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다녀왔다. 미사를 본 건 아니고 세례를 받으려는 예비 신도인 공부 시간에 친구를 따라갔다. 이 언니는 원래 학창시절부터 개신교도였고 대학에 와서도 교회에 좀 나갔던 걸로 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지난 주에 성당 미사에 다녀왔다기에 신기해서 성당에 무슨 떡이 있나 싶어 나도 냉큼 따라나섰다. 일명 첫사랑 녀석이 바르게 자란 데 천주교 영향도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리고 종교의 엄청난 기적을 목도했다. 성당 가기 전엔 애인과 싸우고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며 씩씩대던 언니가, 두어 시간 후 성당을 나서면서는 "그래 다 내 잘못이지" 하는 거였다! 나야 딱히 내게 잘못한 사람이나 내가 잘못한 사람도 없지만 그냥 마음이 넓어진 기분은 들었다. 선생님 말에 집중하기보다 오랜만에 성경을 훑어 봤는데 좋은 말씀은 참 많다. 집에 와서 마태복음을 다시 보니 예수님은 참 현명하고 좋은 사람 같다. 일전에 성경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독파해보려다가 악독한 레위기에서 덮은 적이 있었지 하하.

내가 꼬꼬마 초딩이었을 즈음, 부모님은 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이들은 신실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할 분들이 전혀 아니다. 아마 새로운 지역에 가게를 차리면서 잇속으로 사람들을 알 요량에 교회에 나갔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대강 자리를 잡고 나서는 본래 습성대로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그만뒀다. 결정적인 어느 일요일 아침, 교회 전도사인가 장로인가가 집에 찾아와 교회에 가자는데 아빠가 대놓고 안 가겠다고 외면했다. 그 후로는 교회 나오라고 우리집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외가 쪽은? 일곱 살 때 흑산도 외갓집에 갔을 때 기억으로는 외조부모님 두 분 다 신실한 불교 신자였다.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던 분들이 언제 변심했는지 지금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이모네들도 다 성당에 다니는 걸로 안다.

친할아버지는 절 짓는데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병을 얻었다. 그러고 불교에서 원불교로 돌아섰던 걸까? 나는 할아버지와 친분있던 원불교인을 따라 법당에 가고 원불교 사생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지으려다 돈을 날린 그 절이라는 게 원래 원불교 법당이었나. 어쨌든 할아버지는 (원)불교 쪽. 할아버지 생전에 기를 못 펴고 살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호와의 증인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였던지 할머니가 매주 해야 하는 성경 공부가 내 몫으로 돌아왔다. 내가 성경교리책에서 질문에 답이 되는 부분을 찾아 밑줄을 쳐 주면, 교회에 가서 손들고 발표하고 칭찬받는 게 할머니 낙이었다. 재밌던 때도 있었지만 되게 하기 싫었는데 할머니가 삐지니까 억지로 했다. 중학교 들어가고 언젠가부터는 좀 맵차게 거절했다.

나는 이사와 함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동네 개신교 교회에 다녔었다. 3학년 때까진가 나름 꾸준히 다녔는데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둘 빠지고, 다른 학교 애들만 남았는데 외로운 느낌이 들어서 그만 뒀다. 어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본 성경만화전집이 재밌어서 그걸 계속 보려고 그 친구랑 친해지려고도 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원불교와 여호와의 증인교도 나름 접했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여호와의 증인교는 꽤 깊게 접한 셈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동아리를 들 때는 하고 많은 동아리 중 별다른 이유 없이 불교 동아리를 들었다. 축제 때 연등을 들고 반야심경을 외웠다. 또 배고팠던 성장기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 백설기 떡을 준다는 말에 성당에 가보기도 했다. 대학에 와서는 기운이 참 남다르다며 접근하는 대순진리회 교인과 두어 시간 흥미롭게 얘기 나눈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의 세계관과 교리는 있구나 싶었더랬다. 또 개신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참여했다가 좋은 사람들과 연이 생겨 개신교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몽당연필이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었다.

잡교 집안인 게 아니라 내가 잡교인이구나. 이제야 제대로 의식하는데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은 항상 이어져왔던 것 같다. 뭐든 깊이 들어가진 않고 한 발치 떨어져 어물쩡거리는 정도였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성경 이야기를 많이 접할 환경이었고 또 재밌어했고. 기본 세계관이 기독교에 근거한 서양 문학을 많이 접한 영향도 있겠다. 또 퇴마록의 박신부는 내게 있어 휴머니즘의 표상같은 존재로 지금 떠올려도 소름 끼치게 멋지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뭔가를 읽거나 노래하는 일 자체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종교에도 적을 가져볼 텐데, 그런 류의 거부감은 응원을 해도 데모를 가도 콘서트장을 가도 생기는 것으로 내겐 익숙해지면 괜찮을 의례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오래 지내도 씻을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그냥 어떻게 고칠 수 없는 거라고 포기하고 인정하고 말았다.

아... 방금 생각났는데 사춘기 어느 시점까지 나는 항상 머릿속에서 저 하늘 위에서 하나님과 예수님, 혹은 악마가 함께 나를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상상하면서 살았었다!!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들은 굉장히 인간적인(?) 어투로 아주 사소한 일에까지 내게 이래저래 간섭을 하곤 했다. 세상에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나한테까지 신경쓸 시간이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보통은 예수님이 개 한마리랑 같이 둘이서 얘기하던 적이 많았다. 나는 좀 떳떳치 못한 일을 할 때면 그 사람들 몰래 하려고 했고, 그래도 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들켜도 엄청 혼내키거나 그러진 않았다. 약간 방정맞은 아줌마 느낌이었달까... 되게 오랫동안 그랬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머릿속에 이런 게 있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친구나 어떤 어른한테도 한번도 묻지 못했다. 나 교회에 정말 완전 영향을 많이 받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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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00:19 2011/02/1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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