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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범람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열렸다. 이 공간이 카오스 상태임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을 듯하다. 좌파에게든 우파에게든. 홈패이고 구획지어 졌던 공간에 사람들과 그들의 욕망이 넘쳐 흐르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기보다는 골목과 샛길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카오스적 공간에 대한 태도가 엇갈리면서 각자들의 입장이 선명해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흐름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니들의 길을 가라, 곧 사그라들겠지라는 태토. 명박식으로 말하면 소통의 단절.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태도는 이들 자신의 소통 능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서 제도권에 대한 욕망. 카오스 상태는 지금으로 충분하다. 문제를 제도화시키자는 태도일 것. “정부는 무능력하고 잘못했다. 그렇다고 제도권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제도화하자. 이제 촛불을 끄자.” 새롭게 펼쳐진 정치적 공간을 이쯤에서 접고 사람들의 뜻을 대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의견. 아침에 경향신문에 실린 대담을 보고 놀랬다. 제도화가 결국 어떤 우호적인 결과를 산출하지 못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실제적으로 범 여당이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제도권이 사람들의 뜻을 대신해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더욱이 야당은 이번 운동에서 그 무엇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정당이 아닌가? 그리고 촛불을 끄고 제도화된 공간으로 문제를 전환하려는 이들에게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참을 수 없다. 꽉 막힌 밀실의 쾌쾌한 냄새. 그들은 우리의 촛불이 충분히 타올랐다고 생각한다. 촛불의 광장 대신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협상.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수입 쇠고기 재협상?

우리는 쇠고기 문제 때문에만 촛불을 들지 않았다. 권력의 삶과 생명에 대한 위협과 침해, 권력의 무능, 소수자에 대한 배제..... 촛불은 이런 무수한 힘들이 하나로 응결되어 나타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쇠고기 재협상과 같은 식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단 새롭게 열린 정치적 공간에 대한 섣부른 예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도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 우리는 공간의 자유를 더 즐겨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새로 열린 공간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다. 대운하 문제라든가, 교육의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장애인 등등....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도  많다. 우리는 이 정치적 공간에서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해서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이 공간의 이질성, 카오스를 아직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했다. 우리는 더 많이 모이고 더 많이 충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의 문을 폐쇄하기에 시간은 너무 이르다. 촛불을 아직 꺼트리고 싶지 않다.


ps.물에 빠진 개를 섣불리 건져주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물에 빠진 개는 위험할 때는 뭐든지 다할 것 거첨 아양을 떨지만 물에서 건져지만 다시 사람을 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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