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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군복입은 예비군들에게 제지당했다.

                                                                                    

 

나는 오늘 군복입은 예비군들에게 제지당했다.

왜 그들은 군복을 입고 어머니의 은혜를 부르는가?

 

 

 오늘도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그러나 나는 오늘 전경들에게, 경찰들에게 제지당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에게 제지당했다. 시청에서 출발한 거리행진은 자유롭게 구호를 외치며 진행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군복을 입은 자들이 도로의 중앙선에 일렬로 줄을 섰다. 중앙선에 서려하자,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들은 나를 제지하였고 그들이 만든 대열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군복을 입은 자들이 만든 대열안에 들어가기 싫어 앞으로 가고 또 갔다. 가다보니 그들이 일렬로 지켜주지 않는, 그들이 서있지 않은 곳인 선두에  어느새 있게 되었다. 명동과 남대문을 지나 시청광장에 다시 도착하였을 때, 전경들과 맨 앞에서 대치를 하게된 나는 갑자기 일렬로 나타난 군복을 입은 자들에게 제지당했다. "위험하다, 여성과 어린이는 뒤로 가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나는 "나도 앞으로 가겠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기 위해 어깨를 두드려도 군복을 입은 그들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앞으로 가려고 하여도 그들은 스크럼을 풀지 않았다. 기자나 언론사들에게는 스크럼을 풀어 길을 내주었지만, 군복을 입지 않은 자들에게는 스크럼을 풀지 않았다. 물론, 내가 굳이 맨 앞에 갈 이유는 없다. 그리고 한번도 맨 앞에 있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오기가 생겼다.  왜  군복입은 자들과 함께 서거나, 앞에 서지 못하는가? 왜? 군복을 입지 않아서인가?

 

사람들은 왜 그들에게 박수치며 환호하는가?

 

 나도 군복을 입은 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과거 민주화 항쟁 때 시민들을 핍박하였던 자들이 군인들이었다면, 지금은 함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도 자신의 시간을 내어 품을 팔아 이 곳에 왔고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고 있음을, 고생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촛불 집회와 평화시위에 참여한 다른 많은 시민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다같이 함께 수고하고 있고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시청 앞 젖은 잔디밭에 몇 시간동안 쪼그리고 앉아 목청껏 고시철회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도로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시민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자율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있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지켜내고 있다. 군복을 입은 자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우리는 우리의 대열을 잘 지켜나갔고, 군복을 입은 자들이 우리들을 사수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발적으로 스크럼을 짰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그리고 오늘 군복을 입은 자들이 시민을 보호하기를 원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왜 그들은 형광쪼끼를 입지 않고 군복을 입어야 하는가? 왜 그들이 만들어낸 질서 속에 시민들이 따라야만 하는가? 왜 그들이 맨 앞에서서 시민들을 사수하는가? 왜 어린이와 여성들을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가? 유감이다. 군복입은 자들의 군사주의 문화에 유감이다.만약 군복을 입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군복을 입더라도 일사분란하게 일렬로 맨 앞에서 스크럼을 짜거나 도로의 중앙선에 서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나 차를 타서 시민들에게 따뜻함을 전했더라면 어땠을까? 군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며 시위를 하였다면 어떠했을까? 그들은 지금 이곳에 시민으로 왔는가, 예비군으로서 왔는가?

 

 

오늘 집회에서 외쳤던 구호들에 '유감'

 

 "여성과 어린이들을 지켜주는 예비군들께 응원의 함성을.." "쟤들도(군복입은 자들) 우리편인데, 도와주려고 하는데 싸우지 마라" "어청수 아들 군면제, 이명박 군면제" 앞의 구호들은 오늘 집회에서 사람들이 외쳤던 구호들이다. 왜 군복입은 자들에게 여성과 어린이들을 지켜달라 하는가? 우리는 평화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지켜달라고 한적도 없다. 나는 오늘 군복입은 자들의 뒤에서 군복을 입지 않은 자들은 앞에 설 수 없는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옆에 있던 한 남성분이 다들 같은 편인데 왜그러느냐고 물었다. 물론 우리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기 위해 모였다. 미국 쇠고기 수입 철회를 위해 한날 한시에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여성도 어린이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그 누구라도 시민들의 맨 앞에 서서 소리를 낼 수 있다. 왜 위험한가? 평화시위인데 무엇이 위험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대체 어떠한 시위를 생각하고 있는가?

 

 

군가와 어머니의 은혜 사이

 

 

 전경과 군복을 입은자, 그리고 군복을 입지 않은자가 대치를 한 시청광장 옆 도로에서는 사람들은 군가를 불렀다. 그리고 군가를 부른 후 누군가 전경들에게 소리쳤다. 너네들 어머니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느냐라고. 그리고는 전경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어머니의 은혜를 불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왜 그들의 어머니를 이용하는가? 왜 아버지는 말하지 않는가? 여성과 어린이들은 뒤로 빠지길 원하면서 전경들을 자극하기 위해 왜 모성을 이용하는 것인가? 더욱이 그들이 외치는 구호 속의 모성은 은혜로움과 퍼킹(fucking:어머니가 아들과 붙어먹는다는 어원) 외엔 들리지가 않는다.

 

 우리는 지금 2008년 봄,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만나고 있고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10대 청소녀들에게서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연령과 계층, 전선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들의 삶을 위해 한날 한시에 모여서 소리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똘레랑스를 실천하며 함께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말 멋지다. 수고가 많다. 마음 깊숙히 진심으로 박수와 사랑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왜 이곳에 함께 모였는가를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해나갈 것인가를 이해와 배려에 바탕하여 고민하는 것이다. 다음 집회에서는 군복을 입은 자도 입지 않은 자도 함께 질서를 만들어가고, 함께 서로서로를 지켜나갈 수 있길 바란다. 누가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를 경찰들과 정부의 위협에도 어떻게 평화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린 이제 시작했다.

 

 

photo by 유성호(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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