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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2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멍멍희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인간의 얼굴은, 그리고 눈은 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의 연설문보다 더한 웅변을 담고 있다. (80)

 

내가 엄마와 우리 식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고 그들이 자신이 속물들임을 위장하기 위해 흔히 쓰는, 내게 돈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는 표정으로 문화예술가를 자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은 뼛속까지 외롭고 스스로 홀로 앉은 밤이면 가여운 것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위장할 기회와 도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실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늘 박탈당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 (118~119)

 

"나는 저주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게 없었죠……모두 죽이고 나도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했죠…"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에게 한 번도 잘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오늘 수녀님 먼 길 오시느라 넘어지셔서 이 사나운 날씨에 피를 흘리시는 걸 보니까, 가슴이 아팠어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했죠. 이런 감정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어요……없었어요.

…"그런데 수녀님……실은, 저는……이런 감정이 너무나 두려워요." (153)

 

그런데 유정아,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160)

 

그즈음 나는 어떤 사람도 행복의 나라나 불행의 나라 국경선 안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218)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248)

 

너는 뜨거운 사람이야,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하지만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된다. (305)

 

 

 

 

 

지독하게 아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깊디 깊은 통찰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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