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나, 아무것도 아니고 뭔가 이루어보지도 못한 이 시절을 후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생각한다. 어디에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이 초라하고 치사해지는 순간들을 겪으면서, 가끔은 방이 떠나가라 엉엉 울면서, 죄책감과 합리화 사이에서 끝없을 듯한 줄타기를 하면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나를 붙잡고 매달리느라 기를 쓰던 시간.

이 때 내 옆에 있어준 사람들, 있어줬다기보다 그냥 각자 자리에 있던 거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시절에, 만나서 농담과 슬픔을 함께 나눈 이들은 모두 나를 지지하고 위로해준 거나 같았다. 그건 내가 그저 프롤레타리아가 되든 혹은 꿈만한 사람이 되든 평생 곱씹을 선물이 될 거다. 나는 내 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뒤늦게가 아니라 지금 당장 알아서 기쁘다. 요새 사람을 만날 때 곧잘 사진을 찍는, 안하던 짓을 하는 건 그래서다. 물론 이런 얘긴 어딘가에 합격을 하고 난 후에 하는 게 더 뽀대가 나고, 순서상으로도 맞겠지만 말이지. 하하.

일상의 안온함과 삶에 대한 진정한 애착을 백수가 되서 알다니 인생은 역시 아이러니다. 이럴 때야말로 현재와의 단절이 절실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성질은 좀 더러워도 능력 있는 상사에게 욕지기를 디립다 들어먹고 열라 깨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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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10:19 2011/01/2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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