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현씨, 신종현씨. 신종현씨... 카드 가져가세요. 신종현씨..

 

토요일 아침, 누군가가 내 방 창문이 면한 이웃집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 택배 기사는 아니고 아마 카드사에 속해 일하는 이인 듯한데 사실 애타게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그이는 15여분간 신종현씨네 문을 두드리며 없는 사람을 부르는 내내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15분, 말이 쉽지, 굉장히 긴 시간이다. 나는 그이가 어느 순간 문을 세차게 두드리거나 '아이씨' 정도의 짜증을 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는 부서지고, 어떤 모욕을 당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일말의 화가 섞이지 않은 차분한 두드림만 기계처럼 지속됐다.

누가 봐도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들. 체념에 익숙한 것들.

어제 오후 내가 침대에 파묻혀 비몽사몽하고 있던 때에도 그는 신종현씨를 찾아 왔었다. 신종현씨의 이웃인가가, 신종현씨는 지금 집에 없고 내일 아침 일찍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이는 그 말을 믿고 신종현씨의 카드를 들고 토요일 아침에 온 것이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에도 끝내 신종현씨는 나오지 않았다. 그이가 신종현씨를 부르기 시작한지 1분도 안돼서부터 나는 알고 있던 것을 그이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이는 내 방까진 전해지지 않는 혼잣말을 잠깐 중얼거리더니 떠났다. 대신 내가 신종현씨를 원망하느라...

 

 

#국장이 떠났다. 회식에 찾아온 이제 전 국장을 보니 눈이 시큰했다. 가끔 국장을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그이가 있어서 든든했고 자랑스러웠다. 갓 입사한 뒤 그가 썼던 소견문을 읽었던 순간부터 나는 국장에게 쭉 반해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신의 깨끗한 의지로 남까지 고양시키는 그런 드문 종류의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국장은 언제나 옳다고, 사원들이 국장의 높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체현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말하거나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국장은 항상 옳았다고, 나는 믿을 수 있었고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투라를 통해 "인간의 모든 운명 중에서 이 지상의 힘 있는 자들이 또한 동시에 으뜸가는 인간이 아닌 경우보다 더 가혹한 불행은 없다. 이런 경우에 모든 것은 거짓이 되고 비뚤어지고 터무니없어진다"고 했다. 나는 그 반대의 세계를 겪었으니 운이 좋았다. 나로서는 회사를 떠받치던 거인이 사라진 것 같이 깊이 허전하지만 이제는 당신 자신께서 좀 더 편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가끔 새벽 4시 40분 전후에 눈이 떠진다. 전에 없던 일이라 나이가 드는가 보다 한다. 그날은 아예 일찍 출근 채비를 하고 걸었다. 6시 좀 넘어 대한문 부근 도넛집에 닿았는데, 시간대와 맞지 않게 남자들이 많았다. 한눈에도 평범한 사람들같진 않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 묘한 사람들, 누구인 것 같은데... 새벽 머리가 흐려 생각을 하다 말고 지나치다 대한문 앞에 와서야 그이들이 사복 경찰이었구나 깨달았다. 농성장도 분향소도 철거된 자리에 단 두 사람이 모금함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 제복과 사복을 입은 경찰들 수십명이 분주했다. 순수한 행인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현금이 전혀 없었다. 나로서는 그 상황에서 돈 말고는 다르게 마음을 전할 방도가 없었는데, 돈이 없어서...

 

 

#수술이 끝났다고, 생전 처음 입어보는 멸균복을 입고 회복실에 들어섰는데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여자만 "너무 아파, 너무 아파"라며 신음을 내고 있고 엄마는 안 보였다. 멀뚱히 선 내게 간호사가 엄마를 찾아줬다. 아프다며 소리를 치던 여자가 엄마였다. 나는 왜 당연히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내내 쾌활한 편이었던 엄마는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에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 상황에서 응당 했어야 하는 것보다 좀 차갑게 굴었다. 남을 잘 위로하는 편이지만 엄마는 위로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보다는 비참했다. 어서 더 어른이 되라고 세상에 강요당하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이제 엄마까지 나한테...  엄마는 내 손을 지나치게 세게 붙잡았다. 그리고 너무 아프다, 어서 올라가, 다음 주에 또 와, 여러 번 말했다.

그 엄마를 두고 온 저녁에 만난 누군가는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예쁘게 하고 왔느냐, 표정이 밝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사람을 잘 볼 줄 안다고도 말했는데, 그저 기가 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3/06/22 08:25 2013/06/22 08:25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430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