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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4)

2.

 

한달 반전인 11월14일, 순애는 서울 구로에 위치한 ‘조선족 동포의 집’에서 일하는 정은희 간사와 함께 구로6동 파출소를 찾았다. 정 간사는 서울에 온지 채 6개월이 안되는 순애의 사연을 듣고,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2년 전 한국 남자와 재혼해 안양에서 살고 있다는 순애 사촌 언니 향숙도 한국말이 서툰 순애를 돕겠다며 파출소에 나타났다.

 

짧은 스포츠 머리와 떡 벌어진 어깨에서 느껴지는 남성성을 뚝 떨어뜨리는 불쑥 나온 배. 중년 형사다운 외모를 가진 김 형사가 순애의 조서를 쓰게 됐다.

 

김 형사가 묻고, 순애가 대답했다.  



“주민등록증 있어요?”
“몰라요. 박영철이 서류 다 가지고 있어요.”
“생년월일?”
“1978년 5월13일.”
“직업 있어요?”
“없어요.”
“핸드폰 있어요?”
“없어요.”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구로에 있어요.”
“구로 어디?”
“교회에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교회.”
“혼인신고 언제 했어요?”
“중국에서요? 중국에선 3월25일.”
“법적으로 남편이에요?”
“네.”

 

김 형사는 이틀 전인 11월 12일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몇 시예요, 남편한테 맞은 시간이?”
“3시 반.”
“새벽?”
“네.”
“주먹으로만 때렸어요? 다른 흉기 같은 것은 없었고?”
“재떨이. 유리로 된 둥근 거.”
“어떻게 맞았어요?”
“저보고 사기 결혼이라고 1천7백만원 도로 달라고. 돈 안 준다니까 밤에 술 마시고 때렸죠.”

 

옆에 있던 향숙이 거들었다.

 

“야가 친오빠가 있어서 자꾸 일요일마다 밖에 나가니까, 남편이 그게 싫어 가지고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더니 까만 비닐 봉투에다 바지 하나만 들고 나왔더라구. 한국말을 잘 이해 못하니까 나가라니까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야 오빠하고 내하고 내 남편하고 한번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박영철이 하는 소리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집에서 살림할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예요. 아침에 애보고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못 하니까 자기가 가서 빻아 왔대요. 말도 제대로 모르는 애가 어케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살려고 왔으니까 자꾸 가르쳐야지 못 한다고만 하면 아니 되지 않겠는가. 그랬더니 노력해보겠다 하더라구.

 

그리고나서 불과 한달도 못 되어서 야가 또 튀어 나왔더라구. 왜 그러는가, 도저히 자기는 다른 여자 데리고 왔다갔다 하는데 못 살겠다. 그러니까 박영철이 너 그러면 중국 보내 줄 테니 돈 천칠백만원을 돌라 하더래. 야보고. 결혼 경비 그렇게 썼으니까.”

 

김 형사가 다시 순애에게 물었다.
 
“어떻게 때렸대요,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어요, 발로 찼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막 때리고 발로 밟고. 제가 당구장 보고 있는데. 당구장에 살림집이 겸해 있어요.”
“당구장에서 때린 것입니까? 당구장 이름이?”
“열림 당구장.”
“몇 층이예요?”
“2층.”
“친오빠 만나러 일요일마다 나갔어요?”
“일요일마다 만나러 나간 건 아니고, 처음에 네 번만.”
“당구장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잔 게 언제입니까? 당구장에 딸린 방은 하나 밖에 없지 않나요?”
“제가.......”
“아, 나가 있을 때요?”
“아니요.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
 
향숙이 또 끼어들었다.

 

“한국에 야를 데리고 와 가지고 한 주일은 같이 생활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외박을 했데요. 야보고는 당구장 지키라고 해놓고 밤에 와서 돈 가지고 나가서 외박하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들어오고. 그러니까 말 대상도 없고 심심해서 일요일날 오빠한테 가서 놀고 그런거죠.”

 

향숙은 어눌한 순애의 태도가 답답한 듯 의자를 앞으로 당겨 자세를 고쳐 앉더니 순애 대신 김 형사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당구장에 방이 몇 개인가요?”
“하나예요. 가정집은 또 따로 있고.”
“여자를 데리고 온 게 가정집이에요, 당구장이에요?”
“당구장이죠.”
“그러면 세분이 같이 잔겁니까?”
“그 여자랑 둘이 방에 같이 있고, 야한테는 당구장에 카운터를 보라고.”
“그 때가 언제, 어디서죠, 맞은 날이 며칠?”
“11월12일, 새벽 3시 반. 당구장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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