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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의 병원의 불빛이 새오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태드 켠 한 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을 똑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버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지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 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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