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향기 : 아무도 믿지 않는다  Violet Perfume : Nobody Hears You   
감독 : 마리사 시스타츠 Maryse SISTACH

Mexico, 2001, 90 min, 35mm, color 

 


'제비꽃'하면 떠오르는 것? 
귀여움, 순결함, 순수함...
부제를 읽지 않는다면 로맨틱 영화로 오해하기 십상...
물론 이 영화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적이며, 야속할 정도로 '냉정한' 영화이다.

 

   열 다섯 살, 아직은 따뜻한 가정과 애틋한 우정으로 웃음을 머금어야 할 나이의 제시카의 삶은 너무 무겁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의붓아버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어머니, 툭하면 무시하고 괴롭히는 의붓 오빠와 아직은 철 없는 어린 동생들. 학교에서도 이미 문제학생으로 낙인 찍혀 선생님들은 그녀를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제시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이해받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 미리암은 너무도 소중하다. 미리암에게서는 제비꽃 향기가 난다. 극빈층인 제시카와는 달리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미리암은 어머니의 각별한 애정과 보살핌으로 깨끗하고, 다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미리암의 향기에 반한 제시카, 그리고 제시카의 씩씩함과 반항기에 반한 미리암은 서로에 대한 동경과 그로 인한 우정으로 행복하다.

   학교가 끝나면 제시카는 미리암의 집으로 간다. 어머니의 과보호에 답답함을 느끼는 미리암은 즉흥적이고 거침없는 제시카의 행동이 즐겁고, 따뜻함과 정갈함을 느낄 수 있는 미리암의 집은 제시카에게 자신의 누추함을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제시카는 집과 학교에서 끊임없이 '여성적'일 것을 강요 받는다. 집에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모든 집안 일과 오빠 뒤치닥거리를 해야하며(너무도 당연히),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돈을 벌어올 것을 강요받는다. 학교에서는 여학생이기 때문에 순종적이고, 깔끔할 것을 교육 받는다. 남학생과 싸워도 여학생인 제시카만 혼이 나고, 사내같고 단정치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제시카를 여학생으로서 보호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제시카의 의붓오빠는 유행하는 운동화를 사기 위해 자신의 동료가 그녀를 강간하도록 도와주고, 그 사실을 밝히겠다고 오히려 제시카를 협박한다. 그 사실은 안 미리암은 제시카를 동정하지만 조금은 제시카의 자유분방함을 의심하기도 한다.
   미리암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그런 친구와 사귀는 것이 못마땅스럽다. 배우지 못해서 힘들게 돈을 버는 자신이지만 딸 만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시카는 미리암의 집에서 종종 향수나 화장품을 사용하고, 깨끗한 속옷을 훔치거나 심지어 집세를 위해 돈을 훔쳐가기도 한다. 미리암 역시 제시카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불안하고 화가 난다.
   제시카 역시 미리암에게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미리암 역시 제시카의 그런 행동이 미덥지 못한 것이다. 서로를 진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사소한 말다툼 끝에 미리암은 제시카에게 창녀에 도둑이라고 소리를 친다. 미리암은 그런 제시카를 떠밀고, 화장실 세면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 미리암은 죽는다.

   사고가 나자마자 제시카는 미리암의 집으로 가서 마치 그녀인 것 처럼 이불 속에 숨고, 미리암의 어머니는 그녀를 미리암인 줄 알고 속삭인다. "사랑한다."

   제시카의 행복한 미소...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보세요?"...

 

   제시카는 안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해도 하소연할 가정도 학교도 없다는 것. 단지 '제비꽃 향기'로 그런 자신의 빈곤과 상처를 잠시 잊고 싶어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향기'는 향기일 뿐이다. 더구나 '훔쳐지는' 향기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도시빈민, 청소년, 여성. 제시카의 삶은 너무도 위태롭다. 게다가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성적인 폭력 역시 폭력의 피해자가 사회적 기준에서 '여성적이지 못할' 때는 보호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비난을 받게 되는... 순수해야 할 우정 조차도 이 상황에서는 너무도 나약하게 부서진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성폭력의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망가지는 두 소녀의 삶은 멕시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안전하게 최소한 자신의 힘으로 자기의 삶을 세우기까지 온전하게 성장 할 수 없는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슴이 먹먹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8/04 15:36 2005/08/04 15:36
http://blog.jinbo.net/productive_failure/trackback/37
조영은  | 2007/04/23 19:21
선생님 영은이예요 선생님 너무 글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나도 영화에대해서 이렇게 잘 정리 됬으면 좋겠다.^0^ 제비꽃 향기 꼭 보고 싶어요~!!! 시험 기간떄문에 오늘은 이것만 읽고 갈꼐요~
긴 호흡  | 2007/04/24 01:51
에구... 시험 기간이구나~ 우자지간^^ 방학이나 시험 끝나고 한가하게 놀자~~ 영화도 보고 수다도 떨고 ㅎㅎㅎ 영은 홧팅!!!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