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의 추억
* 이 글은 가납사니님의 [삼양라면 공업용 우지 파동]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 이 글은 지난 6월 만두파동이 벌어진 직후인 6월 11일에 어떤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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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구로공단을 떠나 인천으로 가서 잡은 첫 직장은 기름공장이었습니다. 식용유(대두유)를 만드는 공장이었죠. 식용유는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됩니다. 콩으로 만드는 기름은 대두유, 목화씨로 만드는 기름은 면실유, 쌀눈으로 만드는 기름은 미강유, 올리브로 만들면 올리브유, 팜유, 기타등등...
기름 만지다 보니까 식물성 기름 뿐만이 아니라 동물성 기름도 만집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지죠. 소기름입니다. 원래 소기름은 제가 다니던 공장에서 다룰 일이 없는데요, 다른 공장에서 사용되는 소기름의 제품성분분석을 제가 다니던 공장에서 했죠. 제가 그 분석을 하기도 했구요.
당시에는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쏠쏠하게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뭐 고기를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된다는 둥 어쩌구 하는 통에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특히 기름의 경우 식물성 기름이 어쩌니 동물성 기름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기름의 성분에는 지방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 불포화지방산이니 포화지방산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일개 공돌이 수준에서 그 지방산의 성질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포화지방산이 많을 수록 그 기름의 질은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액상이나 고상이냐에 따른 차이도 많죠. 액상보다는 고상이 산화에 안정적이지만 고상이 액상보다는 일반적으로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월등히 높죠.
여기서 비교가 되는 것이 우지와 팜유였습니다. 팜유는 오일 팜이라는 열매에서 나오는 기름인데요, 이게 출신성분은 "식물성"이지만 내용을 분석해보면 우지나 돈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포화지방산이 많습니다. 쉽게 굳어지는 고상 지방이구요. 근데 팜유는 무진장 쌉니다. 콩기름 보다 말입죠. 그래서 한 때 제가 다니던 공장의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것은 팜유와 다른 기름을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공장에서는 다른 식용유와 섞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실제 가정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이었죠. 물론 가정용은 실패...
연구실과 분석실에 있던 사람들이 팜유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적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구요. 팜유가 튀김이나 기타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안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많이들 사용하는데, 그 당시 연구원들의 판단으로는 팜유보다는 차라리 우지가 훨씬 좋다는 결론이 있었습니다.
암튼 그러다가 군대를 갔습죠. 훈련소라는 곳이 그렇잖아요. 항상 배고프고 춥고...
그런데 그 때 당시 내무반에는 밤마다 삼양 컵라면이 제공되었습니다. 왜 옛날에 삼양 3분 컵라면인가 하던거... 그게 참 배고픈 훈련병들에게는 그리 고마울 수가 없는 거였거든요...
근데 입소하고 한 사흘이나 지났나 그랬는데, 9시 정훈 시간에 테레비젼 뉴스에서 그 유명한 "삼양라면 공업용 우지 파동"이 방송된 겁니다. 모두 정훈 끝나고 먹을 삼양라면을 품안에 안고 있다가 넋이 빠져버렸습니다. 당시에는 "식물성 팜유"를 사용한다고 선전하던 농심과 라면의 원조 삼양이 열심히 박터지게 싸우고 있던 터라 이 사건이 무척 중요했는데, 삼양은 우지를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공업용 우지를 썼다고 뉴스에 나니까 배고팠던 훈련병들 갑자기 뱃속이 충만해지면서 라면이 먹기 싫어졌던 거죠.
그런데 저는 기름공장에서 일하면서 사실은 우지가 팜유보다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소위 공업용이라는 것이 말만 공업용이지(원래 공업용이라고 하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언론이 만든 말이 아닌지... 등급구분은 하되 식용 우지에 대해 공업용 딱지는 붙이지 않거든요) 식용이나 공업용이나 우지는 그게 그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뉴스를 보면서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저는 밤마다 풍족한 훈련소 생활을 보낼 수 있었죠. 공업용 우지파동과는 상관 없이 컵라면은 보급되었고, 동기들은 갑자기 불러버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보급품을 팽개쳤는데, 그 덕분에 그 많은 컵라면은 다 제 것이 되어버린 겁니다.
결국 몇 년간의 법정소송 끝에 삼양라면은 무죄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팜유보다 훨씬 양질의 우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겁니다.
근래 "쓰레기 만두"사건이 세간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만두를 무쟈게 좋아하는 행인은 첨에 큰 충격을 받았더랍니다. 이런 줸장... 먹는 거 가지고 장난질치는 쉑덜은 뒈질때 까지 가둬놓고 지가 만든 거 먹여야 하는데...
그런데 "쓰레기 만두"라고 한 것들도 차이가 있더군요. 즉, 유통기한이 지난 단무지를 재가공해서 만든 쓰레기 만두도 있지만, 무의 꽁지를 모아 만든 만두도 있더군요. 무 꼬랑지라고 해서 예전에 무김치, 깍두기, 동치미 등 이런 김치 만들 때 잘라내는 무의 끄트머리... 이거 사실은 무자게 맛이 있거든요. 진짜 달콤 쌉싸름한 그런 맛이에요. 이런 부분은 골라쓰기도 어렵죠, 사실.
그렇다면 "쓰레기 만두"라고 해서 모든 만두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만두집에서는 다 무를 쓰거든요. 제가 자주 가던 학교 앞 만두집 역시 아침에 그 앞을 지날때면 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채를 썰더군요.
양심 없이 만두만든 사람들이야 물론 벌을 받아야겠지만 세상 모든 만두가 쓰레기취급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특히 무꼬랑지로 만든 만두... 이건 쓰레기만두가 아닙니다. 게다가 말이죠, 할인점에서 봉투에 넣어져 판매되는 만두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동네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만두의 경우는 다 그거 팔아야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이 목을 매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동네 만두가게 만두는 잘 보시고 계속 이용합시다. 세상 모든 만두가 그렇게 쓰레기로 만들었겠습니까? 갑자기 훈련소에서 먹던 컵라면이 그립습니다.
저야말로 만두를 엄청 좋아하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로 어디에 가도 만두를 찾을 수가 없어서 슬펐어요. ㅡ.ㅜ 저는 그 '우지파동'을 겪은 후로는 사실 '먹는 것 갖고 장난한 일'이 언론에 보도되도 조금 지나면 실은 그것이 아니었더라, 는 정정보도가 나오겠거니, 그것도 아니면 뭐 먹고 금방 죽겠어,=ㅂ= 이러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