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임경선 님
- 씨앗(산길)
- 2010
-
- [우석훈 칼럼] 이마트 피자 ...(1)
- 씨앗(산길)
- 2010
-
- 박휘순의 노래 개그(1)
- 씨앗(산길)
- 2010
-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 씨앗(산길)
- 2010
-
- 현실, 받아들임, 지나감
- 씨앗(산길)
- 2010
그 눅눅한 느낌 이제 놔주세요 | |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
|
어렸을 적 사랑도 못 받고 결혼도 실패하고 외롭고 자책감만 듭니다
Q 저를 괴롭히는 문제를 하나씩 꺼내볼게요. 저는 4년 전 결혼해 지난 연말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혼하게 된 이유는 남편의 자격지심과 그것을 못 견뎌낸 저의 답답함 때문입니다. 그는 성실하고 우직하지만 공부도 많이 못 했고 내성적이라 펜대 굴리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두려워하며 집안 대소사나, 경제적인 부분들을 다 저에게 맡겼죠. 어느덧 남편은 의지가 안 되고, 상의도 안 되고, 점점 대화도 없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혼자 된 지 반년. 다시 시작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문득 외로워지면 전남편이 저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납니다. 이렇게 실패한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도 커지고요. 저의 성장배경도 순탄치는 않았어요.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님과 저에게 당연하다는 듯 많은 걸 요구하는 형제들. 하지만 전 어떤 문제든 나 말고는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며 늘 착한 척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정작 제게 도움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주변 친구들도 시집가서 애 낳고 사니 만날 상대도 변변치 않고 동호회는 나가지만 그때뿐이고 마음속 평화를 느낄 만한 대화 상대가 없다는 게 정말 외로운 것 같아요. 속으로 곪아 있는 것들(나의 결혼 실패,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나, 그리고 착한 척, 괜찮은 척하는 나)을 정말 탈탈 털어내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자꾸 이런 안 좋은 상황들이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에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A 증상이 참 다양하시군요. 일단 자책감에 대해. 이런 안 좋은 상황들이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이 괴롭다고요? 무슨 소리예요. 불가항력인 부분 빼고 그거 대충 내 탓 맞아요! 나 자신을 너무 자학하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자학하면서도 아무 깨달음이 없는 것을 고민해야지요. 제스처로서의 자책이 아닌, 우울한 감상에 그저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닌, 제대로 후회할 건 후회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서, 나는 진짜로 어떤 인간인지를 파악해 이걸로 향후 인생에 분명한 차이를 줘야 합니다. 큰일을 겪고 나서도 자신의 행동들을 되짚어보지 않고 훌훌 털고 잊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하고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착한 사람으로서 늘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다 보면 겉으로는 자학 모드일진 몰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 말고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 싶어 자신에게 냉정하게 못 굴며 방어적이 되기 십상이죠. 상처 받은 마음속을 들쑤시면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 같다고요? 아니죠. 염증처럼 부풀어오른 감정들이 가라앉고 생각의 ‘맥’이 조금씩 잡히리라 믿습니다.
분노와 무기력감에 대해. 자기성찰이 끝나도 분노와 무기력감이 남아 있을 땐, 실천이 쉽진 않겠지만 나를 괴롭힌 것들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아주 사사로운 것이라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리스트업해서 가능한 한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저는 고통에서 사람을 살려주는 것은 어쩌면 속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뭐든지 좋으니까 사사로운 욕심, 욕망, 욕구, 가령 뭘 먹고 싶다, 사고 싶다, 가고 싶다, 가지고 싶다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사람은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기를 가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런 행동들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경박한 대리만족일 뿐이라고 무시했는데 지금은 내 ‘리노베이션’ 작업의 강약을 조절해주며 에너지와 자극을 주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지혜이자 보존본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나를 위해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다는 욕망 - 쉬울 것 같죠? 의외로 안 쉽답니다. 내가 뭘 즐거워하는지 아는 자기파악 능력, 그리고 스스로를 정말로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실천 능력이 있어야 하죠. 내가 나 스스로를 ‘접대’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먼저 대접해주지 못하니까.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 잠 안 오는 밤에는 이 외로움이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닐까 불안해집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남자도 없고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보람을 느낄 일도 없고. 하지만 잘 따져보면 외롭다는 기분이 참 씁쓸해지고 비통해지는 건 남과의 비교에서 외로움이 더 격해질 때 그렇게 됩니다. 저 사람은 멋진 애인이나 남편,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한데 난 왜 이 모양이냐 싶으면 외로움은 이내 자기연민과 자학으로 빠져버리지요. 알고 보면 남자친구나 남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외로움이 있을 텐데요. 그렇다고 이럴 때 누가 와서 손을 뻗으며 구제해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특히나 희망을 포기하고 피해의식을 느끼며 ‘난 혼자야’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기꾼 외엔 다가오는 사람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내 눈으로 찾아내서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밖엔 없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에겐 내가 필요가 없습니까!
누구에게나 ‘안 좋은 시절’이라는 건 있지요. 그 눅눅한 느낌, 저도 잘 압니다. 자책감, 분노, 무기력감, 외로움. 한데 어쩌나요. 정말로 착한 인간들은 자책을 하면서 깊은 성찰을 하고, 화를 바르게 냄으로써 강해지고, 슬픔을 절제하면서 깊어지고, 외로움은 오롯이 나의 것임을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갑니다. 부디 그 뒤엔 끝난 사랑, 끝난 결혼, 그리고 서글펐던 어린 시절조차도 이젠 놔주시지 않으렵니까?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