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가 살아있는 방

* 이 글은 알엠님의 [바퀴벌레 박멸 대소동]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게으름 피우느라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터라 밀린 일들 처리한다고 글쎄 근 열흘을 집에들어가지 않았다. 뭐 방구석이야 지 멋대로 놔둬도 어디로 도망갈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어제 겨우 집이라고 찾아들어가고야 말았다.

 

난장판이었지만 그래도 내 집이 좋다. 흠흠... sweet home?? 암튼...

간만에 일찍 들어가 빨래를 하려했더니 낼 비온단다. 그래서 또 걍 놔두기로 했다.

샤워라도 하려했는데, 물이 넘 차갑다. 보일러를 켤까 하다가 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벌써 가스 때고 쥐랄이냐 싶어서 발만 씻고 자기로 했다. 웹 서핑 좀 하다가 일찌감치 자리 펴고 드러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귓전을 스치는 이 가공할 사이렌 소리... 에에에에에에엥~~~!

글타. 그것은 지난 여름 혹독한 방역의 십자포화를 뚫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간 모스퀴토였던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흡혈귀... 문제는 행인이 모기향이나 뿌리는 모기약이나 훈증식 모기향 등등 이러한 모기잡는 약품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거다. 약을 뿌리거나 켜놓고 자면 이튿날 아주 거시기 하다. 모기가 달라들지 않아서 좋기는 하지만, "목이" 아프다... 골도 띵하고...

이구... 이 빌어먹을 모기야...

 

해서 별 수 없이 오밤중에 신명나는 박수놀이를 벌렸다. 그런데 도대체 이넘의 모기들 어디서 날라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다. 잡아도 잡아도 스멀 스멀 또 기어들어온다. 잠 좀 잘라치면 어김없이 귓전을 울리는 이 공포의 사이렌 소리...

 

성질난 김에 방에 불을 환하게 켜고 벽마다 달라붙은 모기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미 배불리 피를 빤 모기들, 지나친 과식으로 인하여 몸동작이 둔해진 그들은 어김없이 피를 뿌리며 산화해간다. "내 몸 속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라고 하는 듯 애절한 몸짓을 보이는 모기들도 있지만 어김없다. 행인이 무슨 법당에서 도닦은 스님도 아니고, 살생유택의 도리를 적용해보더라도 이넘들은 죽어 마땅한 넘들이다. 웅... 분노 이빠이...

 

대충 정리를 하고 자려고 하니 이번엔 뭣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천정을 두드린다. 이건 또 뭐여... 컴컴한 방구석을 이리 저리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이건 나방이었다. 에구... 저넘의 나방... 불켜놓은 사이 또 어디선가 나방이 들어왔다. 까짓거 저 넘이야 불꺼놓고 있음 조용해지니까 그저 신경 끄고 잠을 잘려는 찰라...

암튼 이렇게 생긴 넘이었다...

 

뭔가가 계속 바스락 바스락 거린다. 아주 귀에 거슬린다. 계속 바스락 거리는데, 이거 참 그 소리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도대체 이게 뭐여??? 소리 나는 곳을 가만히 들여다 봤더니... 바퀴벌레 한 쌍이 뭔가 열심히 갉고 있다. 이런 줸장... 살생을 싫어하는 행인이 절대 용서치 않는 두 종류의 범죄곤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기와 바퀴다. 바로 일격! 두 마리의 바퀴를 잡아 냈도다. 기쁘도다. 그리곤 잠이 들라고 했다. 정말 잘려고 했다. 진짜다.

이렇게만 생겼어도 바퀴와 친해질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철도 다 지난 늦가을, 시월의 마지막밤, 이게 왠 귀뚜라미 소리란 말인가... 아아... 저것이 왜 다른 때는 낭만적으로 들리는데 오늘은 웬수같이 들리냐... 이젠 쫓아가기도 싫다. 손에 잡히는 대로 뭔가를 소리 나는 곳에 집어 던졌다. 조용하다... 그러더니 이젠 펄떡 펄떡 뛰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뒌장...

아아... 철도 모르는 귀뚜라미여... 귀뚜르르르, 귀뚜르르르...

 

겨우 잠이 들었다. 새벽녘... 잠이 정말 꿀맛같이 들려고 했는데, 다시금 귓가를 맴도는 사이렌 소리... 시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가고 11월의 첫날 새벽이 또 그렇게 갔다. 생태계가 살아 있는 나의 자취방... 곤충들과의 공생을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화두를 나에게 던져주고 있다.

 

자고 일어나 쳐다본 거울은 화려했다. 이불을 옴팍 뒤집어 쓰고 잤더니 노출된 부위가 얼굴 뿐이라 이넘의 모기들이 얼굴만 죄 물어 뜯었다. 주름살이 다 없어졌다... 보톡스 맞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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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1 23:07 2004/11/0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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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적시적기에 바로바로 행인님의 연작이 올라오는군요? 알엠님의 글을 읽고 왜 행인님이 트랙백을 안 거시는지 의아해하던 중이었습니다요. ^^

  2. 옷... 글쿤요... 트랙백이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나봐요. 제가 좀 지나친가본데... 우짜죠? ㅜㅜ

  3.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요. 행인님이 지나치다면 제 덧글질은 말기중독증상이게요? :)

  4. 내방도 상당히 지저분하고, 진드기와 날파리 등 많은 생물객체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바퀴는 없어요. 먹을 게 없어서 그런가..
    전 여름 기운이 돌고부터 지금까지 꼬박꼬박 전자 모기향 켜놓고 자는데.. 그냥 키지 말까 하다가 하룻밤에 대여섯방을 물린 이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켜놓고 자요. 흐..

  5. 네오/ 날파리, 파리, 쇠파리, 노린재까지 각종 날개달린 곤충류가 지금도 들끓고 있으며, 얼마전 개미박멸을 위해 난리가 났고, 쥐며느리, 돈벌레 등 절지곤충류 역시 간혹 출몰하는 정녕 생태계가 살아있는 방으로 자부하고 있으나, 진드기가 없다뉘... 졌소이다...

  6. 그러고보니 이게 방구석이여 들판이여...

  7. 혹시 행인님도 사람의 탈을 쓴...흐흠..몬지는 상상에...흐흐흐흐

  8. 바로 전에 살던 집이 곤충천국이었죠.그땐 아기들 생각에 일 때려치고 돈벌어서 지하를 벗어날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했었어요.그런데 일 그만둬봤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같아서(할 일은 많겠지만 지하를 벗어나긴 힘들것같아서) 그냥 참았어요. 히히

  9. rivermi/ 사람의 탈을 쓴...........................................인간...
    rmlist/ 히~~!! 저는 지하방이 징글징글해서 자취시작한 이래로 죽어도 옥탑만 고집합니다. 근데 옥탑이요... 여름엔 덥고 겨울에 엄청춥더라구요...

  10. 모기가 산화해가면서 형한테 이런 말을 했을겁니다. "이안에 너있다."

  11. bto/ 허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