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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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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노점상들은 "청계천과 같은 노점의 거리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당신들이 거리로 쫓겨오면 우리노점상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습니다" 라는 가슴아픈 농담으로 답하며 노동형제들과 연대투쟁가를 함께 부른다.
전주희 pwc99@jinbo.net
김종상(노동자의 힘 회원, 노점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과음을 하고 지치도록 일을 했어도 다음날 아침은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었는데 요즘 아침이 그렇지 못한 것은 나를 아니 우리들
을 중압감에 몰아넣는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선명하
게 기억나는 화제도 있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주제도 있었다. 부랴부랴 씻고 아
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청계천으로 나가면 동료들은 일찌감치 좌판을 펴놓
고 개시는 벌써 했다고 뽐내기 일쑤다.
내가 좌판을 열고 있는 도로변 삼일 아파트에는 빈집임을 알리는 붉은
색 '공'자가 흉물스럽게 쓰여 있다. 삼일아파트 뒤편은 한 두 집만 남겨두고
철거가 이미 완료된 상태다.
옛날부터 서민들이 살면서 청계천 변에 좌판을 열어 삶을 이어가던 곳. 1920∼
30년대에 지어졌다는 기와집들. 이제는 사진에서나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여보세요, 중노련입니다."
"본분데요, 종로지역이 터졌습니다."
"어떻게요."
"종각지부에 노점금지 표지판을 보도에 설치한답니다."
"순회투쟁단 보내주세요. 지역차량도 함께요."
"예, 알겠습니다."

불같은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월드컵을 앞두고 전국노점상연합은 순회투쟁
단을 만들어 서울 각 지역을 수시로 돌며 전면적인 단속에 대비하고 있다.
변변치 않은 직장 하나 잡지 못해 청계천과 같은 재래시장에 어렵사리 자리 잡
은 노점좌판을 생명줄 삼아 열심히 살아가려는데 정부에서는 왜 이리 철거일변
도로 단속만 하려는지…. 가진 자들에게 우리들과 같은 노점상들은 거리질서
를 어지럽히고 외국손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서울의 모습인지라? 더군다
나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를 치르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점상들의 생
존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리라. 우리와 같은 노점상들은 단속과 철거의 대
상이지 행복한 미래를 머리 맞대고 함께 설계해야 할 대화의 상대는 아닌 것이
다.
그렇게 노점상들이 지저분한 존재일 뿐인가? 진정 거리의 노점상들이 외국손님
들에게 보이기 싫은 애물단지일 뿐인가? 정부는 우리 노점상들을 떳떳하게 보
여줄 당당함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민중들이 살아 숨쉬며 생활하는, 있는 그
대로의 모습에서 외국인들은 진정한 삶의 모습을 접하길 바라고 그것으로써 한
국이라는 나라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길 바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참 문
화는 자본에 의해서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눈요깃감에서보다는 자신의 삶을 열
심히 일구어 나가려는 민중들의 삶터에서 더 아름답게 꽃피워진다는 사실을 관
료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을 앞두고 단속을 당해야 하는 노점상들에게는 또 하나의 걱정
거리가 있다. 대책 없는 단속은 막말로 대가리 박으며 막아내면 되지만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공기업민영화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제정책으로 인
해 거리로 내쫓기는 우리의 이웃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해고된 노동
자들은 잘만 비벼보면 차비정도는 벌 수 있는 청계천과 같은 재래시장으로 모
여들지는 않을까?
실제로 집회장소에서 "까짓 거, 해고되면 노점이라도 해야지" 라는 농담을 듣
곤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노점좌판이 넘쳐나는 거리에는 일터에서 쫓겨 온
동료들을 맞이할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없다. 우리는 해고된 노동형제들이 노점
의 거리를 기웃거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형제들의 일
터를 지켜달라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좋다. 도시빈민 노점상
들이 변혁의 한 주체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노점상들은 "청계천과 같은 노
점의 거리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당신들이 거리로 쫓겨오면 우리노점상들
의 생존권이 위협받습니다" 라는 가슴아픈 농담으로 답하며 노동형제들과 연대
투쟁가를 함께 부른다. 오늘은 한 명이었지만 내일은 백 명이라는 힘으로 달려
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노동자의 힘> 홈페이지 http://www.pw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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