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23
    집회방식에 대한 고민.(7)
    흑점
  2. 2006/04/22
    민망한 상황
    흑점
  3. 2006/04/17
    이상한 일주일.(6)
    흑점
  4. 2006/04/17
    미쳐라!
    흑점
  5. 2006/04/17
    이런식의 글은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9)
    흑점
  6. 2006/04/15
    지하철을 타고(2)
    흑점
  7. 2006/04/15
    살아있는
    흑점
  8. 2006/04/13
    몇일째 달렸다.
    흑점
  9. 2006/04/12
    시험중(3)
    흑점

집회방식에 대한 고민.

한심한 스머프...님의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에 관련된 글.

 

 지나가다가 우연히 스머프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덧글에서 '음'님과 '붉은늑대'님이 얘기하신 것 말고,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은, 스머프님의 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놓는 이분법적인 사고입니다. "몸 성한 이들이 몸 불편한 이들을 앞세우고 자기 몸을 사리는 꼴"로 그 때 상황을 묘사한 스머프님의 글은 어떤 사람들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몸 성하다(?)"고 해서 전경들과 더 잘 싸우는 것은, 또 그래야 한다는 것, 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구요. 실제로 제 친구들 중에는 그 운동의 주장에는 백분 공감하면서도 집회 때 전경들과 싸우는 양태를 보고서는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요.) 그들을 통칭하여 "집회하러 나와서 싸움하나 제대로 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 어린학생들"의 "안이한 행태"로 치부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좀 더 중점적인 문제인 투쟁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그날 서울역에서 시청까지의 행진 중에 발생한 충돌은 스머프님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집회행렬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어서 그때의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보았습니다. 행진 중에 순간적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 앞서나가 일렬로 서서 도로를 막았습니다. 앞서나간 사람들은 그렇게 도로를 봉쇄했지만, 뒤따라오던 학생행렬은 전경들을 뚫지 못하고 봉쇄되었으며, 대열이 분리되어 더 이상 도로를 점거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 상황은 도로를 '점거하려다가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합법투쟁이냐, 불법투쟁이냐, 하는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것은 어차피 '그들'이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니까요. 다르게는 폭력투쟁이냐 비폭력투쟁이냐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투쟁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래서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투쟁의 주체들과 충분히! 공유되고 논의 된다면, 그래서 결정된다면, 저는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한 논의와 공유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번 집회는 그 공유과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장애인운동에 결합해온 사회당 학생위원회 친구들과 집회를 함께 갔는데, 그 친구 또한 그날 벌어진 그 상황들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날 집회에서의 계획을 제가 알고 있었다면 집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예상해서 집회 참가자에게 공유시키고 참가여부를 선택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또 참가여부가 결정되면 참여정도(?) -앞쪽에서 전경들과 싸울지, 뒤 쪽에 물러서있던지 등- 또한 선택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전에 공유가 된다면, 그 구성원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날 집회에서 뒤따라오던 학생대오는 어찌된 상황인지도 몰랐기에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장애인 운동이 지금까지 그나마 이루어온 성과는 그만큼 끊임없는 고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일년 중 하루인 4월20일에 사람들 좀 많이 모여서 전경들과 잘 싸우고 길 좀 잘 뚫어서 얼마간 도로를 점거했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간단히 집회참가후기형식으로 쓴 글에 이렇게 '오버'하는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다른 방식의 운동을 고민하면서 기존의 운동방식과 많이 부딪혔던 부분이고, 또 그만큼 고민도 많이 했던 부분이라서 제 생각도 정리해볼 겸,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생산적인 논의가 전개 될 수 있길 바라면서 미흡한 글을 마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망한 상황

이 발생했다. 덕분에 나는 약속했던 참치회!를 사게 되었다. 판사가 참치회 한번 제대로 못 먹었던 용석형이 안쓰러워 보였나보다.ㅋㅋ 오늘, 같이 저녁을 먹고, 1000원짜리 생과일주스-그것도 이 시렵다고 얼음은 다 빼고- 하나씩 사서 학교 정문에 앉아 물고는, "전화번호만 주면 '잘되든 못되든 간에' 연애문제 자기가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그에게 "불구속 판결 난거 축하해야할지 말아야 할지..ㅋ"라며 농담하는 이 민망한 상황이,

무척이나 고맙고도 소중하다.

 


2005.5.15 평화수감자의 날 캠페인, 대학로에서.

병역거부선언했던 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상한 일주일.



 

참으로 이상한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말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 한 한달간은 침묵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말들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각각 다른 사람들과, 완전 다른 맥락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말들이 나름의 이상한 연결고리를 가지며 이어지는 것이었다. J의 박정희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서, 준희형의 운동관, 오랜만에 본 지나의 고민, 휴가나온 현호와의 생뚱맞은 구조주의 대 실존주의에 대한 논쟁, 프로메 싸이 게시판에서의 답글들, 심지어 금요일 동재형과의 대화시작은 "알앤비-워우워우~하는 식의- 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워낙 말이 많았으니 당연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마고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삶이 통합되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메모를 해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걸로 글을 써보면 뻔하긴해도 한번 읽어 볼 만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다른 할 것들도 많아서 관뒀다. 결론은, 요새 공부에 탄력받았다는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쳐라!

야간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차 옆 보도 블럭에서 한 아저씨가 앉아서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며 "허허허" 웃고 있었다. 지나치며 그 아저씨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NL민중가요'틱'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가 문득, 보들레르의 시가 떠올랐다.

 

시간의 짐을 견디기 위해선 취하는 정도로 되겠지만,

세상의 '공기'를 견디기 위해선 미치는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미친 사람들은 무섭다. 그러나 그 반대는 더욱 무섭다.

 

보들레르 알코홀릭!

 



취하라 - 샤를르 보들레르

 

취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의 문제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地上)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여지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詩)로, 또는 당신의 미덕(美德)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가 이미 가셨다면 물어보시오.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시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다.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시오.

 노상 취해 있으시오!

 술로, 시로, 또는 미덕으로, 하여간 당신 뜻대로..."


 

 

Enivrez-vous

 

Il faut etre toujours ivre. Toue est la:

c'est lunique question pour ne pas sentir l'horrible fardeau du Temps qui brise vos epaules et vous penche vers la terre, il faut vous enivrer sans treve.
Mais de quoi?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Mais enivrez-vous.


Et si quelquefois, sur les marches d'un palais, sur l'herbe verte d'un fosse,

dans la solitude morne de votre chambre, vous vous reveillez,

a la vague, a l'etoile, a l'oiseau, a l'horloge,

a tout ce qui fuit, a tout ce qui gemit, a tout ce qui roule,

a tout ce qui chante, a tout ce qui parle, demandez quelle heure il est;

et le vent, la vague, l'etoile, l'oiseau, l'horloge, vous repondront :

 

"Il est l'heure de s'enivrer!

 Pour n'etre pas les esclaves martyrises de Temps, enivrez-vous;

 enivrez-vous sans cesse!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런식의 글은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대자보나 하나 써볼까 한다.

정문에 한 몇일 붙어있다가

얼마안가 기독교동아리 홍보 포스터에 뒤덮일 운명을 가진 이런 글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뻔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슬픈 글이다.

 

-

4월19일, 짧은 단상.

-민주화 이후, 4.19를 다시 생각함.

 

소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 옆 짝꿍을 한대 툭 치며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야, 나는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구"하며 장난을 쳤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씩은 가져 보았을 겁니다. 한편으로 그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 역시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이 시에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치떨리는 노여움으로...서툰 솜씨로...숨죽여 흐느끼며...남몰래"쓰던 ,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앞의 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2006년 현재에, 46년전 이 날은, 또 26년전 광주의 5월18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민주화 운동은 '기념사업'이 되었고, 그 주체였던 사람들은 현 정권에게 '보상'을 받습니다. 소위 386세대로 불리던 민주화세력은 지금은 집권 여당이 되어서, 유동적이면서도  더욱 강력한 지배체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이룩했던 민주화의 성과는 자본이 빼았아갔고, 여전히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농민들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농사지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흑석시장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 곳에서 20년 이상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무참히 쫓아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취업을 위한 학원정도로 변모해버린 대학교가 한때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웠다는 사실은 촌스런 옛 말이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서는 다니기 힘들게 되었고, 졸업을 한다고 해도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불안한 현실에 맞서게 됩니다. 오는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어떤 장애인들은 그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며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경찰의 보호를 받는 용역깡패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무참히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논과 밭을 갈아엎으며,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미군의 확장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새롭게 기억해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세상을 변혁했던 것은 우리 민중들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직 한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중앙도서관 앞에는 4.19혁명 당시의 중앙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가 서있습니다. 오늘 그곳에 꽃 한 송이 바치며 조용히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당신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세상입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가고 있는 중에,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엄청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양손을 사용한 다양한 제스춰를 취해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누구랑 이야기하는건가 살펴보았는데,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졸고 있었고 그녀 앞쪽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스치는 사람들을 흘긋 보기도 했지만 줄곳 어떤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허공이었고 초점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기울여보았지만 말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표정이나 제스춰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걸로 보아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연극 같은 걸 연습하는게 아닌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나는, 내가 꼭 지금 저런 상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블로그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1. 결국 그녀가 무슨 대화를 누구와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옆에 앉아서 빨간 거울을 자신의 얼굴에 들이댄 한 아가씨의, 코디가 어쩌고 검정가디건이 저쩌고 하는 이야기 보다 최소한 몇 백배는 의미있는 대화였지 않았을까 싶다.

 

사족2. 사실 블로그를 만들게된 가장 큰 계기는 이쁜 일기장을 샀음에도 일기가 잘 써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그 일기장에는 3월 한달동안 달랑 시 두편이 옮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비루한 내 자신을 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소심한 나로서는 벌써 두사람이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이곳을 들어왔다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된다.(총방문자수도 벌써 49명이다!) 하긴 진보넷이라는 이 좁디좁은 바닥에 블로그를 개설한 것 자체가 안그러기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더욱 우스운 것은, 그럼 혼자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놓으면 될 것을 이 따위 자족적인 글쓰기를 드러냄으로써 이렇게 뻔하게 표현되는 나 자신의 인정욕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살아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지경, 마고, 판, 준, 흑점.

photo by 짤막

 

-2006.4.14 새벽에

 인천 '반지하'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몇일째 달렸다.

그 바람에 오늘은 늦잠을 자서 스피노자수업도 못가고 팬티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러고 있다.
 

 월요일엔 컴퓨터를 고치고 성진형과 저녁을 먹으면서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두 쌍씩 찍어줘서 나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힘들지 않게.” 하는 식의 대화를 하다가, 12시에 현아의 문자를 받고는 잠도 안 오고 날씨도 좋은데 맥주나 한잔할까 하는 생각에 나갔다가 완전히 말려버렸다.
 박정희를 좋아한다는 J의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하다보니 장장 2시간 남짓 걸린 나의 ‘자본론’강의로 넘어갔고,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시간은 새벽5시를 넘어가고 우리는 학교정문광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J에게는 부모가 없다. 일주일 내내 학교 마치자마자 11시까지 학원에서 알바를 하면서도,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없다고 하기는 싫다면서 저번주엔 후배들 밥 사준다고 20만원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 얹혀살았던 친구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내가 인천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없는 살림 쥐어짜내 학원을 가도 대부분은 실업계로 진학하고 혹 인문계를 간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등록금 때문에 갈 생각도 못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이게 현실이다.’ 라는 나의 말에 J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면 그 사람은 성공 할 수도 있고 잘 먹고 잘 살수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총 한 자루를 쥐어주고 싶다.’ 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지만 뭔가 씁쓸했다.

 화요일엔 낮에 율과 함께 서울대에서 스피노자 강의를 듣고 프로메에서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뒤늦게 준희형이 합류했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제처럼 준희형의 말이 잘 들리던 때가 없었다. 덕분에 난 취하지도 않으면서 소주 2병 이상을 마셨고 그 바람에, 다음날 아침 부랴부랴 알바를 갔는데 12시까지 술이 안 깨서 시뻘건 얼굴로 카운터를 봤다. 사리곰탕으로 겨우 해장을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 들어갔는데 메인화면을 보고는 갑자기 멍~해져 버렸다. 평택을 생각하면 걷잡을 수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말이지 기도라도 하고 싶어진다. 작년 여름 평화 캠프에서 느꼈던 무게감이 아직도 가슴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다. 평화캠프에서 만난 덕균을 화요일 서울대 청강하러갔던 날에 만났는데, 학교에서 평택캠페인을 하고 있으니 ‘평화캠프 갔던 사람으로서’ 한번 들르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했다. 알바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공사를 지나는데 그 앞에서 청소용역아주머니들이 집회를 하고 계셨다. 버스 안이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봄바람이 분다. 눈이 따갑다.
아마도 황사바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갈 수 없는 고향-노찾사

 

저 멀리 저 산 마루에 해가 걸리면
쓸쓸한 내 맘에도 노을이 지네
물결따라 출렁이는 그리운 얼굴
혼탁한 강 내음이 내 맘을 적시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내 고향 산 마루도 그리워 지네
뜨겁더 지나 여름나 더운 바람속에
설레이던 가슴안고 서울로 서울로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험중

되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