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울교협통신] 준비1호, 95.6.23
대우조선 박삼훈 동지의 죽음에 대해
6월 21일 낮 12시 15분경 대우조선 특수선 생산1부에 근무하는 박삼훈(41세) 동지가 특수선 생산부 본관 4층 옥상에서 온몸에 휘발류를 끼얹고 불을 붙인 후 투신, 동료들이 급히 대우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 58분경 끝내 사망했다.
81년에 대우조선에 입사하여 15년간 근무한 박삼훈 동지는 불혹(不惑)의 삶을 마감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이 놈의 세상 가진 자만이 판치는 세상
우리 근로자는 작은 월급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노동자여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살아가는게 아닙니까.
툭하면 집회 참석도 못하게 하고 우리 권리를 우리가 찾아야지 누가 찾습니까.
노동자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올 임금 100% 쟁취하기 바랍니까.
사용자여 각성하라.
앞서 간 노동열사 뒤를 따라갑니다.
노동형제 여러분!
올해 목적을 기필코 승리하기 바랍니다.
41년의 삶의 무게가 다 실려 있을 이 유서 한장에서 우리는 박삼훈 동지의 깊은 분노와 처절한 저항을 본다.
박삼훈 동지는 '가진 자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희망 90s운동'이라는 신경영전략은 '희망'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피말리는 경쟁과 노동강도 강화로 몰아넣는 '절망'만을 안겨주었다. '맨아워(M/H) 흥정소'라는 '반생산회의'가 도입되면서 생산 통제가 극도로 강화되었다. 반별, 개인별로 매주 생산계획이 설정되었고, 근태사항과 '6대질서지키기' 참여도까지 실적이 평가되었다. 반간, 개별 노동자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경영층의 현장 통제는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 "우리 반이 일등할 수 있는데 너때문에 안된다", "일등은 안해도 좋으니 중간이라도 가자". '동조'하지 않으면 '고립'되어버리게 되는 '동료간의 압력'이 일상화되었다. 현장은 회사에 순응하는 '성실한 사람'과 '문제있는 사람'으로 분열되었다. 자본이 강요하는 경쟁은 동료들간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작업장을 삭막하게 만들었다. 박삼훈 동지는 이런 현실에 분노했고, 자기 몸을 불태워 '인간답게 살자'고 외친 것이다.
박삼훈 동지는 또한 '집회 참석도 못하게' 하는 현실에 맞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절규했다.
'대우조선 무분규 4년의 신화'는 '집회 참석도 못하게' 하는 교묘한 노동통제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참여는 당사자는 물론 반과 팀 전체의 연대책임으로 내몰렸고, 인사고과의 불이익으로 되돌아왔다. 기업문화전략은 의사소통 경로에서 노동조합을 철저히 배제하고, 개별 조합원에 대한 직접 통제를 강화시켰다. 여기에 '다물단'이 노동조합을 위협하며 새롭게 등장했다. 노동자에게 있어 단결은 곧 생명이다. 숨통을 막으면 죽는다. 박삼훈 동지는 동료 노동자들의 '떼죽음'을 막기 위해 자기 한몸을 먼저 내던진 것이다.
박삼훈 동지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절규한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87년 7-8월 대투쟁 때 우리 자신이 외쳤던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기계에서 인간으로',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났음을 당당히 선포했던 그때의 외침을 동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줬을 뿐이다. 그리고 '단결'과 '투쟁'이 우리 노동자의 '생명'임을 다시금 확인시켰을 뿐이다.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은 결코 훼손될 수도, 후퇴될 수도 없다. 후퇴는 양봉수 동지와 박삼훈 동지를 뒤따르는 또다른 죽음을 만들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