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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한겨레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0. “아니 대가리가 왜 이렇게 작아.” 몇 년 전 배우 이나영을 우연히 조우하곤 건넨 첫 마디다. 그렇다. 이런 망발이 있나. 허나 곤조도 야지도 아니다. 나, 그런 거 없다. 그거부터 보이는 데 어떡해. 대형유인원의 두개골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소형인데. 그렇다고 두상 협소해 공기저항 작겠군. 이럴 순 없잖아. 담고 있진 못하는 성정이고. 하여 하릴없이 그렇게 뱉어져 버렸다. 건방도, 반감도 아니다. 그저 판타지가 없을 뿐.

 
» 김어준이 만난 여자
 
 

말난 김에 연예인 바라보는 내 감각 일반 좀 털어놓자. 참고하시라고. 예를 들자면, 한예슬. 난 그녀가 웃기다. 가소롭거나 같잖단 게 아니라, 코믹하다. 자기가 너무 예뻐 스스로 못 견뎌 하는 표정들 목도하면 박장대소하고 만다. 다 큰 어른이 자기가 너무 대견해. 그거 참 웃기잖아. 또 예를 들면 비. 한때 그리 기특했던 청년이 제 성공에 겨워 어느 순간 느끼해져 버린 걸 발견하고 나면 주섬주섬 애처롭다. 그 지성의 성장지체가. 뭐 하여간 대충 그렇다. 게다가 난 그들 빨아주는 거, 못한다. 기스 방지용 뺑끼칠 해주고 그 대가로 면접권 확보하는 상부상조, 그거 못 한다고. 구강흡인력, 것다 못 쓰겠다고. 남세스러워서. 하여 이 짓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초장부터 우려된다. 하지만 사기 칠 순 없잖아.

 

난 또 영화라는 상품에 우리 사회가 무슨 공공의 부채 따위 지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다른 장르보다 더 각별한 예우가 마땅하단 생각도 않는 종자다. 영화 싫다는 게 아니다. 영화 참 좋다. 다만 영화라고 유독 위대할 건 없다 여길 뿐. 실은 영화 안목도 별반 없다. 임권택이 왜 거장인지도 모르고 박쥐가 왜 상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리 길게 주절거리는 건 뭐 대단한 자랑이라서가 아니라 향후 진행할 인터뷰들이 필연적으로 가질 한계부터 자백해두려는 게다. 그래서 용서해달란 게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볼 테면 보고 말라면 말란 강짜 되겠다. 자 그럼 그 첫 번째, <하녀>의 전도연.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1. 그녀를 만난 건 어느 오후의 삼청동 모 카페.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채 안 된다. 그나마 전후로 사진 박느라 부산떨고 나니 내 기준으론 대면이 거의 찰나다. 시간은 또 어찌 그리 야박하게 관리하는지. 사람 만나러 갔는데, 배우 하나가 스케쥴 콘베어벨트 타고 스르륵 통과한다. 씨바 이게 뭐 인터뷰야. 그냥 구경이지. 이따구 공장체제로 찍어내니 매체 인터뷰가 죄 뻔할 밖에. 어차피 서로 장사면서. 상도의가 없어, 조또. 그녀 책임은 아니다만 하여튼 이 시스템, 지랄 같다. 하여 당 인터뷰 목표는 애당초 단출했다. 한 가지만 묻고 오자, 한 가지만. 전도연은 어쩌다 배우가 되어, 어떻게 탑이 된 건가. 그러고 보니 아따 길게도 투덜댔다. 이제 진짜 가 보자.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2. 전도연, 코 앞서 보니 눈주름, 적당히 자글거린다. 미안타. 눈부시다 못 해줘서. 하지만 눈 안 부신 데 어떡해. 다만 묘하게 마음 놓게 만든다. 사람 같아서. 어쨌거나 대뜸 임상수, 싸가지 없지 않냐 부터 물었다. 감독이 어떤 이인지 이해해야 그 디렉션도 온전히 이해할 테니. 그렇게 임상수 받아들인 방식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실은 그게 내가 임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라서. 한국적 가부장 규범과 위계, 한국적 영화 문법과 관습이 요구하는, 그 없어도 좋을 싸가지가, 그의 영화엔 없다. 윤리나 도덕 생략하고 타고난 제 동물적 템포로 그냥 혼자 가 버리는 그거. 이율배반 같겠으나 동일 맥락에서 난 이창동이 좋다. 왜. 그는 없어도 되는 싸가지까지 있어서. 우하하.)

 

아니란다. 자기도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여리고 섬세하고 따뜻” 하단다.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쿨한 척” 하는 거란다. 오히려 “소심해서 잘 삐진” 단다. 그저 “소통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관계 맺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러는 거란다. 자기도 처음엔 걱정했단다. 머리 좋은 감독이 “뱀처럼 교묘하게 배우를 이용할까봐”.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 더란다. 그래서 좋았단다. 호. 감독더러 잘 삐진다니. 쿨한 척 하는 거라니. 그 판단의 옳고 그름 떠나 제 의견 피력에 유불리 따지지 않는다. 논평 이전에 리턴 피해와 챙길 잇속 계산이 먼저기 십상인데. 이거 맘에 든다. 잔머리가 없잖아. 특히 몸으로 부딪는 게 좋다는 대목,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일단, 드러낸다. 논리가 아니라 몸과 직관으로 세상 상대하는 이들의 기호. 확인 차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감독도 말로 설명치 못할 때는. “부딪혀 보면 알아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감독과 그의 디렉션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읽는다는 거, 이거 몸으로 세상 체득하는 자의 독법.

 

그럼 전작 감독 이창동과 차이는 뭐냐 물었다. 이렇게 푼다. “인간을 보는 것과 인간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것”. 전자는 이창동, 후자는 임상수. 동의, 안 된다. 물론 내 동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정치하지 않아도 제 언어만 있음 족하다. 그러나 이건 전도연의 언어 같지 않다. 차용의 냄새 난다. 졸라 다그치려다 말았다. 그 정도 폼도 못 봐주면 담 인터뷰는 아예 안 잡힐 것 같아서. 아, 타협하는 나. 대신 그렇게 이해해둔 감독과 그의 지시가, 도저히 이해 안 갈 때는 어찌 하냐고 물었다.

 

“저는 감독님에게 100퍼센트 의존적인 배우거든요. 끊임없이 감독님에게 확인을 하죠. 저의 불안이나 저의 의심을. 어느 순간 감독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인물이 받아들여져요. 그 인물을 100퍼센트 알고 연기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그 애를 좀 알 거 같아지면 영화가 끝나는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그 인물과 가장 유사한 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끝날 때 마다 제 안에서 뭐 하나씩 찾는 거 같아요.”

 

그렇군.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걸 퍼다 쓰는군. 그렇지만 그렇게 묻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는.

 

“전 이해를 못하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못 해요. 전 항상 감독님이 저를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저는 다 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해요.”

 

오, 감독이 자신을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태도. 브라보. 이거, 배우 전도연 최고의 미덕이라는 데 한 표다. 그렇지. 배우란 그런 거지. 영화의 서사와 인물 위해 제 한 몸 고스란히 빌려주는 이들. 그게 재능 아니라 무슨 벼슬인 줄 아는 배우들 하도 부지기수라 이 대목에서 아싸 한 번 외쳐줬다. 그런 그녀에게 “전도연, 벗었다” 란 타이틀로 스타로서의 노고를 칭송해마지 않는 기사들, 얼마나 웃긴가. 스타라서 어쩌라고. 그들 찌찌는 세 갠가. 관람 가게. 아님 스타가 벗어줘 황송하나. 어떻게. 커튼 들고 달려가 줘.

 

이 대목서 궁금했다. 근데 이 여자, 자기가 그렇다는 걸 어찌 알고 배우가 된 거지. 그녀, 이렇게 답한다. “어쩌다 보니깐 됐어요.” 푸헐. 제 성공의 몇 할을 운의 몫으로 돌리느냐 하는 데서 자의식과잉의 정도가 드러나게 마련. 그러더니 이렇게 이어 붙인다.

 

“꼭 되어야겠다는 목표, 이런 거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TV에도 나오고 또래 보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런 게 그저 좋았어요. 저는 대개 평범한 애여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어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뭐 안 되면 결혼하면 되지 하고. 일이 좋아서여서도, 즐거워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불평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그럼 대체 자기 안에 배우가 있단 걸 언제 스스로 자각 한 건가.

 

“영화를 하면 감독이 신이잖아요.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시대로 따랐어요. 그런데 <해피엔드> 정지우 감독님과 일하면서 내 생각을 말하고 그 사람이 내 생각을 받아주고, 그렇게 서로 동의를 구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찍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사람들은 <해피엔드> 찍을 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래서 조명하시는 분이 어린 것이 욕심이 많네... 하셨었어요. 왜 보통 베드신 그런 데서 많이 감추려고 그러자나요. 제가 안 그러는 걸 욕심이라고 보셨나 봐요. 근데 전 감독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해 뭔가 만들어 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처음으로 영화가 재미있어 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오라. 그랬던 거구만. 그녀, 애초 직장인이었던 게다. 취직은 어쩌다 보니 타고난 제 자산 일부가 우연히 해당 직종의 요구조건을 적정 수준 만족시켜 가능했을 뿐. 그렇게 현장에 출근하는 연기 직공이었던 게다. 그러던 어느 날 최초로 공장장과 소통하다 자신이 주문받은 부품만 찍어내는 직능공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까지 가능하단 사실에 신이 난다. 그리하여 연예인 전도연, 배우 전도연으로 각성이 시작된다. 이쯤에서 확인사살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뭐를. 글쎄 보면 안다.

 

무대 위에선 배우지만 끝나면 내려와야 하는 건데, 안 내려오는 이들 많다. 당신은 어떤가.

 

“저는 일을 안 할 때는 난 배우라는 걸 인식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전 평범해요. 평상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지 하는 것도 없어요. 물론 카메라 앞에서는 예쁘고 싶지만.”

 

그렇군. 그녀는 비어 있군. 이거 칭찬이다. 복이다. 배우가 저를 비워 인물에게 제 한 몸을 빌려주는 데 과잉자의식만큼 후지고 같잖은 방해물도 없으니까. 그럼 어디까지 비어 있는 걸까. 노무현을 물었다. 좋다, 싫다 없단다. 이명박은. 마찬가지란다. 4대강은. 생각해 본 적 없고. 투표는. 아빠 때문에 한두 번 해봤단다. “자고 있는 데 나가서 1번, 1번, 1번, 2번 찍어라 해서.(웃음)”

 

이건 섹시하지 않다. 모든 배우에게 투사되라 요구할 순 없다. 그럴 수도, 필요도 없다. 허나 지들은 시민 아닌가. 소속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거,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품성 탓으로 양해하기만 하고 말기엔 심통난다. 왜. 부러워서. 그런 배우들 가진 나라들이.

 

이제 그런 그녀가 <하녀> 은이를 어찌 받아 들였는지 물을 차례. 어쨌거나 <하녀> 덕에 만났으니 서비스는 해야지. 너무 갑작스러워 가장 난감했던 마지막 장면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은이는 뭘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애가 아니에요. 그런 의식이 없어요. 병식이는 자식을 검사로 키우려는 게 있었고, 해라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인데, 은이는 지켜야 하는 그 무언가가 없는 애에요. 그냥 그게 좋아서 뭔가를 하지. 그런데 처음으로 남이를 통해 예쁘고 친절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불친절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친절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그런 희망이 그렇게 처절하게 짓밟혔을 땐,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 안 갔는데 영화를 끝낼 즈음에는 저도 그럴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전도연이 제 몸에 들인 하녀다. 인간의 하녀본성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건 감독 구라가 감당할 몫이니까. 난 배우 전도연만 궁금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질투 나는 배우 있느냐 물었다. 콤플렉스 좀 엿보려고. 그녀의 대답.

 

“난 내가 좋아요.”

 

우하하하.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한 마디. 이 자기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무지하게 따져보고 싶었으나, 그 순간 스태프가 날 잘랐다. 그만 나가란다. 우라질. 이 기사 나가면 다음 기회나 있으려나.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3. 전도연 어떤 배우냐는 내 질문에 이창동은 이렇게 한 줄 요약했다. “몸이 악기야.” 무슨 말인지 만나 보니 알겠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상 읽고, 읽은 그대로 제 속에서 퍼내, 야로 없이 액면가로 부딪히는 거, 그게 그녀 방식이다. 그러니 실은 그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전도연 속에서 전도연을 길어낼 뿐. 그 방식으로 그녀, 정상에 섰다. 하여 배우 전도연에 대한 내 버전 한 줄 요약은 이렇다.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PS - 한겨레, 잘하자. 우리, 진짜 인터뷰 좀 하자고.

 

글 김어준 딴지일보 종신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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