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잠시 침체되어 있던 여성운동은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 은 남성 중심의 체제를 개혁함으로써, 즉 차별적인 교육적, 법적, 경제적 정책들을 제거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성별평등을 획득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반대로 레드스타킹 그룹 등 보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같은 시기 등장하는데, 이들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성/성별체계로 보고 이를 반드시 철폐해야만 여성해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단지 개혁가 정도로 취급하지 않고, 혁명가로 생각하였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두 그룹

 

 

이러한 식의 분류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나 서로의 차이를 부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용할 수 있다.

 

우선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성/성별체계로 봄으로써 몇가지 특징적인 주장을 한다.

 

 

1. 여성을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으로 보았으며

2. 여성 억압을 모든 사회에서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3. 그리고 이는 계급 철폐 등 맑스주의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계급철폐 등의 변화가 온다 하여도 변화 될 수 없는 뿌리 깊은 것으로 보았다.

4. 여성 억압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야기하지만 이 고통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성차별적 편견이나 구조로 인해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고전적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였던 울스턴이나 밀, 테일러는 여성의 교육과 정치적 참여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성의 해방이라기 보다는 여성이 사회에서 이성적 인간으로 성숙함으로써 그들의 본분인 어머니와 가족을 지키는 임무를 보다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나름의 공통적인 인식 기반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본질주의 논쟁(남/여의 차이는 태생적이다라든지,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미 본질적으로 규정내려졌다는 주장 정도?)과 위의 억압을 바라보는 기준과 해결방법, 그리고 기능 등의 차이를 통해 두 그룹으로 나뉜다.

 

 

1. 급진적-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 그룹

 

 

이들은 출산이나 성적 역할, 책임들 나아가 여성성의 개념 자체가 여성을 완전한 인간으로의 발달을 가로막는 근본 요인이라 지적한다. 이들의 인식 지반에는 과거 자유주의페미니스트들의 사고(남성적덕목이라든지 남성들의 교육을 이성적인 것, 이상향으로 평가)가 조금은 묻어난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양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해방된 여성은 여성적 성질 뿐만 아니라 남성적 성질(이 사회가 규정한?)도 포함된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성의 개념은 여전히 남성성에 약간 기울어져 있다.

 

 

2. 급진적 - 문화적 페미니스트 그룹

 

 

이들은 과연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스트 그룹이 주장하는 양성이 과연 완전히 해방된 여성이라고 규정내려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특히 남성적 성질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는 못된 남성성을 수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양성의 개념을 거부하고 오히려 여성의 본질적인 ‘여성다움’을 지지하였다. 그래서 남성과 같아지기를 희구하지 말고, 문화적으로 여성과 여성성을 더욱 가꾸고 남성성을 제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 이면에는 여/남의 성/성별의 차이는 본성, 즉 ‘생물학적’이라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 물론 문화적 페미니스트 그룹에 속하는 이론가 중 일부는 이러한 차이점이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적’이며,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으로 존재해온 역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이들 그룹은 남성성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이는 여성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나름 두 급진적 페미니스트 그룹을 규정지어봤다. 이 들은 여러 차이점으로 인해 서로에게 든든한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이들은 궁극적으로 해방된 여성의 규정에서 조차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이들을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규정짓는 것도 약간은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규정을 거부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이러한 규정을 지지하고 싶다. 우선 이들 두 그룹은 서로에게 비판자 역할, 다시 말해 정반대의 극단을 향유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통해 이들의 본질과 주장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상 설영이 잠시 공부하다 정리해봤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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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6 02:44 2008/01/26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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