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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벨문학 수상자 도리스 레싱

`시대의 반항아` 도리스 레싱의 삶과 문학 [연합]

`19-20세기 모든 문예사조를 아우르는 작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 출신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88)은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현대 영국 문학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에서 성장기를 보낸 레싱은 젊은 시절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왔다. 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다시는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전도되면서는 이혼의 아픔까지 경험했던 작가다.

그런 이채로운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해오도록 만들었다. 기성의 가치,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레싱이 평생 견지해온 일관된 태도였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레싱은 1919년 이란의 커만샤에서 태어났다. 24년, 다섯 살 나이로 가족을 따라 아프리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의 농장으로 이주했다. 정부 지원금과 융자를 받은 이주였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진흙으로 손수 집을 지어야 했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으로 공부했고, 열다섯 살엔 집을 떠나 타이피스트, 전화 교환원 등으로 일했다.



  38년 공무원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이혼한 레싱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다. 레싱은 둘째 남편의 성(姓)이다. 49년 재혼에서 얻은 아들만 데리고 소설가를 꿈꾸며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그때 그의 수중엔 단돈 20파운드가 전부였다. 이듬해 그는 자전적 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The Grass is Singing)』를 발표해 런던에서 큰 반향을 끌어낸다.

백인 농부의 아내와 흑인 하인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인종 간 갈등을 비판한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보듯 초기의 레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와 흑인에 대한 억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1956년부터 남아공 입국이 거부되었다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이 무너지고 흑인 정부가 들어선 1995년에야 입국이 허용되었다. 또한 그는 1952년에 영국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56년 헝가리 봉기를 계기로 탈당한 바 있는데, 이 무렵 그의 소설들은 진한 사회주의적 경향과 강렬한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북대 왕철(영문학) 교수는 “레싱은 영국인이지만 제3세계 작가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백인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레싱이 천착해온 주제는 그녀가 성장한 아프리카.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인종 간 불화, 착취, 문명 간 충돌과 갈등, 제국과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목격해야 했던 레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자기 부모의 삶을 근간으로 한 첫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49)가 바로 그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자연, 그 과정에서 황폐해가는 백인들의 심리적, 도덕적 공황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레싱 문학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금 노트북>(1962)이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적 업적이며 남녀 관계에 관한 20세기적 관점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레싱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규정하는 데에 부정적이다.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남녀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해명이다. <황금 노트북>은 자서전적 (논)픽션과 노트, 수기, 일기 등이 다양하게 오가는가 하면 메타소설적 구성을 짜는 등 현란한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평민사에서 한때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으며, 도서출판 ‘뿔’에서 이달 중에 다시 나올 예정이다.



◆다양한 작품세계=레싱의 대표작이라면 『황금 노트북 (The Golden Notebook·1962) 』이다. 세계 페미니즘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른 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한 여류작가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터득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로 모두 5부로 구성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은 내게 여전히 가장 교훈적인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 소설은 2002년 세계 100대 작품에 선정됐다. 노르웨이의 노벨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 개국 출신 유명 작가 1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이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당대의 거장이다. 2005년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세계 100대 작’으로 선정됐고, 90년대 중반 중국에선 재판 8만 권이 하루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레싱은 특히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의 충돌과 갈등을 그려낸 '황금노트북'(1962)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 문학의 정전으로 꼽힌다.

혁명이나 전쟁,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인종, 계급, 성, 제도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들의 자아를 괴롭히는 가치관의 혼돈, 여기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무력감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스웨덴 한림원도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발표하며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 시인"이라며 특히 '황금 노트북'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유제분 부산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여성의 일상이 바로 소설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표작은 1988년 발표한 '다섯째 아이'. 해외에서는 이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추구해나가는 두 부부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괴멸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인간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페미니즘도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었다. 수없이 변화하는 주제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이 곧 사회적 해방 또는 정의와 연결된다는 신념"이었다.

레싱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과 달랐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영국에 거주하던 레싱이 짐바브웨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그는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한 달에 고작 70∼80달러로 연명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무시하고 그들은 서양식 교육방법 따위나 가르치고 있었다. 레싱은 그건 “문화제국주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백인이나 중산층 여성들의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진정 변해야 할 소외계층의 삶은 예전과 다름없다.”-자서전 『나의 속마음』(원제 Under My Skin, 1994)

1950년대 '앵그리 영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레싱은 페미니즘과 정치에 대한 강력한 견해로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작품 '황금 노트북'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러나 레싱은 페미니스트 운동과 거리를 두고 살았으며, 여성들만 사는 세상에 살기를 원치는 않는다고 말했다. 레싱은 두 번 결혼했으나 곧 이혼했고, 레싱은 두 번째 남편의 성을 아직도 쓰고있다.

레싱은 여든이 넘어서도 창작 활동의 끊을 놓지 않은 타고난 작가로 꼽힌다. 두 권의 자서전 '내 피부 아래'와 '그림자 속을 걷다'는 자서전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82세였던 2002년 소설 '가장 달콤한 꿈'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서머싯 몸 상(1956)을 비롯해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으며 그 같은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91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유 교수는 "레싱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늦게 수상한 감이 없잖아 있다"며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 문예사조를 아우르고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런던 스케치'를 국내 번역해 소개한 서숙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도 "레싱은 세계문학의 거목과 같은 작가며 강력한 작가"라며 "백인으로 식민지에 살며 지켜본 인종차별,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느낀 인간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작품에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용인대 영어과 강의교수인 정소영씨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소설에서 사실주의적 작품에 천착했던 작가"라며 "특히 '골든노트북'에는 인간의 무력함과 세계의 폭력성 등이 잘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분명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로 꼽혀왔다. 현재 국내 소개된 작품으로는 '마사 퀘스트', '황금 노트북', '다섯째 아이', '풀잎은 노래한다' 등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레싱의 대표적 작품들



 ◆황금노트북(The Golden Notebook)



 도리스 레싱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테두리 소설과 주인공이 쓰는 4권의 일기가 교대로 전개되며, ‘소설 속에서 소설 쓰기’라는 메타픽션적 구성을 취한다. 주인공인 여성작가 안나는 자신의 여러 역할(사회주의자·이혼녀·어머니·연인…)사이에서 갈등을 겪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997년 평민사에서 출간한 한국어판은 현재 절판상태. 출판사 뿔에서 새로 번역, 10월 중 출간할 계획이다.



 ◆다섯째 아이(The Fifth Child)



 아주 정상적인 두 남녀가 만나 전통적 의미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들의 ‘다섯째 아이’로 이상한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가 ‘이상적인’ 가정을 파괴해가는 과정을 간결하고 긴박한 문체로 그리면서 레싱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9년 민음사 출간.



 ◆런던스케치(London Observed: Stories & Sketches)



 런던의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그린 열 여덟 편의 단편집. 좁은 도로에서 마주 선 채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두 대의 자동차와 그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다른 자동차들을 그린 ‘원칙’등을 비롯해 현대 도시인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2003년 민음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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