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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러브

공정한 사랑?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시청역, 그러다가 다시 숙대앞으로,

왜 그랬을까? 그 친구에게 회를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청 근처는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내가 익숙한 공간에서 만나서 음식점에 함께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 왈. "형하고 통화할 때 뭔가 답답했어. 그냥 만나서 먹으면 그만인데

굳이 숙대 근처까지 올 필요가 있는가 해서. 숙대로 가는 건 상관없는데 뭐라고 할까.

형이 뭔가 벽갇은 것을 만들어 놓고 판단한다고 할까."

 

만남에 조건을 건다.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판단할 때도.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 등등.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해야만 하는 것 때문에 늘 비틀 거린다.

 

페어러브는

연애 영화다. 50대와 20대의 사랑이 아니라

그냥 연애 영화다.

만남이 있고, 교감이 있다.

그리고 소통하기 위한 삐그덕거림이 있다.

그것도 무겁지 않게.

 

사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전제들을 내려 놓는 것.

~때문에를 말하지 않는 것,

내 한계를 넘는 것은 아픔과 기쁨을 함께 동반한다고 말한다.

내가 몸을 낮춘만큼, 발을 한 발 앞으로 내 미는 만큼

우리는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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