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

2006/08/14 11:08

고등학교때와 재수할 때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고, 대학에 들어가면, 내 주위의 문과반 친구들이 대개 그랬듯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만난 첫번째 지적 충격은, 물론 '계급' 개념에 대한 것이었다. 잉여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론적 기여를 했다고 하고, 마르크스까지 관여시킬 것도 없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사는 것. 그만큼 흔한 주제였기 때문에 나에게도 쉽게 찾아온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지식 체계를 흡수하고, 또 뱉어내는 것이 그 시절의 나의 지적 일상이었다고 기억된다.

 

이 개념으로부터, 나의 가치지향이 투쟁, 특히 정치투쟁이라는 방식을 용인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미 낡은 것이 되어가던 방식이었지만, 시골에서 갓 올라온 어린 사람에게 다른 선택의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른 방식의 삶'이라고 하는, '방식' 자체의 문제를 많이 생각했다.

 

이로부터 대안적 삶의 형태를 고민하는 일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군대에 갔다와서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고려한 주제가 '대안학교'에 대한 것이 되었다. 물론, 이 고민을 사회학적 주제로 용해시키기에 내 역량이 부족했던지, 이 주제는 나에게서 쉽게 잊혀졌다.

 

학부를 졸업할 무렵 두번째 충격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식민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실,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신입생 시절의 고민은 그 자체로 전 세계 모든 장소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지만, 보편성에 대한 추구는 그만큼 많은 허술함을 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때의 내가 느끼기에 구체적인 '바로 이 장소'에 대한 고민을 결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번째 충격이 통시적인 문제, 곧 자본주의의 역사라고 하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는데, 두번째 충격이 더해져서 공시적인 문제, 즉 비동시성에 관한 주제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것은 학부때 사회학과에서 제시하는 커리큘럼만 잘 따라갔어도 일찌감치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었을 지식들이었을지 모른다. 가령, 발전사회학(사회발전론)을 3학년때 열심히 들었다면, 세계체제론에서 제시하는 비동시성의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대학원에서 한국사회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편성에 대한 특수성의 문제설정은 식민지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일제시대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는 문제는 교육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석사논문, "일제의 대한(對韓) 식민지 교육체계의 구상과 실행"은, 물론 여러 사건과 요소들을 포함하여, 나의 이러한 관심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들어간(온) <태동고전연구소>는 동양학 전공자들을 위해 한문지식을 전수하는 기관이다. 동양학이란 말에 이미 포함되어 있듯이, 한학이라고 하는 전통적 지식이  아니라 '동양학'이라고 하는, 근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성립된 현대적 학문범주를 위한 기초지식의 습득이 이 기관의 목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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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4 11:08 2006/08/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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