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과외 가던 중 환승 역에 내려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난간에 손을 걸치고 섰는데, 내 윗윗 계단에는 키작은 남자가 서 있었다. 수사적 표현으로서 작은 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마침 나는 그를 만나기 직전까지 고독한 남자와(고독은 내 가치 판단에 의한 표현이 아니라 제목에 이미 들어있는 단어였다) 난쟁이 여자가 나오는 소설을 읽던 중이었다. 여자는 자기 키가 자라지 않는 것은 자신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자라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또 다른 자기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야만 남자의 뒤꽁무니를 좇아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었는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면서 농담처럼 당신이 키가 작은 건 여러 개로 나뉘어서 자라기 때문이래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은 키가 작은 편인 나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남자를 미끄덩한 말로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대로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순간적이었지만 너무 강했던 열망에 충실하여 뻗쳐나간 손이 윗윗 계단에 서 있는 남자가 아닌, 내 윗 계단에 서 있는 늘씬한 여자의 등께를 짚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는 여자의 찡그린 미간을 보며 취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짓인가 싶어 지레 놀랐지만, 왜 나는 그에게 말 걸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어떤 단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여기,  퇴근 시간 서울의 지하철을 채우는 공기, 시간, 사람들과 괴리되어 있고, 그러한 생각은 내 속까지 단절시켜서, 나는 좀전까지 읽고 있던 소설마저도 결국 내가 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은 나와 단절되어 있던 그곳의 모든 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그냥 그랬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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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02:42 2008/10/0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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