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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2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멍멍희
  2. 2009/01/03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제1부 반유대주의만
    멍멍희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인간의 얼굴은, 그리고 눈은 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의 연설문보다 더한 웅변을 담고 있다. (80)

 

내가 엄마와 우리 식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고 그들이 자신이 속물들임을 위장하기 위해 흔히 쓰는, 내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는 표정으로 문화예술가를 자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은 뼛속까지 외롭고 스스로 홀로 앉은 밤이면 가여운 것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위장할 기회와 도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실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늘 박탈당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 (118~119)

 

"나는 저주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게 없었죠……모두 죽이고 나도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했죠…"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에게 한 번도 잘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오늘 수녀님 먼 길 오시느라 넘어지셔서 이 사나운 날씨에 피를 흘리시는 걸 보니까, 가슴이 아팠어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했죠. 이런 감정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어요……없었어요.

…"그런데 수녀님……실은, 저는……이런 감정이 너무나 두려워요." (153)

 

그런데 유정아,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160)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218)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248)

 

너는 뜨거운 사람이야,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하지만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된다. (305)

 

 

 

 

 

지독하게 아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깊디 깊은 통찰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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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제1부 반유대주의만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1 』, 이진우 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전체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 이진우 (29)
운동의 힘은 인간의 행동과 의지로 발생하는 가장 강력한 힘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실존을 이 운동에 맡길 때 우리의 자유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
 
제1부 반유대주의
 
제1장 상식에 대한 만행
 
-반유대주의는 당시 유행하던 민족주의와 외국인혐오증과 관련이 없다. 오히려 민족주의 쇠퇴 이후에 반유대주의가 대두됨.
-유대인들은 힘을 잃고 재산만 남았을 때 공격받음. (이건 그저 분위기 조성일 뿐)
희생양 이론 : 누구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영구적 반유대주의 : 유대인 박해는 자연스럽다.(희생자 선택의 자의성)
이 두 가지 이론 모두 현실 도피, 책임회피이다.
-근대의 지배 관행 및 지배 형태와 유사. 이게 포인트(91)
-반유대주의는 국민국가의 발전이라는 틀과 같이 고찰되어야 하며, 유대인이 국가, 사회와 맺었던 관계. 이것이 중요하다.
 
제2장 유대인, 국민 국가,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발생
 
1. 해방의 이중성과 유대인 국립은행가
정치적 법적 평등
국가 사업 확장의 특권적 집단
 
유대인은 “평등인 동시에 특권”(97)
“옛 유대인 자율성 파괴인 동시에 사회내에서 분리된 집단으로서 유대인의 의식적 보존”
이것은 계몽시대의 탄생과 일치.
 
-봉건사회의 몰락으로 이제 개인의 지위는 국가나 국가 기구에서 차지하는 위치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에 의해 규정지어지는데(계급 사회) 유대인들은 유일한 예외였다 “무계급”
 
(99) 유대인에 대한 국가의 이해관계와 유대인 집단의 이해관계가 일치.
(100) <유럽 국민국가와 유럽 유대인이 함께 겪었던 부상과 몰락의 도식적인 윤곽>
17, 18 세기 : 궁정유대인 돈 많이 벌고 자신들이 잘 나간다는 걸 선언도 했다
18세기말 : 국민국가는 사회의 특수한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전체 국가의 유일하고 진정한 대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재정사업, 국영사업을 할 필요가 생기면서 부르주아와 갈등(그들은 비생산적 경영하려 하지 않음) 했지만 유대인은 기꺼이 재정지원을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도 잘나가는 유대인과 잘 못나가는 유대인의 구분이 있었다.
19세기 제국주의 : 유대인 지위 하락, 그러나 유대인의 국제주의가 중요해짐
 
-유대인들은 국제적인 존재, 자문가. 국가적 동기에 묶여있지 않음. 그러나 이것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 타협 가능성 있는 시대만 유용. 전쟁의 목표가 적의 완전한 분쇄가 되면서 유대인 사용가치가 없어진다.
“유대인이 여러 상이한 민족에 속한 유럽인들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교량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112)
-유대인은 권력, 정치에 무지했다. 국가와 사회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가=정당이라는 잘못된 인식.
국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사회집단이 유대인, 즉 국가 자체와 갈등에 빠지게 된 사회계급은 다 반유대적이 되었다.(116)
 
2. 초기의 반유대주의
 
폴란드, 루마니아 - 특수한 경우 잠깐 설명하고 넘어감
1807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후 프로이센
국민국가로 이행하면서 유대인의 특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시대, 가장 타격받은 귀족들이 반유대주의를 전개
귀족-유대인은 공통적인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귀족은 국가에 대항하면서 유대인을 국가와 동일시, 중상층도 ‘타고난 인격’으로 유대인 비판.
 
유대인이 귀족으로부터 받은 비난은 사실상 중산층에게로 갔어야 하는 것이었다.
->18세기 귀족이 영향력 회복하면서 반유대주의는 온건한 차별 not political 로 바뀜
쓸모있는 유대인 vs 쓸모없는 유대인의 차별이 시작.
(129) 권력을 가진 유대인과 국가 사이의 이해관계의 조화 성립
-그리고 과격한 자유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도 등장
 
정리1. 그러나 이 귀족 반유대주의, 과격 반유대주의는 효과가 미미하고 생명이 오래가지 않았다.
정리2. 근대적 반유대주의의 시작은 19세기 후반 마지막 30년에 이르러서이다.
 
3. 최초의 반유대주의 정당들 (in 19세기의 마지막 20년)
 
-사회 경제적 요소
일련의 금융스캔들과 사기사건에서 피해를 본 프티부르주아들. 그들에게 은행가(거의 대부분이 유대인)는 남의 불행과 곤경의 착취자로 비춰지는데, 하류 중산계급의 좌익운동, 은행자본에 대항하는 성전은 모두 반유대적(134)
-정치적요소
은행가로서 유대인은 국채의 발행에 의존했는데 이는 하류중산계급(사소한 대출에 의존하는)에게 안 그래도 미움받는 유대인들이 정치권력의 길을 도모한다고 생각하게끔 함.
-> 이후 반유대주의 정당 출현
 
반유대주의 정당은 모든 정당을 넘어서는 정당!
-직접적으로 국가를 지배하기를 원함
특징 1. 국민국가라는 정치유형의 파괴가 목적.
(137)“국민국가 체제의 폐지를 위한 도구”
(138)“반유대주의자는 뒤에서 정부를 조종하는 비밀세력으로 여겨지던 유대인을 공격함으로써 드러내놓고 정부 자체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 -그래서 제국주의 집단보다 국내정치에서 이점 획득
특징2. 초국가적 조직이다.
국가에 대한 통치권을 넘어 범유럽정부를 구상한다!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저긍로, 그리고 유대인문제에 대해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이들이 급부상.
-이들은 곧 다시 망했지만, 이 모든 미해결 상태의 정치현안이 나중에 폭발하게 된다.
+국가조직이 새로운 경제적 도전에 대응 잘 못한다는 인식 확산
(140)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적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
 
4. 좌파 반유대주의
 
오스트리아의 예와 프랑스의 예는 정반대이다
 
오스트리아의 예
-유대인이 국가 기구에서 가장 결정적 역할
-오스트리아의 반유대투쟁은 훨씬 격렬, 국가에 대한 독일민족의 적대감 상승(주목할만한점)
-싀싀러(독일자유주의정당)의 문제제기 - 오스트리아 반유대주의 운동 start
-> 범게르만주의로 발전(나치즘 영향 지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연관있기 때문! 빡세다!
 
프랑스의 예
-국민국가 특수조건 내에서 반유대주의의 정점 ->드레퓌스사건
19세기적 틀 안에 있다 - 20세기와 연관 x
이유: 프랑스 반유대주의 정당은 초국가적 목표가 없고 “국민국가의 정당”이며 제국주의 정당도 아님.
-프랑스 반유대주의는 오래되었다(149) +외국인 공포증
전혀 안 빡세고.. 파시즘과 연관 없음 (Question 154)
 
5. 안전의 황금시대
 
-20년간 안전..
경제확장에 혈안이 되어 정치문제 뒷전..
“모든 것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연장하고 있었다.”(156)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가 끝난 줄 알았다.
이제 과거와 같은 국가와의 연결을 줄이고 독자적 사업 시작..
직업구조 변동 ->문화영역으로..
유대인 지식인 탄생. 유대인이 유명해지기도.
반유대주의 모든 조건 없어짐..반유대주의가 토대를 상실, 반유대주의의 정치적 이유가 상실됨 -> 사기꾼과 미친 사람의 반쪽 진리 + 미신으로 변한다. 이제 사회적 측면을 봐야 한다 (다음장)
 
제3장 유대인과 사회
 
조건의 평등 -> 유대인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함.
정치운동의 성장
 
1. 버림받은 하층민과 벼락부자 사이에서
 
해방이 되면서 ‘버림받은 하층민’과 ‘벼락부자’의 차이가 없어지고 예외 유대인도 보통유대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더욱더 개인이 노력해야 한다. 그 결과 노예근성과 양심의 가책 -> 후에 생활양식화
유대인은 ‘새로운 인류이 표본’ - 그래서 받아들여짐. 처음부터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이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
대부분의 보통 유대인 - 소수의 ‘예외유대인’
 
2. 힘센 마법사 (소수의 예외유대인의 예)
 
‘벤자민 디즈레일리’
동화된 유대인 가정 출신 - 침례교도
그러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출생의 ‘특이함’ 강조
보편적 평등의 시대라는 조건에 무지하고 유대인 역할 과대평가
->자신의 순수함과 진실성으로 나타남
(188) 유대인의 장점만 살려 출세함
-영국에서 부르주아의 돈에 맞서 ‘며예’를 유지하기를 원했던 귀족계급은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디즈레일리는 자신의 “순종혈통”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동물적 인간의 우월성 강조.
(191) 유대교와 유대민족에 속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특수한 종교, 민족성, 특정기억, 희망에서 유대계 지식인에게는 그저 ‘선민의식’만 남는 것으로 , 단순한 출생의 사실로 변질.
->성숙한 인종이론 생산!
ex) “자연이 부여한 본성적 귀족” - 사회적 열등감과의 투쟁
이것은 동화된 유대인의 특수한 세속화가 산출한 부산물
유대교의 세속화에서 메시아사상 -> 유대인 쇼비니즘
선민개념이 유대적 특성의 본질로 변한다
 
3. 악과 범죄 사이에서
 
(203) “법적, 정치적 기관이 사회와 분리되지 않아서 사회적 기준이 그 안에 침투해 들어가 정치적 법적 규칙이 되는” 사회
-‘유대인’이라는 ‘악덕’이 미친 영향
(205) 사회는 1. 유대인과 성도착자의 매력을 발견한 생제르맹 지역 살롱 2. 유대인에게 죽음을 이라고 외치는 폭민. 으로 나누어졌으나 이 둘의 기본적인 인식은 동일하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공유한다는 점
(208) “유대인다움”(악덕)의 심리적 속성을 만든 사람들. 유대인의 존재 - 범죄
-드레퓌스 사건은 잔인성과 폭력성에서 반유대주의의 사회적 요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제4장 드레퓌스 사건
 
1. 사건의 진상
드레퓌스 사건은 법적으로 완전히 종결되지 못한 채 끝남
-19세기의 전형적인 재판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어떤 국가도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할 정도로 ‘근대적’이지 못했다.”(218)
20세기에 의미가 커진 드레퓌스 사건의 두요소
1. 유대인에 대한 증오
2. 공화정 자체, 즉 의회와 국가 기구에 대한 의혹 (220)
-프랑스를 몰락으로 내몬 것은 진정한 드레퓌스파가 없어서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과 정의가 공화정의 형태로 수호되고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사람이 없었다.
 
2. 제3공화국과 프랑스 유대인
파나마 스캔들 - 추악한 횡령사건
폭로 내용: 의원과 공무원이 사업가가 되었다. 사기업과 국가기관을 연결해준 중개인이 거의 유대인이었다.
1881년 이후 부패가 만연.
-부패할 대로 부패한 체제에 기생충처럼 유대인 생존.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을 때 희생양이 됨.
-그러나 체제의 부패는 유대인의 도움 없이 시작된 것임.
반유대주의자는 그저 유대인을 비난하는 새로운 민족감정을 만들어냄
 
3. 공화국에 저항하는 군대와 성직자
그 당시 군대는 국가에 예속되지 않은 외부 집단
->가톨릭계와 결탁
가톨릭계는 공화정과 민주주의 치하에서 모든 질서와 안정, 정치적 의지가 상실되는 시기에 교회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대중성을 누림.
-가톨릭은 예수회와 연계
한편 이 시기 소수의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 귀족집단 속으로 진입. 드레퓌스도 여기 포함
순조롭게 상류사회 진출했으나 이단을 거부하는 예수회와 충돌
-군대 내에서 자리잡은 유대인들에 대한 일상적 적대감 만연
-드레퓌스는 참모본부에 예속된 최초의 유대인. 구제받으려면 공화주의 관점을 수락해야 했으나 은밀한 전술 - 정치가에게 돈 뿌리기만 했음. 유명세 테러 받을까봐.
‘기회주의자-성직자간의 투쟁’으로 비침
 
4. 국민과 폭민
“제3공화국의 상류사회와 정치가는 일련의 스캔들과 공적 사기를 통해 프랑스 폭민을 탄생시켰다.”(242~3)
-폭민의 눈에 자신들이 증오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실례가 유대인이었다.
폭민은 사회, 의회를 증오하는 세력. 계급의 낙오자들(242)
심지어 지식인과 유댕니들도 반유대정서 가짐
“유대인에게 죽음을”
폭민조직, 영웅 숭배 만연(250)
 
5. 유대인과 드레퓌스파
해방유대인들은 어전히 과거의 하층민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함 ->그래서 “사회적 속물근성과 큰 사업, 그리고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이윤 기회의 무거운 중량 아래 정치적 열정이 억눌려 있는 그런 사회 집단 속으로 동화”됐고 이런 경향이 불러온 반감은 가난하고 동화되지 못한 이주 동포들에게 돌림“ - ”상류사회가 자신들에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전술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동구 유대인과 관계를 끊는 고통을 감수했다“ (259)
-반유대주의를 현실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함. 투쟁을 겁내며 물러섬.
 
6. 사면과 그 의미
드레퓌스 사건은 희극...
-가톨릭 정치적 영향력 종식
-군대 정치적 영향력 종식
-성직자 반유대주의 종말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가톨릭주의 정치적 장에서 추방
시온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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