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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월에 첫 시작이 굉장히 우울하다... 김진숙 동지는 300일이라는 시간동안 온몸으로 이땅에 노동자와 먼저 떠나보낸 열사들을 위해 자본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제 발로 자본의 노예가 되어 살고있다.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어렵고 뭔가 글다운 글을? 써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지 않고 주위에 친구들은 너도 나도 그저 맹목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에 운동과 학업 혹은 취업 가운데 고민과 방황을 하는 친구들... 뭐 어느 것 하나 유쾌하지 않다.

 

 어차피 운동과 평범한 삶? 그저 그런 무난한 삶?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는 삶?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지만 운동을 잘 한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없지만 이왕에 하는 거 많은 사람에게 치열하게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라 인정받고 나의 글이 실천이 활동이 많은 이들에 공감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상상력이 되었으면 하지만 여전히 미천한 글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뭐 노력도 안한다. 이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말뿐인지라... 딱 거지근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슬프다.

 

 매번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내용이 어째 하나 같이 똑같은지... 이렇게 매번 자본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에 더나아가 잘 굴러가라고 기름칠까지 하고 있는 나의 일상이 무섭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거 아는데 벗어나지 못하겠다. 자본이 따뜻하거나 포근하지는 않은데 이쪽도 따뜻하지는 않은 것 같고...

 

 11월은 전태일이다. 전태일 열사가 이 땅에 노동자를 위해 자신에 몸을 태웠던 그 날이다. 그리고 난 이쯤 태어났다. 곧 나의 생일은 전태일 열사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역사를 쓴 날이다. 우리에 운동이 종교는 아니기에 굳이 특별한 의미를 덕지덕지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스무살 전태일 평전을 읽은 이후 '나'의 생일은 곧 전태일이되었다.

 

 근로기준법을 읽어줄 대학생 친구가 되고자 했던 나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배웠고 타협하는 그 순간에 달콤함이 얼마나 강렬한지도 조금은 아는 것 같다. 물론 이 달콤함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내가 달콤하기 위해 누군가는 안보이는 곳에서 평생을 쓰디쓴 맛으로 살게될 것이라는 것도 조금은 안다. 앞으로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읽어주고 함께 행복하고 유쾌하게 운동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11월에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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