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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아파야 한다.

오명, 더러워진 이름이나 명예.
그러나 정신질환은 그저 하나의 질병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병"은 어떻게 접근이 될까?

"정신병"의 경우엔 좀 더 미묘하다. 정신병은 "병적 정신상태"를 의미하는데, 도대체 그 "병적"인 것의 기준이 뭘까?
역시나, 문제는 어느 지점을 "병"으로 간주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맹점 중 하나를 살펴보자. 나는 분명히 어딘가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멀쩡해요"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또는 병원에선 큰 병이라고 했지만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낸 적이 있는가? 이런 극과 극의 차이를 생산하는 지점은 바로, "병의 발명"에 대한 부분이다. 이 발명 지점과 시점이 어디냐에 따라, 과거에는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정신병이 임상의학적으로 처리되기도 했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분류하고 있는 것 조차도 나중에 바뀔 수 있다. 푸코를 참고하라.)
문제는 이 지점에 대한 판단이 손쉽지 않음에도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모든 것을 처리한다. 대표적인 게 "수량화"다. 건강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수치적 수명"에 대한 게 되며, 모든 자료는 수명에 연결되어 발표된다. 담배를 한가치 피우면 수명이 몇 시간, 며칠 단축되고... 이런 식으로 과학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를 단행하게 된다.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경제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신자유주의가 별거 있나?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개혁"의 칼바람을 휘두르는 것 뿐이다.)
정신병으로 돌아가자. 정신병에선 병적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회성", 즉 "적응"에 맞추고 있다. 즉, 이 사람이 이 사회와 안 맞으면 "정신병자", 그외엔 모두 "정상인"인 것이다. 이 사회의 판별 기준은? "쪽수"일 수도 있고, "과학"일 수도 있다. "정치"일 수도 있다. 이것을 결정하는 게 바로 "지배담론"이다. 매우 간단한 이분법. 사회와 안 맞는 사람들만 줄줄이 모아서 병원에 감금하면 모두 해피하다.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줄줄이 모아서 병원에 가두는가? 근거없는 짓을 하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정상인들이 스스로를 배반하게 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의 구세주 정신의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을 "아픈 상태"로 규정하고, 그 치료를 목적으로(매우 인도적이다!) 활동을 하면 된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병이 "발명"된 것이다.
'정신병은 정신이 아픈 거예요.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는 것처럼
정신병이 생기면 신기한 생각들이 콜록콜록 나오는 거란다.'
졸지에 "다른"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을 모조리 "정신병동"에 가두고 열심히 사회 적응을 목표로 여러 활동을 펼친다. "우리"와 어울릴 수 있게, "그들"만 변화시키는 것이다. 몇년 동안 콜록콜록 앓던 아이가 어느날 아픈 게 싹 나아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되고, 이 사회에 적응하게 된다. 그를 간호하던 가족과 의료진은 환호성을 지른다. 아아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휴먼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끊임없이 아파야 한다. 평생을 두고 두고 아파야 한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아파야 한다. 그리고, 그런 아픈 사람들로 인해 우리들은 정상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된다. 때로는 아픈 사람들에게 동정도 하고, 치료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아픔"은 계속 이어져 간다.
정말로 "신기한" 건 과연 누구이며, 어떤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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