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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어제는 메이데이 출판에서 한 달에 한번 갖는 독자모임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하기 앞서 독자모임 구성원들이 한 달 동안 나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해 준 한 소설절에 대해 나눠보는 시간이었다. 이 때 화자됐던 시다.

 

 대추 한 알... 그렇다 대추 한 알은 어쩌면 별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대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골 문 앞 나무에 열려있는 대추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거나 한 입 베어물고 논두렁으로 버리던 나였다.

 

 그런데 어제 얘기되었던 대추 한 알 시를 듣는데... 참. 그래 내가 무시하고 버리고 하찮게 여겼던 저 대추도 저절로 익어서 붉어진게 아닌데. 온갖 풍파와 고독을 겪어낸 고귀한 결실일텐데...

 

 저들은 나처럼 대추의 의미를 모르듯 노동자, 소수자의 의미를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면서 외면한다. 왜냐고? 그냥 버려도 되는거다. 그 중 시뻘건 대추 몇몇은 '권리'를 주장하고 덤벼보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일단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이 땅 어딘가에 버린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그 곳에 버리면 그만이다.

 

  학교의 학사 구조조정에 맞서서 싸우고자 하는 '나'도 '우리'도 대추 한 알처럼 여전히 소외받고 버려진다. 안타깝게도 학교가 버리는 것도 모자라 같은 대추 즉, 학생회 사회에서도 재미없는 이름에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나'를 따돌리고 버린다. 그래도 같은 대추라고 얘기는 꼬박 꼬박 들어준다. 결국 버리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추 한 알이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결실을 맺는 것 처럼. 나도 이렇게 버티다보면 결실을 이룰 때가 오겠지. 꼭 붉게 익지 않더라도 푸르스름한채 풍파에 떨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이제 곧 설이다. 진짜 한 살 더먹는다. 나이를 먹는 만큼 내 머리색깔과 점퍼색깔처럼 붉게 익어가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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