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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어디에 있든 그들은 디아르바크르의 시민.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가족은 쿠르디스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친구로 맞아 들였다. 10년 전, 터키군에 의해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이스탄불로 이주한 그들 가족과의 만남은 내가 쿠르드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가족 가운데 막내인 로나이는 10년 전 엄마의 뱃속에 있었다. 터키군은 마을을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수류탄과 비슷한 종류의 폭탄을 던져 넣었고 그것 때문에 집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로나이는 그 영향 때문인지 읽고 쓰기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이제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미네는 10년 전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떠오른다고 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 가족은 십년 전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벨긴과의 대화 도중에 내가 시비를 걸었다. 말보로를 피우는 밸긴에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런 미국의 정부를 뒤에서 돕고 있는 회사가운데 말보로도 있다고. 그리고, 쿠르드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 때문에 시작된 몇 시간의 토론은 참 힘들었다. 영어-터키어, 터키어-한글, 터키어-영어 사전을 다 꺼내 펼쳐놓고 한 마디 때문에 몇 분씩 확인해가며 이루어진 토론에서 스스로 한국인임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벨긴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는데 미국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이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른 뒤 자치주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미국이 싫지만, 현재 터키 내의 쿠르드족 문제에 있어서는 쿠르드족이 존재하는 것을 터키 정부가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힘들다고 한다. 나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에 쿠르드족이 자치를 얻어냈지만, 그 댓가가 전쟁의 동맹으로서 참전하는 것이었고 그로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중이 죽어간 것을 지적했지만, 벨긴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라크에서도 사담의 통치아래 얼마나 많은 쿠르드인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쿠르드 지역에 화학가스를 살포해 수만 명을 몰살하는가 하면 끊임없는 학살이 이어졌었다. 에르빌을 비롯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키르쿠크, 모술 등의 지역이 모두 쿠르디스탄 지역이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이루어졌던 쿠르드족 학살, 소개 작전 역시 터키 석유 매장량의 60% 이상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석유 때문에 학살과 점령에 시달렸고, 앞으로도 계속 억압될 예정이다. 전 세계에 석유가 없어진다 해도 쿠르족의 앞날은 순탄치가 않다. 중동지역은 앞으로 석유보다 물로 인한 분쟁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라크 지역 등은 석유보다 물이 비싼 형편이다. 이미 석유 고갈에 대비하여 대체에너지 개발 등 여러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지만, 물은 대체 자체가 불가능하고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므로 중동지역은 물로 인한 분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물의 통제권과 관련한 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동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며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이다. 몇 해 전 터키가 수많은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수장시키며 티그리스 강에 댐을 건설했으며 그로 인해 티그리스 강의 통제가 가능해졌다. 그것 때문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정부는 터키에 강하게 항의했고 터키 정부는 매일 일정량의 물을 흘려보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하산 케이프 지역에 다시 거대한 댐을 만드는 일을 진행 중에 있다. 이 댐이 완성되면 수많은 유적들이 한순간에 수장될 뿐만 아니라 터키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으로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 터키 정부가 완벽에 가까운 친미정권이며, 이란과 시리아가 반미정권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물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 지 불보듯 뻔한것 같다.

불행히도 쿠르디스탄은 중동지역의 젖줄인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의 발원점이며 그 상류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매장하고 있는 지역이다. 만약 쿠르디스탄이 독립한다면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동안 지배 받은 역사의 영향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터키 쿠르디스탄 저항의 핵심인 PKK는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이라크 전쟁과 관련 미국의 참전 요청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쿠르드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쿠르디스탄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 교환한 e-mail 주소에는 “amed”라는 단어와 “21”이라는 숫자가 중복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에게 그들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Amed”는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는 디야르바크르의 쿠르드식 명칭이며, “21”은 자동차 번호판의 Amed 지역번호라고...
그들은 지금 쿠르디스탄에서 밀려나 이스탄불에서 살아가지만, 집안에서는 항상 쿠르드어를 사용(내가 방문했을 때만 쿠르드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터키어를 사용해 주었다)하고 e-mail 주소하나에도 쿠르드인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들 자신 가운데 희망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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