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노무현이 국보폐지운동을 지원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생각을 했던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는 비웃음이 절로 났더랬습니다. 이런 인식수준을 가지고 운동을 하니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이 맨날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이나 잡아 끄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거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노무현이 탄핵되었을 때 민중운동진영이나 시민사회진영은 노무현은 물론이고 동시에 한나라당 의원들과 일부 열우당 의원들도 탄핵하자고 나섰어야 합니다. 괜히 말도 되지 않는 "친노 = 민주, 반노 = 반민주" 운운하면서 노무현 살리자고 생 난리칠 일이 아니었죠. 노무현은 이미 그 당시에 헌법의 평화규정을 위반한 자였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탄핵되어야 할 인물이었죠. 그러나 상황은 완전 개코메디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 앞뒤도 못가리고 촛불집회에 뛰어가곤 했습니다.

 

그랬던 노무현과 그 노무현 덕분에 한자리씩 꿰찬 386들, 좌충우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걔들에게 무슨 정치철학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까? 개인적으로야 그런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잡탕정당에서 잡탕이 되어 잡스럽게 노는데 걔들이 뭐 얼마나 지들 개인적 차원의 신념을 밀고 나갈 수 있겠어요? 게다가 노무현 입만 쳐다보고 살았던 넘들인데 노무현이 말 한마디만 바꾸면 얼마든지 입장 바꿀 수 있는 것들이 걔들이었죠. 대표적인 예가 유시민 아닌가요?

 

이 때, 참 많은 사람들이 국회 앞에서 그 추위에 떨며 고생을 했죠. 삭발까지 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이 집단으로 노숙을 하기도 했구요. 뭐 물론 깎을 머리도 없는 박석운씨가 삭발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사람들을 웃겼던 일도 있고, 대학로에서 하기로 했던 이주노동자 집회를 벅벅 우겨서 국회앞으로 옮겨놓고 그 추워서 덜덜 떠는 동남아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국가보안법 철폐해야 한다고 떠들던 당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들도 있었구요.

 

길바닥에서 고생한 사람들, 그 분들의 신실한 자세에 대해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되도 않는 소리를 해가면서 사람들 모아 앉혀놓고 마치 곧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것처럼 헛소리 하면서 뒤로는 열우당 의원들과 정치적 줄다리기를 펼쳤던 일부 사람들, 그 이후에도 자기 책임에 대해서는 일체 한 마디도 하지 않습디다.

 

그나마, 평가를 했던 단위는 인권운동단위였는데 그 평가도 참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이 예컨대 래군이형 같은 경우 어떤 기고글에서 "민주노동당은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다"던가 뭐던가 하는 표현을 쓰면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그러나 래군이형을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는 것이 오히려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은 지들 할 짓은 하지 않고 열우당 2중대 노릇하면서 분수에도 맞지 않는 오바질을 해버렸더랬죠.

 

적어도 민주노동당은 2004년을 즈음해서 파병을 획책한 노무현의 반민주성과 위헌성에 대해 가장 책임있는 비판세력이 되었어야 합니다. 이후 벌어진 한미 FTA 반대투쟁과 연결지어볼 때도 당시 민주노동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덕분에 이후 대 참여정부 투쟁에서 언제나 본질적인 부분을 짚지는 못한 채 항상 변죽만 울리고 말았죠. 아닌 말로 평택이 그 난리가 났을 때 박석운이나 김기식이나 오종렬이나 이런 사람들이 "노무현 타도" 한 번 외쳤습니까? 이거 민주노동당이 했어야 했는데 지들이 정당인지 시민단첸지 분간도 하지 못하는 당의 최고위원 등 지도부들은 그저 시민단체 간부들 말에 현혹되어 그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에 앉쳐 놓고는 결국 한나라당만 좋은 일 시켜 줬죠.

 

당시에 많은 분들이 동동이님처럼 조금만 더 하면 국가보안법 철폐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찬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안타깝더군요. 왜 이분들은 자기들 주변에서 자기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만 보고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왜 시청앞에서 서울역 앞에서 그 난리를 치는 수구세력들과 보수정당들은 보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아직까지도, 아니 앞으로 한 세대는 더 이 땅의 기득권 세력으로 활개칠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그 삽질 덕분에 한나라당은 기사회생했고, 드디어 10년만에 정권을 탈환했습니다. 한나라당 정권이 이명박 5년 후에 무너질지 아니면 앞으로 10년을 더 해먹을지 지금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탄핵정국 이후 한나라당을 더욱 궁지로 몰아 고립시킨 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등에서도 17대 총선처럼 저들을 수세로 몰아놓았다면, 지금과 같이 뻘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국가보안법투쟁만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판단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철폐투쟁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혹여나 국가보안법철폐투쟁만으로 보더라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장강의 나비가 아메리카의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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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4 11:00 2007/12/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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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님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의 실체] 에 관련된 글.

북핵에 눈물흘리며 감동하면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의 한길로 매진하자 노력하시는 이용대 의장 이하 주사돌이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당이 창당했다.

 

이름하여 "핵나라당"

 

비록 지금은 서로 합치기 어려운 구호를 내놓고 있으나 근본을 뒤벼보면 핵으로 강성대국을 꿈꾼다는 점에서 공통된 바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통 큰 단결" 차원의 결합을 재고하실만 하다.

 

참고로 이 핵나라당 후보인 정희원이라는 사람의 면면은 이렇다.

 


친절한 행인은 여러분들에게 핵나라당 홈페이지까지 링크시켜준다.

 

핵나라당 홈페이지

 

아이고 숨차다...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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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0 15:09 2007/10/30 15:09

야스피스님의 [코리아연방공화국] 에 관련된 글.
 

제목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의 실체"라고 했으나 실상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결정적 문제가 있다. 적어도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구호라면 그 구호를 달성하기 위한 밑그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질 않는 거다. 그런 비판이 있어서였던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이용대가 '말'지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의 비전에 대해 글을 올렸다.

 

'코리아 연방'은 어떤 나라인가? - 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국가 대안

 

정책을 고민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당이 내놓은 정책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평가해주고 동의해주길 바라지만, 이용대 의장의 이 '정책대안'은 될 수 있는 한 사람들이 좀 모르고 지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조선찌라시를 가끔 능가하는 민중운동계의 찌라시 "민중의 소리"가 이 글을 대문에 떡하니 걸어놓고 있는 상황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볼듯 하여 찜찜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용대야 뭐 더 이상 소개가 불필요할 정도로 그 머리 속이 일반의 상식으로는 이해불능의 지경에 까지 가 있는 사람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하는 음식점의 직원을 보며 북한의 "집단주의"에 홀라당 반하는 단순함을 자랑하던 이분은 동성애를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주장하는 개뼉다구 부러지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가 하면, 북핵실험에 대해 "자위권"차원에서 찬성한다는 해당적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려진 것이 다가 아니다.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까발리진 않겠다. 많이 알면 다친다.

 

암튼 이 희안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분이 원내정당의 정책위 의장을 할 정도니 당 돌아가는 꼬라지가 오늘날 요모양 요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국으로 가만히 앉아있음 중간이라도 갈텐데 이렇게 뜬금없이 한 소리씩 하시는 통에 밑천 다 드러나는 쪽팔림을 당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사람은 지가 하는 소리가 뭔 소린지도 모르면서 게다가 쪽팔림도 잘 모른다.

 

이용대의 글을 문장단위로 분석하다가 때려 치웠다. 뭐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 내나 코리아연방공화국 만쉐이~!를 외쳐대는 수준인데 이걸 뭐 분석하고 자시고 하는 것이 별반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만, 이용대가 말지 기고글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 건설안"이라고 제시한 구체적인 내용들만 좀 보도록 하자. 혹시 보시다가 애꿎은 모니터 싸대기 날리시는 일은 없도록 자제하면서 보시라.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안


  
  1. 당당한 나라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겠습니다
   (1) 대미의존정치 반대, SOFA·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
   (2) 국민 발안제 ·소환제 확대, 민중참여 예산제, 국민투표권 확대
   (3)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등 공안기구 해체
  
  2. 7천만의 염원,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건설하겠습니다
   (1)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한미군사동맹 폐기, 비핵지대화, 남북상호군축 등
   (2) 6.15남북공동선언 철저 이행과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제 정당·단체 연석회의 소집
   (3) 평화군축 100조 재원 마련, 천연자원 공동개발, 한반도 물류중심지화
   (4) 민족통일기구-연방의회·연방정부 구성, <코리아연방공화국> 창립
  
  3. ‘사람 중심, 노동 주도의 경제’를 실현하겠습니다
   (1) 한미 FTA 무효화, 국제투기자본 강력 규제
   (2) 비정규직 철폐와 청년실업해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고용책임제 실시
   (3) 부유세 도입으로 서민복지 실현
   (4) 기간산업 재국유화, 재벌해체와 민중참여 소유·경영 구조 실현
   (5) 공공은행 설립과 서민금융 활성화, 지역경제 활성화
   (6) 원-하청 불공정거래 엄단, 납품가 원자재가 연동제 실시, 중소기업 협동조합화
   (7) 대형유통구조 개선과 영세상인 보호, 생계형 노점상 탄압 금지와 합법화
  
  4. 농업을 공공산업화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겠습니다
   (1) 국가공공산업으로서의 농업의 지위 법제화,
   (2) 식량자급률 법제화
   (3) ‘국가기간농민제’ 도입 및 지역농업의 협업화
   (4) 직불제 전면실시 및 농축산물 최저가격 보장
   (5) 통일농업 기반 마련과 환경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
  
  5. 무상주택 공급으로 1가구 1주택을 실현하겠습니다
   (1) 1가구 1주택 법제화, 3채 이상 유상몰수와 집없는 서민에게 무상주택 공급
   (2) 개발권 공유제를 통한 토지공개념 실현
   (3) 환매수 공공분양주택제, 택지국유화와 대지임대부 공공주택제 실시
   (4) 공정 임대료·임대차를 보장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
  
  6. 무상교육ㆍ무상의료를 실현하겠습니다
   (1) 입시철폐, 공교육 강화, 고액과외와 사교육비 해소
   (2) 유아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 확대, 대학등록금 절반 인하
   (3) 국공립대 통폐합, 외고·자사고 등 귀족학교 폐지
   (4) 건강보험 보장 90% 이상, 공공의료기관 50% 이상 확대
   (5) 전국민 주치의제도와 예방·재활의료서비스 전면 실시
  
  7.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보장 및 사회참여를 책임지겠습니다.
  (1) 출산비용 전액 국가부담 및 모성권 보장
  (2) 취학전 아동 완전 무상보육ㆍ교육 실현 - 10분거리, 24시간 운영 ‘아동보육센터’, 국공립 아동 보육시설 50% 설립
  (3) 성차별 고용구조 철폐 및 여성 노동권 강화
  (4) 장애인 이동ㆍ교육ㆍ노동 평등권 실현과 차별 철폐
  (5) 이주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 권리보장
  
  8. 생태환경대안으로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1) 친환경 지속가능 ‘로컬에너지시스템’ 구축
   (2) 바이오디젤 법제화 및 생계형 에너지 사용자 보조
   (3) ‘원자력문화재단’ 폐지, 재생가능에너지산업육성과 일자리 창출
   (4) ‘교통ㆍ환경ㆍ에너지세’ 09년 완전 폐지, ‘순도 100% 환경세’로 전환
  
  9. 인간 존중의 건강한 사회문화를 꽃 피우겠습니다
   (1) 민중문화 - 부패,타락,향락 문화 척결, 인간·노동 존중의 문화 육성
   (2) 생계 및 창작활동 보장을 위한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마련
   (3)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예술 교육 확대
  
  10. 호폐평등의 새로운 국제협력을 추진하겠습니다.
   (1) 탈미 중심의 자주평화 외교 강화, 침략전쟁에 따른 파병 철회
   (2) 비동맹 영세중립국 지향
   (3) 통일 코리아 중심의 동북아 호혜 경제권 개척

절라 길다. 길긴 긴데, 이 10가지 테제 중에서 앞의 두 가지를 제외하면 뭐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 저거 원래 그냥 당 강령의 내용이고 지난 2002대선과 2004총선에서 공약으로 나왔던 거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코리아 연방공화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분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3번 항목 "‘사람 중심, 노동 주도의 경제’를 실현하겠습니다"의 (2) 비정규직 철폐와 청년실업해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고용책임제 실시를 보자. 이거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되면 이 문제가 삽시간에 해결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당장 철책 무너지면 북한에서 1000만 노동자가 발생한다. 선군정치 체제 하에서 당이 명령한 사업에 충실했던 노동자들이 자본의 흐름에 따라 남한 경제체제에 흡수되기 위해 내려온다. 지금 남한 1000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급기야 며칠 전에 또다시 노동자 한 분이 분신을 했다.

 

게다가 지금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노동자와 남한노동자 간의 평균임금의 격차가 얼마인가? 노동력을 제공할만한 적절한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한 북한의 노동자는 남한노동자들과 어울려 현재 남한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임금수준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통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되어야할 과제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라면 북한 노동자는 지금 남한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보다도 훨씬 열악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남한 노동자들 역시 대규모 이동해오는 북한노동자들로 인해 현재의 일자리조차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 있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이 부분을 도외시한다. '1국 2체제'라고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노동자들의 이동을 막을 수 없다. 단일화된 국가체계에서 남북이 일정기간 현재의 체제를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인민들의 이동권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최소한 북한 노동자들이 유입되었을 때 그들에게 남한 노동자와 똑같은 대우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방법과 유입된 북한노동자들로 인하여 남한노동자들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위 대안은 단지 "남한에서만 가능한 공약"일 뿐이다. 이걸 어떻게 코리아연방공화국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대체 "통일농업"이 뭘까? 주체농법? 한총련 애기들이 농활가서 농민들 앞에 두고 허구한 날 떠드는 통일농업, 도대체 그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다. 떠들고 앉았는 지들도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면 기냥 통일농법이라고 할 뿐 잘 모른다. 대체 그냥 앞에다 갖다 붙이면 공약이 되고 대안이 되는가?

 

일일이 분석해볼 시간이 없는데, 어쨌든 결론은 위 대안들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죄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아니라 당장 남한사회에서 현실에 부닥친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이걸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안"이라고 눙쳐놓는 수준에서 언론이 관심가져주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용대가리같은 이용대 정책의장은 하등 대선에 도움은 되지 않고 표떨어질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내년 총선 비례대표로 출마할 생각이 있어서 언론노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왜 이런 천하의 명문을 거대 일간지에 기고하지 않을까?

 

당은 이번 대선의 핵심구호로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을 선택했다. 코리아연방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뜻인가? 이토록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옹호하는 이용대는 어째서 끝까지 대선 핵심구호를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지켜내지 못했을까?

 

정책위 의장 정도 되면 뭐가 똥이고 된장인지 정도는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가금류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정책위 의장으로 밀어 올린 당내 주사돌이들,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동네 사람이 그렇게 없냐?

 

어쨌거나 이번 대선, 참 기가 차게 돌아간다. 대선 끝나고 나서 당이 어떻게 흔들릴지 걱정이 태산이다. 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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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0 14:59 2007/10/30 14:59

왈왈님의 [[펌]경상대 정진상 교수, '교육개혁' 2200km 자전거 대장정 나서] 에 관련된 글.

정진상 교수. 대단한 일을 준비하셨다. 원로에 고생하시겠는데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란다. 아무튼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정진상 교수께서 활동하시는 민교협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위조 사태와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 웃기지도 않은 일련의 일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체제에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 대안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정진상 교수의 용기와 민교협의 문제지적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분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못내 찝찝한 것은 지적되고 있는 바, '학벌'이 문제의 핵심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분들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서 아는 동생의 일화가 생각났다. 이 녀석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집에서 노는 거 하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재주를 발휘하며 재밌게 세상살던 놈이었는데, 어느날 덜컥 대학입학을 했다. 해서 행인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하루는 술 한잔 진하게 빨면서 저 먼 옛날 안드로메다에서 단세포 생물로 살아가던 전생이야기까지 하던 중 왜 대학에 왔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바구를 깠겠다. 이넘 저넘이 진실인지 아니면 개구란지 모를 그넘의 '이유'에 대해 썰을 풀었는데, 그 중 오늘 갑자기 생각난 이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녀석이 하루는 초등학교 다니는 지 조카의 가정환경조사선가 뭔가 하는 것을 지 형님이 쓰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란다. 그런데 거기 보니까 부모의 학력을 기재하는 난이 있더란다. 그 순간 갑자기 이 담에 자기 자식이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 가야하는데 거기다가 아버지 학력으로 '고졸'이라고 써야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단다. 지가 고졸인 거는 뭐 별로 쪽팔린줄 모르고 살았는데, 자식이 친구부모들은 다 대졸인데 아부지는 왜 고졸이냐, 쪽팔려서 학교 못다니겠다 이런 이야기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나.

 

행인, 솔직히 고백컨데 이 말에 동의하다못해 똥꼬끄트머리까지 절절히 울리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어릴적 가정환경조사서에 시시콜콜한 항목까지 기재를 하면서 이 따위 것을 왜 작성하나 하며 분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올라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넘 지금 보험설계사 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 어차피 대학졸업이라는 학력 없어도 그 일 잘 해치울 능력이 있던 녀석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세칭 명문대학 졸업장 가지고도 닭튀겨 파는 사람들 많다. 그 닭이 대졸자가 튀긴 것이라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성심성의껏, 닭 한마리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심성으로 정성스럽게 튀긴 결과로 오늘도 손님들은 생맥 500 한 잔과 튀긴 닭 한 마리를 맛있게 먹는 거다.

 

배움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오죽하면 제사지낼때 올리는 지방에 '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을 쓰겠나? 인간은 죽어서도 학생인 거다. 그런 차원에서 대학에 간다는 거 이건 말릴 일이 아니라 장려할 일이다. 문제는 오바질이다.

 

학교를 다녔건, 초등학교만 나왔건, 고등학교 중퇴를 했건 간에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하등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선결조건은 그거다. 그런데 이 문제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없다. 특히 학력이라는 것이 계급형성의 기본축이 되어 있는 남한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진상 교수나 민교협의 주장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선 별로 언급이 없다. 정진상 교수의 슬로건은 "△학벌 학력 간판을 부수자 △학벌 철폐로 차별 세상 끝장내자 △입시 폐지로 아이들을 살리자 △대학평준화로 사교육비 없애자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 결정나는, 미친 세상 갈아엎자"이다. 이 분의 관심사는 오직 대학이다. 대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있으되 대학 안 가도 사는데 지장 없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약소하다.

 

민교협 역시 마찬가진데 민교협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서울중심 대학서열체제 타파 △공직자 지역균형선발제도 도입 △입사원서에 학력기재란 삭제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평가되는 사회적 관행 정착". 입사원서에 학력기재란 삭제하는 정도가 들어있을 뿐이다.

 

이 분들의 발언 자체가 가지는 학력차별해소에 대한 의지가 매우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분들의 평소 보여주시던 행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교협 교수들 상당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문대학원제도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4년부터 촉발된 로스쿨과 관련하여 민교협은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경천동지할 아메바풍 교육개혁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프랑스 교육체제가 어쩌구 하면서 남의 나라 제도까지 동원하여 옹호되었던 이 '전문대학원제도 도입' 찬성론은 까놓고 이야기 해서 명바기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비견되는 삽질이다. 한국 사회의 이 기형적인 교육풍토에서 '전문대학원'이 대세가 되면 대학교육은 전문대학원 입시교육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특정분야 전문기능인력을 양산하기 위한 체계다. 그 본질은 파묻은 채 '전문대학원' 진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대학공부 열심히 함으로써 대학교육 정상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치원 원아들에게 눈깔사탕을 빨게 함으로써 칫솔질에 대한 메리트를 키워 충치를 예방하겠다는 말과 같다.

 

정진상 교수와 논쟁을 벌이던 중 '전문대학원 도입'이 결국 교수들의 밥그릇을 키우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나마 솔직한 정진상 교수, 그게 그렇긴 하다는 답변을 하시더라...

 

학력우대풍토에 대한 정진상 교수와 민교협의 비판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와 동시에 바라는 것은 보다 진정성 있게 '대학'이라는 교육단계에 함몰된 연구분석보다는 '대학'이라는 것을 논외로 놓고 논의를 전개해줄 수 없겠는가 하는 거다.

 

'입시'문제의 해결은 '대학평준화'라는 시스템 도입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만 18세에 치루는 수능시험의 성적이 평생을 좌우하는 마빡이 골때리는 상황을 깨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문턱도 못가본 사람일지라도 먹고 사는데 하등 지장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진상 교수의 자전거 전국 순회와 민교협의 강력한 입장표명이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금석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학력'이라는 말 자체가 그닥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며...

 

피에쑤 : 요즘 논문준비한다는 핑계로 남아도는 시간에 신문지들을 꼼꼼이 보게 되는데, 그넘의 칼럼은 죄다 무슨 교수며 한 자리 하는 인간들이 쓰고 있더라. 왜 이넘의 신문지에선 청소부나 버스기사 같은 사람들이 고정칼럼을 쓰는 꼴을 볼 수 없을까??? 아, 물론 TV도 마찬가지겠지만 TV는 보질 않아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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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11:58 2007/08/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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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님의 [사이트 차단!] 에 관련된 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집단의 근엄한 블랙코미디가 이제 완연히 물이 올랐다. 지난번에도 그 요사스러운 공문 한 장으로 인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결국 당 성명파동까지 유발했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 8월 8일자로 또다시 공문 한 부를 당에 보냈다. 제목 "시정요구 통보"라는 거창한 이 공문은 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111개에 달하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사실 마음같아서는 111개 게시물 전체를 이 블로그에 링크시키고 싶지만 귀차니즘의 발흥으로 인하여 포기하기로 하고, 웃기고 자빠진 이 코메디 행진이 언제쯤 막을 내릴까 궁금해하면서 잠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진면목을 보기로 하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문제로 삼는 게시물의 내용은 이렇다.

 

게시물 제목 "21세기 태양이신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라는 글의 한 대목을 보자.

 

"주체의 태양을 우러러 터치는 만민칭송의 메아리가 온 누리를 진감하는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는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민중의 다함 없는 경모의 마음을 담아 어버이 김일성 주석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며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 삼가 최대의 영광을 드립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역사에서 처음으로 절세의 위인을 맞이한 대 행운이었으며 우리 민족과 인류의 앞길에 자주시대의 여명이 밝아온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울라부라...

 

다른 거 하나 더 볼까?

 

게시물 제목 "선군정치를 받는 길에 참다운 애국애족이 있다"라는 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선군정치에 의하여 민족의 존엄과 이 땅의 평화가 지켜지고 자주통일의 밝은 전망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의 시대발전의 요구를 반영한 지극히 정당한 호소로서 우리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찬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는 이북의 선군정치의 위력에 질겁하여 이를 지지하는 이 땅의 민심을 가로막아보려고 필사발악하고 있다."

 

놀랠루야...

 

또 하나 보자. 게시물 제목 "민족의 수치를 털어버리자"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방식인 이북의 선군정치를 일심으로 지지하고 따르자! 이북의 선군정치는 막강한 군사적 억제력으로 미국의 핵전쟁야망을 제압하고 민족의 생존과 자주권을 수호하며 통일조국의 미래를 열어주는 만능의 보검, 오늘의 수치를 털어버리고 민족의 위상을 만방에 떨쳐주는 애국애족의 정치이다."

 

이거 보면서 어떤 분들은 볼살이 부르르 떨리는 노여움을 느끼실지 모르겠다. 혹은 팔뚝에 오리알만한 닭살이 돋아오르는 공포를 느끼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행인의 주변에서 이 글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다.

 

"푸하하~~~!!!"

 

이런 코메디가 없다. 근엄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동시에 그 문장의 구성과 단어의 조합은 가히 용비어천가를 능가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구상의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게다가 하나같이 "주체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놀라운 전도용어를 구구절절히 풀어쓴 것이다. 저 글들을 보라. 저게 어디 사상을 논하고 이데올로기를 논하는 글인가? 주일날 예배당에 가지 않고 물놀이간 사람들을 쎄려 패기 위해 신이 한 방 먹인 것이 쓰나미라고 주절거렸던 어떤 목사의 사고방식과 거의 판박이로 똑같아 보이지 않나?

 

아무튼 이 글들을 보면서 행인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거의 마빡이 수준의 코메디를 이렇게 엄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덕분에 행인은 언제나 하루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행인의 이 소박한 즐거움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결코 허용할 생각이 없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의 글들을 삭제하라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이 협박성 삭제통보는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행인으로부터 박탈하려는 음모의 소산이다.

 

하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보여주는 이 위헌적 작태 역시 행인에겐 웃음거리로 다가온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보여주는 근엄함과 삭제요구의 논리는 내용은 달리 하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주체천국 불신지옥" 수준의 코메디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하는 말을 보면 이렇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선군정치를 추종하는 한편 북한체제의 찬양,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문건을 내려받아 전재하거나 수정하여 게재하는 등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으로서 이를 방치할 경우 북한 및 불순세력들의 선전선동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해당정보의 전체적인 내용 및 태양, 그 정보를 제공한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동조하는 등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불법정보라고 판단된다."

 

앞서 북한관련 게시물을 신중하게 읽어본 후 행인에게 "푸하하~~!!!"라는 답을 해준 많은 분들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신중하게 판단한 위 내용을 본 후 행인에게 해준 답변은 이렇다.

 

"으하하~~!!!"

 

대한민국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거떨은 네티즌 알기를 닭으로 안다. 사실은 지들이 닭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솔직히 저 글들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할 정도면 진작에 대한민국은 사라졌어야 한다. 저정도 말빨에 넘어갈 국민들이 뭘 할 수 있겠나? 이런 논리라면 대한민국은 이미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이 무시무시한 위협을 매일 듣는 한국국민들이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려면 멀었다. 이건 적어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계도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국민들의 수준이 오히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닭으로 볼 정도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아무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코메디계 장악을 위한 노력은 가상하나 행인은 즐거울 권리를 빼앗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내겐 적어도 웃을 권리가 있단 말이다. 스탈린시대의 소비에트나 구 동독의 그 엄혹한 세계에서도 웃음은 존재했다. 하물며 민주국가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웃을 권리를 박탈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이다.

 

어쩌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자기들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웃으면 배가 아픈 걸까? 어찌되었던 간에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것과 아이큐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것과 개념탑재의 정도 역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도 독특하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개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큐도 상당히 모자란다. 이런 인간들 먹여살리려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있는 국민들이 매우 불쌍하다. 행인도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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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19:14 2007/08/16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