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상상적 동일시

2008/01/13 16:07
 

- 라캉의 상상적 세계

라캉은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의 길목에 있는 철학자다. 라캉의 사유는 굉장히 복잡하다. 현대사상에서, 가장 심오한 사람 중의 하나다. 라캉은 우리 인생의 출발점을 imaginary 한 차원, 상상적인 차원으로 본다. 상상적인 차원이라는 것은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차원이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서 언어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의 아기의 세계, 그것이 상상적인 세계다.


우리가 보통 imagination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사물을 지각해서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도 imagination이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이미지들을 변형시키는 것도 imagination이다. 지금 우리는 보통 후자로 사용한다. 그래서 라캉이 말하는 imagination도 지각한다는 뜻의 이미지이다. imaginary 한 차원은 어떤 이미지의 차원인데, 이 이미지의 차원은 상상적 동일시, 상상적 동일화, 상상적 동일시라고 할 수 있다.


- 아기의 입장에서 상상적 동일시는 무엇인가?

아기는 태어나면 시간 대부분을 주로 엄마하고만 생활하게 된다. 이것이 양자관계 또는 이자관계다. 정신분석학에서 엄마, 아빠라는 말을 쓸 때에는 현실에 존재하는 엄마, 아빠만 뜻하는 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엄마, 아빠를 뜻한다. 예를 들어 옛날 황제는 거의 다 유모가 키운다. 보통 중국의 황제들을 보면, 엄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유모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보통 할머니가 많이 키워준다. 이때의 엄마라는 말은 꼭 실제의 엄마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맨 처음 안고 키우는 그 사람, 설사 엄마가 없어 아빠가 키워도 정신분석학 이론적으로는 이게 엄마인 것이다. 그 아기와 엄마의 관계가 이자관계다.

아기 입장에서 볼 때 나는 나고, 저 사람은 엄마라는 주객 이분이 없다. 주객 이분이 없는 관계가 이미지의 관계다. 객과 주의 거리가 생기지 않는, 그런 어떤 관계가 상상적 동일시라고 볼 수 있다.


- 상상적 동일시: 윤동주[소년]의 예

윤동주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윤동주의 소년이라는 시이다. 여기서도 상상적 동일시의 예를 볼 수 있다. 예컨대 내가 하늘을 봤더니 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들고, 볼을 쓸었더니 손바닥에 파란 물감이 묻어났다. 이 부분에서는 주객 분리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늘을 봄으로써 나도 하늘이 되고 하늘도 내가 되는 것이다. 이건 주체고 저건 오브젝트가 아니라 저것과 내가 이미지에서 얽히는 것이다. 이것이 imaginary 한 차원이다. 이것은 어떤 언어, 룰, 법, 주객 분리가 없는 세계다.


즉, imaginary 한 세계는 양자 관계, 이자 관계다. 그 단계에서는 어떤 언어나 룰이 개입하기 이전에 그 이미지들의 세계, 상상적 동일시의 세계다.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 이정우 <현대 사상의 ‘개념-뿌리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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