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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반대하는 녹색 지식인의 '정직한 비관주의'
이명원의 좌우지간⑥-2: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김종철의 대안적 사색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감과 함께 현실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김종철의 사색은 커다란 영감을 주지만, 오늘의 자본주의 극복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자본주의와 이에 기반한 정치질서가 현실적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즉 비가역적인 요소로 보인다는 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지성계에서 김종철의 주장은 '광야에서의 외침'과도 유사하다. 사람들은 그 외침의 내용을 문제삼지 않고, 그것의 스타일과 실현가능성을 문제 삼는다. 특히 자신의 비전을 국가 및 시장과 연관하여 사유하는 지식인들은 더욱 그렇다.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사유 역시 그러하다.


가령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모순을 사람들은 양극화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이 양극화라는 문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심화에 뒤따르는 필연적인 수순이다.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희소성'의 가치부터가 이미 이러한 경쟁논리와 양극화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모순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 역시 존재한다. 이른바 복지국가론이 그것이다. 한국의 정치세력 역시 오늘의 약탈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모델로 북유럽식의 복지국가 모델을 자주 원용한다. 보수정당은 물론이고, 가령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역시 부유세에 기반한 복지국가 모델을 당의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김종철의 생각을 물었다.



대안모델이 북유럽식 복지국가?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물론 지금 식의 정치체제 속에서는 국가에 대해 복지정책을 더 많이 하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국가 역시 물질중심주의 아닌가. 결국은 국민을 타자화한다. 국가나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지 않은 게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란 국가를 전제로 한다. 국가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것. 그런데 생태적으로 이것은 지속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그 자체가 반생태적인 것이다. 우리의 정치하는 사람들, 그 옆에서 직접 조언하고 정책을 반영하는 싱크탱크들이라면 몰라도, 비판적 지식인이라면 당장 정치판에 응용할 수 있는 생각만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사회에는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도 김종철은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복지국가 모델 역시 물질적 풍요에 가정하고 있는 지속불가능한 모델임을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시장 중심의 근대적 모델을 극복하는 것이다. 앞에서 그는 간디의 마을 자치모델을 이야기한 바도 있지만, 이 부분에서도 역시 농민공동체의 문제를 역설하고 있다.


"나 역시 현실정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 이야기가 금방 국가정책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물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발언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셈이다. 나는 가끔 농촌에 갈 기회가 있는데, 다니다 보면 도시의 어떤 지식인보다 농촌에 뿌리박고 오랫동안 농사지으신 분들이 훨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많다. 그 자존심의 뿌리를 알고 나면 도시인인 나는 열등감이 느껴진다. 이분들의 자존심의 근거는 자기들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자기 손으로 먹인다는 데 있다. 이 사람들은 도시의 사람들처럼 어디 가서 누구를 모신다거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간디가 촌락공동체에서 참된 민주주의를 보았다는 게 농촌을 돌아다녀보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이에 비해 대학교수들을 보라.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노예적인 조건에 처해 있지 않나. 비유적으로 말하면 탱크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무기로서의 탱크이고, 또 하나는 지식인이 모여 있는 싱크 탱크(think-tank)다. 그런데 싱크탱크란 무엇인가. 탱크를 만드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 그 사람들이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 아닌가. 지식인이야말로 가장 노예적인 사람이다.
반면에 정말 흙 속에 사는 사람들, 농민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농업을 보조한다는 것에 대해 콧방귀를 낀다. 이들의 주장은 다만 우리가 기른 작물을 제값 받고 팔게 해달라는 것이다. 제발 국가와 시장이 이걸 방해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농촌에 가면 국가 보조금을 달라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뿌리 있는 농민이 아니다. 대개가 대규모의 시설농, 농축업, 기계농을 하는 사람들이다. 경제적으로 커다란 야심을 가진 사람들은 비즈니스맨 아닌가. 진정한 농민은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국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복지의 문제 앞에서도 나는 그런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나라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농민들이 키운 작물을 제값을 못 받게 한 토대 위에서 공업발전을 한 결과다. 이 때문에 농촌이 피폐해져 사람들이 없다. 만약 농촌에 사람들만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있는 농촌은 분위기가 확 다르다. 사람만 있다면 그 안에서 저절로 밑으로부터의 복지가 생겨난다. 어지간한 병 역시 농촌의 할머니들이 잘 다룬다. 교육은 어떤가. 농촌의 경우 동네교육과 마을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살면서 사람살이와 삶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세금 많이 걷어서 복지시설 만드는 것보다는 농촌을 살리는 것이 본질적 복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국토균형발전이나 출산율을 포함한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복지야말로 지속가능한 복지다. 또한 인류에게 암울하게 닥치고 있는 생태적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



"답은 농민공동체 복원, 그러나 녹색당 창당은 안 된다"


김종철이 사유하는 아래로부터의 복지는 농민공동체의 복원에서 온다. 그런데 오늘의 자본주의 질서는 농민공동체의 체계적인 붕괴를 오히려 가속시키고 있다. 한미 FTA를 포함한 일련의 국가간 자유무역협정이란 것 역시 결국은 '희소성'이나 '비교우위' 등의 개념에 근거해, 한국의 농민공동체를 파산에 이르게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자본주의는 농민공동체에 근거한 근원적 복지체제를 제거하면서, 그것을 국가가 나서 복원하겠다는 아이러니의 산물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렇다면 이러한 비전에 대한 체계화된 의제를 생산하는 가령 서구식의 녹색당이라도 건설하는 게 옳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김종철의 생각은 매우 비관적인 것이었다.


"최근 몇몇 젊은 사람들이 녹색적인 가치를 정치세력화할 필요가 있다며 녹색당을 창당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어느 자리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녹색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지금 상황에서 전무한 게 아니냐. 독일 녹생당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녹색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는 물론, 대중적인 이해도가 우리 사회보다 훨씬 높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녹색당의 존재이유가 없어졌다. 왜 그런가.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은 물론 기존의 계급정당들이 녹색당이 제안하는 가치를 자기 당의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녹색당이 다른 정당들이 하지 못하는 가치를 제안한다면, 그것은 경제성장을 멈추자는 주장이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녹색당의 정체성인데, 그렇게 하면 표를 잃으니까 독일 녹색당은 그런 노선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은 녹색당을 탈당했고, 녹색당 내에는 이제 현실주의자만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녹색당이 나토의 코소보 전쟁이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도 묵인하는 식의 녹색적 가치의 왜곡, 타락을 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녹색당의 존립이유는 없는 게 아닌가. 독일도 그런 사정인데, 과연 한국에서 녹색당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독일의 경우 녹색당이 창당될 때는 오늘과 같이 신자유주가 전세계를 위협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의 상황은 대단히 나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제 가치만을 이야기하고, 이기적으로 혼자 살아야겠다는 식의 논리에 빠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가 발전해서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이 높아졌고,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의 미래상에 대해 낙관하는 지식인이 많지만, 나는 우리사회가 점점더 회복불능의 파국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인간이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생물학적, 물리학적 존재이다. 지금 일하는 사람이 살 자리와 터전이 없어지고 있다. 농경지의 파괴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고, 기후악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 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게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교육은 어떤가. 과감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생각 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돈 있는 사람은 조기유학이나 영어교육에 미쳐 있다. 공교육은 무너졌고 사교육은 번성하고 있다. 교육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라. 우리가 공통된 삶의 조건 속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문명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오늘의 교육을 통해서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우리사회를 전혀 낙관할 수 없다."


요컨대 오늘날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종철의 근본적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녹색당조차 제도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장을 내놓고 제기하기 힘들다. 대의제 민주정치 구조 아래서, 녹색당이 제도정당으로서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여론'에 편승해야 할 텐데, 그랬을 때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결국 당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케 할 것이라는 비관주의다. 이렇게 본다면 김종철의 현실에 대한 비관주의는 매우 뿌리 깊은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김종철은 비관적 상황에 대한 어설픈 희망보다는, 비관적 상황 그 자체를 냉철하게 사유하는 시각이야말로 오늘의 시민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가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러한 반문은 현재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서경식 교수 역시 동일하게 제기한 바 있다. 그는 이른바 민주화의 시기에 자신의 두 형인 서승과 서준식 형제가 한국의 감옥에 수감 중일 때, 이탈리아계 유태인인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이탈리아 작가는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전쟁 후 이탈리아에 돌아와 <이것인 인간인가>라는 작품 등을 통해서, 우리가 통념적인 인간에게서 찾고 있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실상에 있어서는 얼마나 허구적이고 절망적인 가치인가를 되물었다. 프리모 레비는 증언으로서의 문학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돌연 자살했다. 서경식 교수는 이 증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절망에 전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은 정작 뿌리 깊게 절망해야 할 때 그 절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헛된 낙관주의보다는 정직하고 근원적인 절망이 때로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 절망을 회피하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어쩌면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보다, 절망을 보다 투명하게 투시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김종철의 절망은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근본적 절망과 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과 비관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를 틀 지우고 있는 반인간주의와 반생명주의의 무서운 발전주의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최근 문단에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견해도 물어보았다. 일본의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논문에서 문학계를 떠난 김종철을 거론하면서, 한국에서 문학의 근대적인 비판기능이 상실되고 있음을 논한 바 있다. 이러한 고진의 논의가 한국 문단에 가한 방응은 격렬했다. 많은 수의 젊은 비평가들이 고진의 진단을 갑론을박했고, 그 와중에 백낙청과 최원식, 황석영과 같은 비평가와 작가들은 고진의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가정에 입각한 오류하면서 비판했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 때문에, 불가피하게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김종철의 한국문학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근대문학의 종언 = 근대지식인의 종언


"나는 아무 당사자도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의 글에서 대구에서 나와 잠깐 만났던 일을 자신의 논문에서 언급한 탓에 구설수에 올랐던 것 같다. 내가 문학공부를 손에서 놓은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문학에 대한 논의를 할 만한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밝히고 싶다. 적어도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한 견해의 취지는 존중해야 한다. 나 역시 가라타니의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는 현재의 한국문학상황을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표현했다. 그 글을 보면 그것이 단순히 문학계에 한정된 주장이 아니고 근대적인 지식인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시점에서의 일본을 포함한 세계의 지적, 정신적 상황을 진단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 글 속에는 가라타니라는 지식인의 위기상황에 대한 고민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국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입론이 틀렸다, 지금 한국에서 근대문학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건방지다, 지금처럼 한국문학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때가 어디있는가의 주장하는 것은 가라타니의 취지와 매우 어긋난 견해다.


물론 한국문학이 양적으로 활발하고,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20만 권 이상 팔릴 정도로 한국문학이 융성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라타니의 주장은 범주가 다른 이야기다. 가라타니의 고민은 100여년 이상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생각해왔던 사유의 정통적인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 역시 고진의 강연록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정돈된 글은 아니고, 가라타니의 주장 내부에 일정한 혼란이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취지는 이해하겠더라.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가 몰락함으로써 근대문학은 끝났다는 주장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근대문학이 형성되고 전개된 것이 명치유신 이래 자본주의 제도가 들어오면서 풍미한 '입신출세주의'의 영향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활동으로서 일본 근대문학이 자리잡았다는 주장일 것이다. 요컨대 가라타니의 참 뜻은 체제에 대한 비판적 활동으로서의 문학이 일본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크게 약화되거나 붕괴되었다는 취지로 나는 이해한다.


그것을 우리상황으로 옮겨와 보면 어떤가. 가라타니의 진단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어떤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린다는 것은 가라타니의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다. 가령 해리포터가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팔리는 것은 그게 문학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분위기에 편승해서 팔리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론을 근대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식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읽으니 오히려 더 실감나더라.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이 상당히 약화된 것 아니냐. 반대로 오히려 체제의 논리를 공급해주는 지식인, 싱크탱크로서의 능력은 신장되었지만 체제를 근본적으로 묻고, 극복해야 할 부분에 자신의 지적, 정신적 에너지를 쏟는 지식인은 확실히 드물어진 것이 사실이다. 지금 그걸 지적인 과제로 삼는 분위기가 아니다."


김종철의 견해를 듣다보니,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동의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작가들의 태도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스스로를 비판적 지식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많은 수의 젊은 작가들은 작가라는 직능 안에서, 다만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자부심만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들에게 당신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나는 작가라고 말한다. 작가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식의 순환논법이 그것이다.


"사회 속의 여러 직업군 중의 하나를 작가로 규정하는 걸까. 그러나 작가는 겸손하면 안 된다. 작가는 자기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공동체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책임감이 작가에게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무엇 때문에 작가들이 문학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인간정신이 왜소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도 경제성장을 겪은 사회의 공업화와 자본주의가 무르 익어가면서, 물질주의의 쾌락을 한번 맛본 사회 일수록 작가들의 비판력이나 비판적 사고능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 몸이 편안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생각들도 작아지고, 왜소해지는 것 같다."


김종철의 작가에 대한 정체성 규정은 결국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닮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의 평론집인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그가 했던 발언을 상기했다. 요점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학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어쩌면 르포작가나 저널리스트들이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우리 문학을 보면, 결국 땅에서 멀어지니까 야성이랄까 하는 부분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문학은 일본 근대문학보다 야성적이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은 대개 일류대학 출신이 주도했다. 나쓰메 소세끼, 오에 겐자브로를 보라. 일본의 작가들은 거의 대개가 동경대 아니면 일류 명문대학 출신이다. 그러나 한국은 안 그렇다. 사실 작가에게 학력이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효석 같은 경우, 경성제대를 나왔지만 메이저 작가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민중 속에서 나온 작가가 주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족적은 민중생활과의 밀착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을 한국적으로 보면, 그러한 민중적인 관련성, 민중생활과의 밀착이 상실되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야성이다. 들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과거 우리문학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없다. 문학뿐만 아니라 지식인 일반의 작업을 관찰해 보면, 거기에는 들사람의 목소리가 없다.


근대문학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체제비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이때의 체제란 그때 그때의 정권이나 지배세력을 넘어, 자본주의 근대에 대한 저항과 도전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근대란 결국 사람의 정신을 순치시키고 길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날카롭게 저항하고 야성의 사고를 이야기해 공감하게 만들고 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학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이 90년대 이후부터 상당히 약화되었다. 여기서 민족문학이나 민중문학이란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들사람의 목소리가 약화되면서 문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은 아닌가.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지식인과 문학인의 정신적 왜소화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들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국문학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가들조차 쓴다는 행위를 '체제비판'과 관련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과격하게 상실해가고 있다. 오늘의 한국문학은 '동시대성'과는 무관한 사소주의에 빠져있음은 여러 비평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이다. 문학이 현실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다만 웅얼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은 작가들 자신에게서도 동시에 발성되고 있다.



헛된 희망보다 절망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정론지이고 싶다


문학은 근대적 자율성을 확보하자마자, 더 이상 사회적 존재근거를 얻지 못하고 주변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의 무수한 문학매체들보다 오히려 김종철이 편집하고 있는 <녹색평론>이야말로 참다운 문학정신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부분에서 <녹색평론> 편집자로서의 김종철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환경, 생태적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세월이 가면서 몇 해 전부턴, 좋은 잡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왜 좋은 잡지가 없는가하는 의문도 있다. 지금 지식인 사회의 빈곤은 곧 잡지의 빈곤이다. 물론 종수는 많다. 문학잡지만 해도 수백종이라고 하더라.


나는 <녹색평론>을 전문지로 만들고 싶지 않다. <녹색평론>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생태전문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녹색평론>은 결코 생태전문지가 아니다. 이억승 선입관네 불과하다. 나는 <녹색평론>을 생각 있는 지식인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정론지로 만들고 싶다. 정론지란 무엇인가? 나는 잡지에 단편소설을 잔뜩 싣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녹색평론> 역시 과거에 소설 재수록은 몇 번 한 적은 있지만.


소위 정론지라고 표방한다면 에세이라든지 이론적인 글이라든지 평론을 갖고 지식대중의 수준을 높여 가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는 일을 잡지들이 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생태나 환경과 연관이 안된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제들은 직간접적으로 <녹색평론>의 문제의식과 다 연관된다. 앞으로는 오늘날의 현안과 관련되는 문제가 있다면 가능한 한 그것들을 다 다뤄보려고 한다. 문제는 필자 기근이다. 더군다나 이른바 학술진흥재단 체제가 강화되면서 소위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학진에 등록되지 않은 잡지에는 글을 쓸 여가가 없어졌다. 이것은 학교의 연구업적으로 인정이 안 되니까. 교수들은 <녹색평론>에 글쓰는 것을 여기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학진체제의 강화는 교묘하게 지식인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돈과 지위를 약속하고 지식인들을 어떤 방향으로만 정신을 쏟고 글을 쓰게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저항할 만한 용기와 비판력을 가진 지식인들은 많지 않다.

필자 얻기가 지난하다. 그게 늘 문제다. 두 달 동안 늘 고민 속에서 산다. 그러다보니 번역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제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세계의 변화는 우리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사람들의 현황이랄까 이런 것도 좀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글을 선별 하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데, 과연 제대로 된 성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필자 얻기도 지난하겠지만, 오늘과 같은 출판환경에서 <녹색평론>을 유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는 녹색평론의 상징적인 책이라 할 수 있는 <오래된 미래> 역시 한 출판사가 판권을 인수했다. 출판사정은 괜찮을까.


"고정독자가 오천 명 남짓 된다. 십년이상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편이다. 일단 고정독자가 있으니 잡지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문제는 단행본에서 늘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책을 내고 싶어도 망설일 경우가 많다."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녹색평론>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의 책이 <느낌표>라는 방송의 지정도서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녹색평론>의 김종철이나 저자인 권정생 선생 모두 방송제의를 거절했다. 출판사의 단행본 출판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만약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녹색평론사는 아마 고생했을 것이다. 판이 커지면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짓을 하게 된다. 오롯하게 작은 출판사로 눈치 안보고 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잘 물리쳤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영리했다. 몇 년 후의 상황을 보면 안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권정생 선생 역시 그 제안을 거절했다. 주장은 이런 거였다. 아이들 책 고르는 것을 왜 방송국이 방해하나. 간결하고 핵심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이 있기 전부터 권 선생님을 존경해왔지만, 그 일 이후에는 진짜 이 양반이 늘 살아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수록 존경스러웠다."


김종철 교수와의 인터뷰를 끝낸 직후부터, 나는 <녹색평론>에서 출간된 책들을 내 나름대로 읽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 책들을 읽어가면서 내가 깨닫는 것은, 나 자신 역시 김종철 교수가 비판해 마지않았던 '근대주의'에 뿌리 깊게 감염된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근대적 발전주의를 아무런 고민 없이 수용해왔으며, 현실적으로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주의를 포기할 수 없으며, 농민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별다른 위기의식이 없는 도시형 지식인이었다.


동시에 나는 정직한 비관주의, 근원적 비관주의에서 애써 벗어나고자 하는 교언영색의 주인공이기도 했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어떤 시대에는 방법적으로 희망을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면해 있는 절망의 구조를 투명하게 응시하는 것이 훨씬 더 정직한 삶의 태도란 것을 김종철에게서 배웠다. 내년 봄이 되면 격월간 <녹색평론>은 통권 100호를 맞는다. 한국의 출판현실에서 희망이 아닌, 근원적 절망을 설파하는 잡지가 통권 100호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김종철의 근원적 비관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7.12.02 18:49 ⓒ 2007 OhmyNews
2007-12-17 11: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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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진정한 해방은

내가 날 해방시키는것.

난 나를 해방시켰다.

 

정희영은 이제 해방이다.

마음껏 누비길 바란다...

 

희영아!

미안하다....

니가 이토록 고뇌하며 혼자 버거워 하는걸...

내가 너무 무심했나보다.

널 무시하고

널 희생시키고

널 학대하고

결국 널 병들게해서 미안하다.

 

이지경에 이르도록 널 방치했으니

정말 미안허네...

 

이제부터라도

네 뫔 가는데로 살아보렴~!

후후...

평생을 니 맘대로 못살아봤으니

갑자기 어색하고 앞이 캄캄하겠지...

두눈 질끈감고 이를 악물고 해봐~!

니 마음대로...

말도 해보고

감정도 표현하고

거절도 하고

화도 내고

 

만나고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멋도 부리고

입고싶은 옷도 입고

 

네 주관대로

네 가치관대로

비위맞추지말구

무서워도 덤비는거여~!

이판사판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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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여사님의 [입양에 관한 고민...] 에 관련된 글.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났다.

하루하루 사는 게 싫었다. 세상을 증오했다.

어떻게 언청이로 태어났단 말인가.

 

학교에 들어가자 친구들이 그녀를 놀렸다.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무척 싫어하고 혐오한다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깨달았다.

입술은 모기싫게 일그러졌고, 코는 구부러졌으며, 이는 비뚤비뚤하게 났다.

또 말까지 더듬는 여자아이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부모조차 낯선 손님이 방문하면 그녀에게 "방에 들어가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넌 입이 왜 그러니?"

그녀는 어렸을 때 넘어져셔, 땅에 있는 유리조가겡 입술을 찔려 다쳤기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언청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견디기 쉬웠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확신하게 됐다.

가족외에는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좋아해줄 사람조차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2학년이 되자 그녀는 류선생님 반이 되었다.

류선생님은 아름답고, 따뜻하고,상냥한 선생님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아이는 없었다.

그녀와 류선생님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학년 아이들이 해마다 '귓속말 시험'이라는 것을 치렀다.

차례대로 앞으로 걸어나가 오른쪽 귀를 막으면, 왼쪽 귀에 선생님이 한마디씩

속삭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방금 들은 것을 큰소리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선천적으로 왼쪽 귀가 멀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굳이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더 놀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귓속말 시험'을 잘 치를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가장 마지막 차례였다.

아이들은 모두 '귓속말 시험'을 잘 마쳐서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녀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앞서 시험을 끝낸 아이들은 "하늘은 파란색이다"하거나

"너는 새 신발이 있니?" 같은 문장을 말했다.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왼쪽 귀를 류선생님께 향하고 오른손으로 귀를 꽉 막는 척했다.

그런 다음, 막았던 손을 살짝 들었다.

이렇게 하면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그녀는 숨을 죽인채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잠시 후, 선생님은 그녀의 귀에 입술을 바싹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따스한 햇살처럼 그녀의 마음을 비춰 주었다.

그 말은 그 동안 상처 받았던 어린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송두리째 변화 시켰다.

그때, 그녀의 또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선생님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은 그녀는 너무 놀라 꼼짝도 못하고

그만 얼어 붙어 버렸다.

그녀는 한참을 나무 인형처럼 서 있었다.

선생님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 말은 바로 이 한마디였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점점 커져 그녀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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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선...

이번 대선에 영 관심이 없었는데...

암튼 bbk인가 뭔가 덕분인지

나의 눈길을 끄고있다..

 

다들 자기가 원조라고들 하는데...

 

암만해도 별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저 tv 드라마나 게임보는 느낌이다.

누가 이길까나...

그 놈이 그놈인것도같구...

에잇...

 

정말로 우리는 대통령이 필요한걸까...

대통령이 나에게 무얼 해줄수 있단 말인가?

나역시 그에게 해줄게 없는디...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기면 그만인거지..

자기 목구멍은 자기가 채우면 되는거...

그게 주체적인거 아니겠나!

대통령이 누가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아니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온들

그 앞에가서 나 좀 잘살게 해달라고 손벌리고 싶지도않고...

되로 주고 말로 빼앗는 '자선사업'이나 근사한 '복지정책'에

그닥 의존하고 싶지도않고..

'그냥 남의 것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

(물론 바로 이 착취와 강간이 문제이지만....!)

후후...맘에드는 후보가 없다는 핑계인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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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벨문학 수상자 도리스 레싱

`시대의 반항아` 도리스 레싱의 삶과 문학 [연합]

`19-20세기 모든 문예사조를 아우르는 작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 출신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88)은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현대 영국 문학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에서 성장기를 보낸 레싱은 젊은 시절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왔다. 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다시는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전도되면서는 이혼의 아픔까지 경험했던 작가다.

그런 이채로운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해오도록 만들었다. 기성의 가치,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레싱이 평생 견지해온 일관된 태도였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레싱은 1919년 이란의 커만샤에서 태어났다. 24년, 다섯 살 나이로 가족을 따라 아프리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의 농장으로 이주했다. 정부 지원금과 융자를 받은 이주였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진흙으로 손수 집을 지어야 했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공부했고, 열다섯 살엔 집을 떠나 타이피스트, 전화 교환원 등으로 일했다.



  38년 공무원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이혼한 레싱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다. 레싱은 둘째 남편의 성(姓)이다. 49년 재혼에서 얻은 아들만 데리고 소설가를 꿈꾸며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그때 그의 수중엔 단돈 20파운드가 전부였다. 이듬해 그는 자전적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The Grass is Singing)』를 발표해 런던에서 큰 반향을 끌어낸다.

백인 농부의 아내와 흑인 하인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인종 간 갈등을 비판한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보듯 초기의 레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와 흑인에 대한 억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56년부터 남아공 입국이 거부되었다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이 무너지고 흑인 정부가 들어선 1995년에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또한 그는 1952년에 영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56년 헝가리 봉기를 계기로 탈당한 바 있는데, 이 무렵 그의 소설들은 진한 사회주의적 경향과 강렬한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북대 왕철(영문학) 교수는 “레싱은 영국인이지만 제3세계 작가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백인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레싱이 천착해온 주제는 그녀가 성장한 아프리카.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인종 간 불화, 착취, 문명 간 충돌과 갈등, 제국과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목격해야 했던 레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자기 부모의 삶을 근간으로 한 첫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49)가 바로 그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자연, 그 과정에서 황폐해가는 백인들의 심리적, 도덕적 공황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레싱 문학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금 노트북>(1962)이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적 업적이며 남녀 관계에 관한 20세기적 관점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레싱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하는 데에 부정적이다.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남녀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해명이다. <황금 노트북>은 자서전적 (논)픽션과 노트, 수기, 일기 등이 다양하게 오가는가 하면 메타소설적 구성을 짜는 등 현란한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평민사에서 한때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으며, 도서출판 ‘뿔’에서 이달 중에 다시 나올 예정이다.



◆다양한 작품세계=레싱의 대표작이라면 『황금 노트북 (The Golden Notebook·1962) 』이다. 세계 페미니즘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른 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한 여류작가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터득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로 모두 5부로 구성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은 내게 여전히 가장 교훈적인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 소설은 2002년 세계 100대 작품에 선정됐다. 노르웨이의 노벨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 개국 출신 유명 작가 1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이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당대의 거장이다. 2005년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세계 100대 작’으로 선정됐고, 90년대 중반 중국에선 재판 8만 권이 하루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레싱은 특히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의 충돌과 갈등을 그려낸 '황금노트북'(1962)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 문학의 정전으로 꼽힌다.

혁명이나 전쟁,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인종, 계급, 성, 제도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들의 자아를 괴롭히는 가치관의 혼돈, 여기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무력감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스웨덴 한림원도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발표하며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 시인"이라며 특히 '황금 노트북'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유제분 부산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여성의 일상이 바로 소설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표작은 1988년 발표한 '다섯째 아이'. 해외에서는 이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추구해나가는 두 부부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괴멸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인간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페미니즘도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었다. 수없이 변화하는 주제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이 곧 사회적 해방 또는 정의와 연결된다는 신념"이었다.

레싱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과 달랐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영국에 거주하던 레싱이 짐바브웨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그는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한 달에 고작 70∼80달러로 연명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무시하고 그들은 서양식 교육방법 따위나 가르치고 있었다. 레싱은 그건 “문화제국주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백인이나 중산층 여성들의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진정 변해야 할 소외계층의 삶은 예전과 다름없다.”-자서전 『나의 속마음』(원제 Under My Skin, 1994)

1950년대 '앵그리 영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레싱은 페미니즘과 정치에 대한 강력한 견해로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작품 '황금 노트북'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레싱은 페미니스트 운동과 거리를 두고 살았으며, 여성들만 사는 세상에 살기를 원치는 않는다고 말했다. 레싱은 두 번 결혼했으나 곧 이혼했고, 레싱은 두 번째 남편의 성을 아직도 쓰고있다.

레싱은 여든이 넘어서도 창작 활동의 끊을 놓지 않은 타고난 작가로 꼽힌다. 두 권의 자서전 '내 피부 아래'와 '그림자 속을 걷다'는 자서전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82세였던 2002년 소설 '가장 달콤한 꿈'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서머싯 몸 상(1956)을 비롯해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으며 그 같은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91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유 교수는 "레싱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늦게 수상한 감이 없잖아 있다"며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 문예사조를 아우르고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런던 스케치'를 국내 번역해 소개한 서숙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도 "레싱은 세계문학의 거목과 같은 작가며 강력한 작가"라며 "백인으로 식민지에 살며 지켜본 인종차별,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느낀 인간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작품에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용인대 영어과 강의교수인 정소영씨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소설에서 사실주의적 작품에 천착했던 작가"라며 "특히 '골든노트북'에는 인간의 무력함과 세계의 폭력성 등이 잘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분명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로 꼽혀왔다. 현재 국내 소개된 작품으로는 '마사 퀘스트', '황금 노트북', '다섯째 아이', '풀잎은 노래한다' 등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레싱의 대표적 작품들



 ◆황금노트북(The Golden Notebook)



 도리스 레싱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테두리 소설과 주인공이 쓰는 4권의 일기가 교대로 전개되며, ‘소설 속에서 소설 쓰기’라는 메타픽션적 구성을 취한다. 주인공인 여성작가 안나는 자신의 여러 역할(사회주의자·이혼녀·어머니·연인…)사이에서 갈등을 겪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997년 평민사에서 출간한 한국어판은 현재 절판상태. 출판사 뿔에서 새로 번역, 10월 중 출간할 계획이다.



 ◆다섯째 아이(The Fifth Child)



 아주 정상적인 두 남녀가 만나 전통적 의미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들의 ‘다섯째 아이’로 이상한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가 ‘이상적인’ 가정을 파괴해가는 과정을 간결하고 긴박한 문체로 그리면서 레싱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9년 민음사 출간.



 ◆런던스케치(London Observed: Stories & Sketches)



 런던의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그린 열 여덟 편의 단편집. 좁은 도로에서 마주 선 채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두 대의 자동차와 그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다른 자동차들을 그린 ‘원칙’등을 비롯해 현대 도시인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2003년 민음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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