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 펴낸 책] 현장조직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울산노동정책교육협회, 1997
{현장조직운동의 과거·현재·미래}를 펴내며
자료집을 묶어 펴내는 일이 많이 늦어졌다. 지난 해 끝머리와 새해 첫머리를 온통 달궈버린 총파업이 우리의 게으름을 덮어줄 수는 없을 터다. 여기저기서 "자료집 도대체 언제 나오냐?"는 은근한 질타가 많았다. 그만큼 이 자료집에 쏠린 안팎의 관심과 기대가 컸던 셈이다. 그렇다고 일이 더디 된 까닭을 이 '무게'때문으로 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걱정 반, 죄스러움 반으로 이 책을 펴낸다.
어디나 할 것 없이 현장조직(운동)은 노동조합을 민주화시키려는 투쟁과 조직(노민추)에서 비롯되었다. 집행부를 손아귀에 넣는 것만으로 노동조합이 민주화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노민추운동을 대중화시켰다. 대중화된 노민추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민주집행부는 위로는 자본과 정권의 집중된 탄압, 아래로는 배신의 역사를 뚫고 올라오는 조합원대중들의 엄청난 투쟁 열기, 안으로는 '집권 경험'이 없던 탓에 실무 집행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3중의 시련'을 견뎌야 했다. '첫 싸움'은 대게 패배로 끝나고 지리한 노동조합정상화투쟁이 시작되었다. 현장조직(운동)은 이 시기에 '산개와 집중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민주세력 내부의 분열이라는 새로운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민주노조는 하나 둘씩 '회복'되었다. 이 회복은 말 그대로 '피와 땀'을 쏟아부어 쟁취한 것이었다. 현장조직은 이 속에서 '재건'되었다.
재건된 현장조직(운동)의 '오늘'은 어제와 사뭇 다르다.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총 시대 산업(업종)별 연맹단계로 접어들었고, 노동운동 탄압에 저항하는 방어투쟁을 뛰어넘어 조직된 총파업을 이뤄내는 데까지 발전했다. 한편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조금씩 현장을 허물고 있다. 오래도록 투쟁의 선봉장을 맡아왔던 노동조합일수록 밑둥부터 허물어지는 현장을 추스리기가 힘들다.
조건의 변화가 곧장 무슨 무슨 혁신 어쩌고 하는 노선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조직(운동)의 과거에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부정'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더이상 미룰 수는 없게 되었다. 활동관과 대중관을 재정립하는 것,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현장활동을 통일시키는 것, 현장활동가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것, 현장활동가 내부의 이견과 갈등을 극복해내는 것, 노동자 정치활동을 개척하는 것, 현장조직(운동)의 지역·전국 연대를 강화하는 것 들이 이 숙제와 맞닿아 있다.
현장활동가조직이자 선진노동자 대중조직인 현장조직은 자기 운동의 미래를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우리 시대 한국 노동운동이 짊어진 커다란 과제와 씨름하면서 개척해나갈 것이다. '정치적 노동운동'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과정 또한 현장조직(운동)의 이 씨름과 한몸이 됨으로써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료집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해방의 혼(魂)을 부여잡고 전진하고 있는 현장활동가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강의를 선뜻 맡아주셨던 동지들과 주마다 있던 강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던 현장 동지들, 그리고 마지막 종합토론에 먼 길을 마다 않고 자리를 함께 해주신 기아자동차, 한라중공업, 대우캐리어, 금호타이어 동지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