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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

여성해방 + 어머니 ?의 덧글을 이어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건 유물론입니까? 선언한다고 유물론이 되지는 않지요. 자발적 모성을 얘기한다고 해서, 모성을 본질적인거라 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모성이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다"로 받아들였다고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아니랍니다^^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이 그걸 부정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안합니다. 이론적으로 방대한 얘기를 그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거에 한계가 느껴지는군요.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실 원문도 "여성운동하는 사람"이 쓴 거 아닌가요? "이론적으로 방대한 얘기"라면 방대하게 하나씩 이야기하면 됩니다. 우리는 엘리트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대중과, 민중과 함께 오손도손 하나씩 이야기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 행동이 필요한 겁니다.
당연히 노동개념의 재구성과 전략이 필요하겟조.
저는 그 반대입니다. 단순히 "노동 개념"을 다르게 "재구성"하고 새로운 "전략"을 사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노동"이란 "언명"에 사로잡힌 것은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그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소비에트"입니다.
좀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면, 행동심리학의 어포던스라든가, 라캉의 대문자 타자라든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 보드리야르의 거울상 등으로 살펴볼 수도 있겠죠.
다양한 개개인들 속에도 결국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있다는 거조.
바로 그겁니다. 다양한 개인들을 그대로 보지 못 하고, 타자를 설정하고 그에 의해 동일자가 생산되는 형태였던 게 여태까지의 모습이었죠. 이 "구분"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게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그저 그 구분을 그대로 둔 채 투쟁을 벌인다면 한마디로 놀아나는 꼴이죠.
인간을 아무리 개개인으로 본다해도, 여성과 남성이라는 종적으로 다른 두개의 유적존재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중요합니다. 해방을 위한 조건들과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제설정은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언급하면서 나오는 겁니다. 즉, 기존과는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문제 지점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거죠. 남성/여성의 여태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문제설정이라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종적으로 다른 두개의 유적존재"라는 것은 철저히 동성애자를 배제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라도 해도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구분인(!) 남성/여성의 이분법 위에 올려놓겠다는 거죠.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적소수자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주민등록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을 남녀로만 구분하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정확이 어떤 지점이 어떻게 다른가요?
따라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재구성이 중요합니다. 여성은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을 가져본적이 없조. 타자에의해 규정되엇구요. 따라서 여성들의 공통분모에서 시작할수 있을꺼구요. (개인의 권리보다 우선이라는 건 아닙니다. 둘의 관계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 "공통분모"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타자"입니다.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라고 꿈꾸고, 그것을 발견했다고 믿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게 바로 "마초"입니다. "싸나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고, 그에서 어긋나면 싸나이가 아닌 "계집애"라는, 동일자/타자의 모델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남성의 정체성은 남성에 의해 규정되었나요? (혹시라도 "타자"를 "남성"으로 오해하실까봐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성의 정체성이 말씀하신대로 모성으로만 이루어진게 아니조. 쉴라 로보쌈의 글은 절대 그런 맥락이 아니구요. 여성이 모성의 깃발아래 모이자고 한 것도 아니구요. '자발적'이란 말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모성이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거구요.
저도 "모성이 권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읽는 것 또한 "맥락"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텍스트는 열려 있고, 거기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자발적 모성"은 본질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기존 모성의 폐기 / 새로운 모성의 제안"이라는 명확한 표현이 아닌 "자발적 모성"이라는 고루한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자, 다시 이야기합니다. 내가 "여성으로서 나의 여성성을 찾는다"라는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차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차이의 유희는 충분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 "차이"를 자기 안에서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을 구분하는 방법에 의해, 그리고 그에 따라 속해버린 집단에 의해 "정체성"을 부여받는 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분명히 근대 국가 체계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겠죠?(언명) 나는 그러므로 한국인이라는 범위 안에서 공통 분모를 찾아서 (좀 오버한 예를 든다면, "한국인은 근면성실하고 머리가 좋다!")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요? 좀 더 극단적으로 봅시다. 모성 본능이 없는, 아이를 끔찍히 싫어하는 여성은 "진정한 여성"이 아닌 걸까요? 바로 이 부분이 "타자"를 설정하는 부분이고 "진정한 여성"이라는 "본질"이 만들어지면서 "동일자"가 생산되는 지점이지요.
덤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만들어진 공통분모를 볼까요? "합리성" 같은 걸 들 수 있겠죠? 이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그 유명한 "광인 / 정상인"을 보게 됩니다. "합리성"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공통분모일까요? 이걸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동일자/타자 모델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아니, 정말 지구 상의 모든 인간의 공통분모를 찾았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인간/비인간이라는 모델로 갑니다. 예? 그럼 전지구로 가죠. 그럼 또 다시 지구/비지구의 모델로 갑니다.
이렇게 하면 끝이 없겠죠? 예,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이 모든 걸 바로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사의 산물임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본질주의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리처드 로티식으로 말하면 "최종 어휘"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역사 위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속의-존재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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