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이

2010/02/18 17:25 성인여성

[74호]도마 위의 야오이
(모래 / 언니네트워크 편집팀 , jang-ie@hanmail.net)
 
 
많은 사람들이 야오이에 대해서 뻔하다고 말한다. 그저 검열 때문에 사랑받는 대상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꿨을 뿐, 그 내용과 거기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쾌락은 기존의 이성애 로맨스물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포르노 또는 로맨스

야오이는 여성들을 위한 로맨스물이면서 포르노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로맨스물도 포르노물도 아니다.

전형적인 이성애 포르노는 남성을 성적 주체로 내세우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복속시킨다. 그 안에서 성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과 종속의 서사이다. 이에 반해 전형적인 이성애 로맨스물은 순진한 여주인공,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주인공,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랑의 장애물 등을 내새우면서, 성별화된 로맨스 각본 안에 내재된 권력관계를 생략하고자 애쓴다. 10대 소녀들이 로맨스를 보고 10대 소년들이 포르노를 보는 현상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문화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금기와 승인이 교차하는 성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사이에서 야오이텍스트들은 로맨스도 포르노도 아니지만, 동시에 이 둘의 이종교배의 산물로서 역설적인 위치에 있다. 야오이텍스트는 이성애 포르노 이상으로 직접적으로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그리며, 성적 대상이 되는 수 캐릭터를 가혹하게 몰아간다. 야오이텍스트 속의 성관계는 자주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 그려지지만, 그 폭력성은 항상 사랑이란 이름으로 허용된다. 대부분의 야오이텍스트에서 사랑은 이런 폭력성을 승인할 만큼 절대적이고 숭고하다. 야오이는 로맨스의 사랑지상주의와 포르노의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섹슈얼리티를 동시에 계승한다.

사실 포르노 속의 권력적인 잔인한 에로티시즘은 부드럽고 상호적인 로맨티시즘은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이다. 포르노의 난폭한 남성주인공과 로맨스의 순진한 여성주인공은 영원히 만나지 않겠지만, 사회는 포르노를 보고 성장한 남성과 로맨스를 보고 성장한 여성을 주저없이 짝짓는다. 그 안에서 로맨틱한 상상력이 우리 사회의 공식적이고 규범적인 이데올로기로써 결혼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사랑을 설파하는 반면, 섹시하거나 에로틱한 것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많은 부분 포르노에 빚지고 있다. 또한 여성들은 항상 ‘성폭력을 조심해라, 몸 단속해라,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저 남자가 너를 음흉하게 쳐다본다’ 등등 그 남성들의 성적 공격성을 의식하고 각인하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로맨스를 보고 성장한 여성들은 포르노적 섹슈얼리티에 대해 무지하라고 교육받지만, 그녀들의 일상 역시도 포르노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때 포르노적인 상상력이란 여성의 관할 범위 밖이지만, 항상 위협으로써 여성의 일상을 주조하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야오이의 남성동성애는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을 숭배하면서 폭력적인 섹슈얼리티를 탐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오히려 여성이 폭력적인 섹슈얼리티에 위협당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즐기고 만들어내기조차 한다는 점에서 야오이와 동인녀 세계는 불편한 동시에 매력적인 현장이다.


남성숭배 또는 조롱

야오이는 ‘멋진 남자’에 대한 사회적인 숭배를 반복하고 재생산한다. 멋지고 터프한 남성성, 근육, 남자들끼리의 의리 등은 과장되게 탐미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동시에 야오이는 이성애중심적인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남성상을 정면에서 부정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남성이 되는 과정은 끊임없이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남성을 여성이나 동성애자로 취급하는 것은 그의 남성성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면서 심각한 사회적인 위협이 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항상 침범당할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항상 그 자체로 강력하고 안전하고 오히려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안에서 남성 섹슈얼리티가 침범당할 수 있다거나 동성애 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성 당사자에게조차 철저하게 망각되어야만 한다. 군대 내 남성 성폭력은 공공연하게 일어나지만 공식적으로 제기되기까지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또한 투표, 월드컵, 채용시험, 군가산점 논쟁 등은 남성들이 얼마나 함께 일할 파트너로 남성을 선호하고, 되도록 남성에게 투표하며, 남성 일반의 이익에 예민하고, 남성들과의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성애자 남성을 여자나 동성애자라고 일컫는 것 자체는 이미 치명적인 모욕이자 흠집이 되고, 상상해서도 안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야오이는 공에게 침범당하는 수를 통해 남성 섹슈얼리티를 취약한 성적 대상으로 그린다. 특히 동인지나 팬픽 같은 야오이 2차 텍스트들은 지배적인 이성애 남성상을 여성들이 상상적으로 동성성애화하면서, 남성 섹슈얼리티의 취약성을 강조하고 이 취약성을 자유롭게 관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동인녀들은 절대 의심되어서는 안되는 이성애 남성상의 핵심적인 부분을 집단적이고 반복적으로 부정하면서, 이 이성애 남성상을 소비한다. 이것은 왜 대부분의 이성애자 남성들이 야오이에 질색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물론 수가 취약한 성적 대상이 되는 것은, 수의 짝이 여성이 아니라 더 강력한 마초 남성상인 공이기 때문이다. 동인녀들은 남성 섹슈얼리티의 강력함과 폭력성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강력함과 폭력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그 난폭한 섹슈얼리티를 남성독자나 작가만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한다. 야오이는 포르노물이나 액션어드벤처물 못지 않게 남성의 남근적 힘을 전지전능하게 그린다. 그러나 그 남근적 힘의 대상은 남성이 되고 그 재현을 즐기는 것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노말 또는 퀴어

동인녀는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남성을 욕망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동인녀들이 스스로를 헤테로라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동인녀들은 스스로를 ‘노말’하지 않은, 이상한(퀴어한) 존재로 느낀다.

동인녀가 된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야오이 만화 한권을 재밌게 보는 걸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동인녀가 된다는 건 장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야오이를 즐긴다는 것이다. 곧 남자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그 남자의 옆에 애인으로 서는 장면이 아니라, 그 남자가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섹스하는 장면이라는 얘기다. 동인녀 위치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주체로 자신을 경험하고 이해하게 한다. 남자들이 질색을 하는 남성동성애를 관음적으로 즐기는 주체로 자각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노말’하지 않다고 느낀다. 동인녀는 여전히 남자를 좋아하지만, 그 방식은 전형적인 이성애 여성의 위치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남성의 시선에 취약한 성적 대상이나 남성영웅의 연약한 보조자가 아니라, 이들은 스스로를 남성을 당황하게 하고 질색하게 하는 관음증자로 자각하면서 남자를 욕망하는 색다른 위치에 선다. 이들은 기존의 노말사회가 권하는 이성애 여성상 밖으로 걸어나온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항거하거나 고통스럽게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 떠들면서 자신이 욕망하는 새로운 방식을 그저 쫓으면서 말이다.

많은 야오이 텍스트들이 그 적나라한 폭력적인 구애와 상대방의 수동적인 수용을 그린다. 이 텍스트들은 이성애관계의 위계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잔인하리만치 위계화된 연애 관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야오이에서 여성의 숭배대상은 여전히 남성이며 공수라는 이름의 커플관계 이성애적인 위계를 재탕한다. 그러나 야오이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열정과 위계적 에로티시즘이라는 것을 아주 대담하게 직시한다. 얼마나 대담하게? 기존의 이성애 각본과 숭배 대상으로서의 남성이 우스워질 만큼. 지배적 사회규범 밖의 여성들이 만든 자체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야오이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전복성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여기부터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이런 식의 보편적인 '썰'은 재미가 없다. 이 흥미로운 불건전한 코드를 가지고 어떻게 놀 수 있나, 라는 문제가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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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채널넷 (www.unninet.co.kr) 2006년 7월 특집 "야.오.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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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17:25 2010/02/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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