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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우정론1

 

니체의 우정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니체.

그는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떠나보내려고 작심한 듯,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와 배치들을 물어뜯는다.

‘모든 것’을 향해 달려가고 그 모든 것들을 몰락시키고자 한다.

형이상학, 도덕, 종교, 예술, 문화, 국가에 등등.

이 시기의 니체는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힘들과 맞서 싸우는 듯하다.


교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교제, 그 쇠락한 힘들에 메스를 가한다.

이 해체 작업은 아주 섬세하다. 그는 인간의 심리에 초정밀 현미경을 가져다 댄다.

가령 그 해체 속에서 인간의 ‘사려 깊음’이란 두려움의 표시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아무도 기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상처 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려는 태도,

즉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적인 동정은 어떠한가?

불행한 사람을 돕기를 좋아하는 이 ‘인간적’인 성질은

동정하는 자들이 우월함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일까?

이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한 일이 없어지고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고” 느낀다.


이런 점에서 니체에게 ‘인간’은 가장 추한 것 중의 하나다.

“가장 추한-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 인간의 얼굴보다 더 추한 곳을

세상 어디에서라도 발견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32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니체의 해부도 속에서

‘세인’적인 것 저편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한다.


이 새로운 인간은 ‘논쟁적’이다. 그렇다면 논쟁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자신의 사상을 얼음 위에 놓는” 것에서 출발한다.

열정적으로 상대방에게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영도의 얼음 위에 놓아야 한다.

이 냉정한 열정의 소유자는 자신의 과거를 장식하거나 꾸미지 않는다.

이 냉정함 속에서 그는 ‘과거’의 것과 대면한다.

그는 때로는 ‘훌륭한 적’을 만들어내고 그와 대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에게 ‘적이 존재한다’ ‘그가 나와 대결하고 있다’는 감정.

그리고 쉽사리 ‘화해’의 제단에도 오르지 않는 것.

그는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을 욕하면서

그들이 자신을 나쁘지 않게 여기지 않게 바랄 정도로 자만심이 강하지 않다.

 

그는 논쟁을 사랑하는 만큼 “감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즐겁게 느끼고

의무를 가질 기회들을 소심하게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버’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짊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친구가 되는 것만큼 좋은 친구를 가지는 재능을 가진다.

그는 “전혀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휘하여

(이들을) 하나의 완정한 동아리”로 만들어낸다.

이 친구들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친구가 되게 한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 ‘오해’는 필연적이다.

친구를 유혹하는 어떤 ‘미끼’

이 오해와 착각이 친구들을 그에게 이끌어오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도 어떤 경시할 만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오류와 착각’ 속에서 친구의 변신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완벽한 친구를 찾아내고자 했던 현자들이

“친구들이여, 친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오류와 착각이라는 인연의 장을 가로지르며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한다.

“친구들이여, 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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