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별 모자란 것들이. 얼굴도 까맣고 좀만해가지고 아주 못 살게 생겼어. 어디 십년 전 얘기를 하고 있어, 응? 평소에 택시도 안 타보고 버스, 지하철 대중교통만 타고 다녀본 가난한 것들이 택시비 가늠도 못하는 거지. 여자 보니까 어디 가방도 쓰레기통에나 있을 만한 거 주워서 갖고 다니는 거 같드만. …… 그것들은 어디 서울 한번도 안 가봤을 거야, 시골에서만 거지같이 살다보니까. 서울, 인천 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하게 다 알아서…… (계속)"


분노와 증오가 배긴 어투와 전라도 욕설의 걸출한 질감을 도저히 흉내를 못 내겠다. 조정래 작가가 새삼 경외스럽네. 무튼 저 택시기사를 만난 건 설에 가족들과 외가에 다니러 갔을 때였다. 우리 이전에 태웠던 손님이 장거리 손님이었나본데, 그들이 시세와 좀 동떨어진 택시비를 얘기해서 가격 흥정하느라 다툼이 있던 것 같았다. 기사 입장에서 기껏 멀리까지 갔더니 손님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들먹이며 제대로 돈 받기 어려울지 모를 상황이 되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겠다. 그래서 미처 다 삭이지 못한 화 때문에 다음 손님에게 하소연도 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빠는 처음부터 기사에게 이것저것 물어주며 가끔 거들었다. 나머지는 아마 불쾌함을 감춘 채 그냥 듣고만 있었는데 그 욕설의 진득함에 모두 결국 푸핫 웃음이 나버렸다. 자기 화를 못 이겨 막말을 내뱉던 택시기사도 덩달아 웃으면서도 우리가 내릴 때까지 이전 손님에 대한 비난과 욕을 멈추진 않았다. 아, 정말 글로 표현이 안 되는 느낌이다. 웃음이 났건 어쨌던 굉장히 불편했다. 택시에서 내린 후 "기사 진짜 무식하다."라고 한마디 한 동생과 나도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택시기사를 비난하고 싶다기보다 무서웠다. 저렇게 대놓고 겉모습과 부로 사람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게 실은 적나라한 사회의 시선인가 싶었던 거다. 그냥 유별난 택시기사를 만났구나 치고 흥미롭게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그보다 무서운 마음이 더 크게 들어서 씁쓸했다.

나는 택시기사의 말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웬만해선 택시를 안 타려고 노력하고, 꾸준히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그 전날 밤에 엄마와 동생에게서 꼭 만원짜리 티 팍팍 나는 싸구려를 갖고 다닌다고 혼났던 만원짜리 가방을 품에 들고 있었다. 그래서 좀 상처를 받았던 걸까. 택시기사가 가방 얘기를 할 때 나는 찔끔했고 동생은 내 가방을 곁눈질하며 웃음을 흘렸다.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 같다거나 만원짜리 티라는 걸 어떻게 보는 건지 알지 못하고, 망가지거나 낡으면 사야 하는 물건으로 가방을 생각하는 싸구려 안목 때문인지, 한번도 이런 일로 위축되본 적이 없었는데 혹시나 이제껏 많은 사람들이 내 가방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 무서웠다. 청소년 시절에야 메이커니 해서 신경도 쓰고 그랬지만, 대학에 온 후로는 가방이나 입성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TV 프로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내 인간관계라고 할만한 테두리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고 그래서 나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냥 원래 다들 그런 줄만 알았던 거다. 물론 그게 꼭 비현실적인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내 현실로 닥쳐온 건 처음이었다. 사실 스물 서너살 이후로 이런 류의 충격을 받았다가 헤어나오는 것도 이제 익숙하다. 내가 생각하고 살아온 방식과 사회 일반의 가치라는 게 많이 다르다는 걸 서서히 깨달으면서,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은 엄청났다.

최근 대학에 온 이후 만났던 이들과 선택한 공간에 눈물겨울만큼 고마워하고 있다. 내가 그간 보고 경험했던 것, 나눴던 이야기들은 꼭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결국 나 자신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위해 소중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마련해줬음을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간을 겪어낸 후 지금에 확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좇는 그것을 따르지 않아도 초라하지 않게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 무척 불안하고 미약한 거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다. 이런 식의 얘기에 대해 물정 모르고 순진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제일 역겹다. 어쨌든 앞으로도 나는 무진장 흔들리고 갈등하고 허위의식과 욕망에 쉽게 사로잡혔다가 빠져 나왔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테다. 그이들은 그런 앞으로의 내게도 깨우침을 주고 용기를 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화폐 가치로 환원되는 사회라는 말을 몸으로 알아가면서도 거기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용기를 잃지 않고 싶은 마음, 그 뿌리와 거름이 되어줄 사람들과 기억이 있다는 게 너무 안도가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

딸의 만원짜리 가방이 안쓰럽다기보다 꼴보기 싫었던 엄마는 대단한 명품백은 아니지만 사서 한번 밖에 들지 않은 엄마 가방을 내게 준다고 했다.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던 나는 택시기사를 만나고 돌아와선 염치를 잃고 가방을 가져갈 맘을 먹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기 전날 밤에 엄마와 사이가 소원해질 일이 있었고, 슬쩍 던진 가방 안 줄거냐는 말에 엄마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못을 박았다. 울엄마 쿨하심... 난 내가 가방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되게 아쉬워서 지레 놀라기도 했지만 이젠 좀 괜찮다 하하. 만약 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도 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사람들 혹은 적어도 엄마와 가족은 분명 무슨 궁상에 고집이냐고 핀잔할 거다. 효용을 느끼지 않는 소비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것뿐인데 왜 그런 게 되는 걸까. 왜라는 질문에 답하긴 복잡하지만 그게 분명 궁상이고 고집이 맞는다는 건 안다.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노릇 하고 살려면 참 별의별 걸 다 신경을 써야 한다. 아우 나도 욕 나올라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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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5 23:14 2011/02/0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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