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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 -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 레바논 파병 지지는 치명적 실수
최일붕
조지 부시와 럼스펠드는 이슬람이 '파시즘'이라고 주장한다. 무슬림 전부를 파시스트로 싸잡아 매도한다는 점말고도 이런 주장은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 오늘날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인도의 쉬브 셰나 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파시스트들은 단순한 극우가 아니다. 단지 혐오스런 인종차별주의자인 것만도 아니다. 단순히 소수자와 좌파에 대한 혹심한 억압과 강경한 탄압을 자행하는 권위주의자들인 것만도 아니다.
파시스트들은 민주주의를 ― 자유민주주의조차 ― 파괴하고,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계급 조직을 분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들은 선거를 폐지하고 싶어하고, 사회 대다수가 누려 온 자유를 전면 공격한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활동한다. 히틀러는 아우슈비츠라는 홀러코스트 공장을 지어 유대인 6백만 명을 도살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 대중에 기반을 둔 독특한 정치 운동이었다. 물론 소수 대자본가 개인들이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해 자금을 제공하곤 했다. 또, 파시스트 운동이 노동계급의 비조직 또는 주변적 인자들을 일부 포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노동계급 운동의 상당 부분을 포섭한 적은 없다.
파시즘의 주요 지지 기반은 언제나 중간계급이었다. 중간계급은 매우 모순된 계급 지위와 사상이 그 특징이다. 그들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며 심각한 위기 때 양쪽 모두를 비난하며 오락가락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효과들 때문에 삶이 어그러지지만 그에 맞서 싸울 조직은 없는 각종 자영업자들(소기업주, 농부, 소상점 주인 등)과 조직되지 않은 관리직·전문직 종사자들(노조원 아닌 공무원, 다수 변호사와 의사 등)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집단적 힘도, 대기업주들의 경제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의 인생은 심각한 경제 위기와 대량 실업으로 망가질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대자본가를 원망하지만, 또한 노동자들도 원망한다. 특히 노동조합과 좌파를 증오한다.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에 더욱 끌린다. 이 때 파시스트들이 이들의 절망을 표현하는 기치를 제공하고 이들의 분노를 돌릴 속죄양을 제시한다면 대중적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
파시즘 운동은 중간계급의 이러한 매우 모순된 처지와 사상의 정치적 표현이다.
그래서 모든 권위주의 정권이 파시즘인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도 파시즘은 아니다. 임지현 교수는 박정희의 ‘대중독재’론을 주창하고 있지만, 박정희는 중간계급 대중 운동을 구축하지 않았다.(새마을운동은 국가가 통제한 관치 캠페인으로, 포퓰리즘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박정희는 데마고기로 재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재벌을 옹호했다. 좌파적 미사여구는커녕 일본 메이지 유신 식의 이데올로기로 통치했다. 나치당의 정식 명칭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이고, 아우슈비츠 정문에 걸린 표어가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인 것과 비교해 보라.
박정희는 또, 비록 어용이지만 한국노총이라는 노동조합 기구도 존속시켜야 했고, 국회의원 선거도 허용해야 했다.
아우슈비츠
파시스트들이 중간계급 불행의 책임을 전가하는 대상이 꼭 유대인일 필요는 없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독일 파시즘(나치)과 달리 유대인을 속죄양 삼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파시스트들은 대부분(가령 인도에서도) 오히려 무슬림을 증오한다.
그러나 모든 인종차별적 정당이 파시스트인 건 아니다. 미국 공화당은 유색인종과 무슬림을 천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다. 공화당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대자본가들에 기반을 두고 있고, 또 대중 운동도 아니다.
또한, 모든 민족주의 정치세력이 파시스트인 것도 아니다. 2005년 봄 다양한 아나키스트들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난한 민주노동당 내 좌파 민족주의자들을 파시스트로 매도했는데, 노동계급 정당 또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거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염원하는 좌파 지식인들이 나치와 비슷한 성격의 세력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파시즘이라는 생각도 터무니없다. 이슬람주의(정치적 급진주의 이슬람)에 한정해 살펴보더라도 헤즈볼라나 하마스 등을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빗대는 건 아무래도 우습다. (더 자세한 논의는 7면에 실린 아닌디야 바타차리야의 글을 보시오.)
제 1 차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부터 제 2 차세계대전 말기인 45년까지 세계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독재적 정치·경제·사회사상·정치체제의 총칭. 이탈리아의 B.무솔리니에 의해 처음 제창되어 체제가 확립되었다. 어원은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 묶음〔束〕이라는 뜻이었으나 결속·단결의 뜻으로 의미가 변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를 지칭하나, 대중사회이론이나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는 현대사회의 모든 강권적·독재적·비민주적 성격을 띠는 정치운동을 파시즘이라고 정의한다. 전쟁 이후로는 전체주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발생 배경〕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적 불안과 제 1 차세계대전 후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패전국 등의 정치·사회적 불안은 각종 혁명적 기운을 초래하였다. 이에 대한 극도의 반동적 경향에서 나타난 것이 파시즘이며, 그 원인은 근대사회의 위기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정치체제의 안정과 균형이 파괴되고 기존의 정치세력이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상실하였을 경우, 무정부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해 파시즘이 등장한다. 그 발생요인은 정치·사회적 배경과 경제적 배경으로 나눌 수 있다.
<정치·사회적 배경>
제 1 차세계대전이 종결된 1920∼30년대의 경제적 위기는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유럽에서는 민주주의의 전망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외부의 객관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① 국제적 대립과 전쟁 위기의 격화 ② 국내 정치의 불안정·부패·무능·비능률의 병리현상 ③ 각종 사회조직의 강화에서 오는 자율적 균형회복 능력 상실 ④ 정치적·사회적 집단간의 충돌 ⑤ 대량 실업 및 직능적 조직으로부터 탈락한 사람들의 출현 등이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사회혁명에 대한 불안이 싹트게 되고 노동자들의 조직적 투쟁에 대한 농민·도시의 프티부르주아의 반감도 거세어져 갔다. 지식인이나 기술자들의 허무주의 양상도 강해 전반적으로 정치나 사회사상의 회의와 절망이 증폭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국주의 전쟁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던 대다수 국가들은 권위적인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싹트면서 새로운 정치체제의 모색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정치·사회적 위기가 집중적으로 격화된 상황을 민주주의적 정당이 수습할 능력과 지도력을 상실하여 파시스트 세력은 노동운동의 분쇄와 의회민주주의적 정치질서의 부정이라는 극우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였다. 프티부르주아 세력에 정치적 기반을 둔 파시즘운동은 반혁명과 전투적 조직으로써 단기일에 사회안정을 기도하려 하였다.
<경제적 배경>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계기로 국가에 의한 경제 통제·감독을 행하는 형태로 발생하였고 무솔리니는 이러한 간섭주의를 혼합경제라고 불렀다. 전후의 몰락한 경제 위기 속에서 전통적 프티부르주아들은 점차 급진화되어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띠면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울었다. 이 중간 계층은 현상 변화의 열망을 교묘히 이용한 파시스트당의 지지기반이 되었다. 독점자본과 중간층을 포섭한 파시스트 운동의 결합 과정에는 노동자 계층의 오류와 패배가 존재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강대해져 가는 이 계층에 대항할 결집된 힘으로서 일당 독재의 형태를 필요로 하였다. 독일의 정치학자 C.슈미트는 파시즘 국가를 전체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국가가 사회·경제 모두를 관장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설명하였다. 시민적 자유와 노동자의 권리가 전면 부정되고 개인의 경제활동도 국가 이익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도 다르다. 파시즘은 사회주의와 달리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정치사상과 제도에는 반대한다. 그 점에서 반자본주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이나 파시즘의 진정한 대립개념은 사회주의 국가체제이다.
〔파시즘의 특성〕
반자유주의·반의회주의·반마르크스주의의 성격을 띠는 파시즘은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정치적 반동이 가장 극단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형태이다. 이론적 이성에 호소하지 않고 특정 계층의 미성숙과 후진성, 무경험으로 모험을 감행하므로 자본주의사회의 정신적 산물을 수용하기도 한다. 그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요약하면 ① 반합리주의에 근거하므로 광신적이며 독단적이라는 점 ② 불평등과 폭력이라는 2가지 기본원리로 인해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초래하며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부정한다는 점 ③ 단순한 정치제도라기보다 생활양식에 가까우며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점 ④ 엘리트에 의한 정치를 원리로 삼으며, 일당독재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점 ⑤ 행동규칙은 폭력과 기만에 중점을 둔다는 점 ⑥ 조직 및 관리 원칙은 경제와 관련되는 협동체국가이며, 경제는 국가관리의 자본 및 노동연합회로 세분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파시즘의 성립과 형태〕
파시즘의 발전과 독재 체제는 각 나라의 역사적·사회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르며, 그 민족적 특수성과 국제적 지위에 따라서도 다른 형태를 지닌다. 파시즘의 성립은 1920년대에 이탈리아·폴란드·헝가리·포르투갈 등을 시작으로 33년 독일, 38년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에스파냐 파시즘이 정권을 잡았다. 그 재편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① 선거 또는 대중적 기반의 확산을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독일·이탈리아) ② 우익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포르투갈·에스파냐·그리스) ③ 우익 권위주의 정권이 군부 또는 무장파시스트 세력의 친위쿠데타에 의해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경우(핀란드·헝가리·폴란드) 등이다.
<이탈리아 파시즘>
이탈리아는 가장 전형적인 파시즘 국가이다. 내셔널리즘의 호소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였고, 정치와 경제의 긴밀한 협동체계를 꾀함으로써 파시즘을 창출하였다. 이를 주도한 무솔리니는 <로마진군>을 행하여 계급 개념 위에 민족 개념을 두고 <아래로부터 형성, 조직된 국가>임을 주장하였다. 1922년 정권을 잡은 무솔리니는 자본가와 노동자 쌍방의 직업조합을 결성하고, 협동체 방식에 의한 국가로 개편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맨위에 <협동체전국협의회>가 있고 그 아래 설치된 22개 협동체의 개별적 주도권을 존중해주면서 국가 이익에 조화시키는 권한을 지녔다. 34년 2월 협동체에 입법권이 주어짐으로써 무솔리니는 강력한 국가건설과 세계진출의 꿈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1933년 1월 독일 나치스정권과 손잡고 에티오피아 침략, 국제연맹 탈퇴, <독·이·일> 3국동맹체결을 거쳐 제 2 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도국이 되었다.
<독일 나치즘>
1923년 나치당은 뮌헨에서의 궐기가 실패한 후, 패전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광범위한 중소생산자계층을 결집하였다. <국민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계급 일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29년 시작된 세계대공황은 나치당 세력확장의 요인이 되어, 32년 선거에서는 제 1 당이 되었다. 1930년대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할 능력을 잃은 지배층은 그 광신적 정치신조에도 불구하고 33년 1월 A.히틀러에게 정권을 이양하였다. 지배층의 낙관과는 달리 히틀러는 《바이마르헌법》 제48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활용, 모든 권한을 장악하여 33년 3월 2일에 제정된 <민족과 제국주의 위난 배제를 위한 법률>로 바이마르공화국은 붕괴되었다. 그 뒤 히틀러는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구축해 제 2 차세계대전을 준비하였다. 300개가 넘는 영방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이탈리아·프랑스와 같은 근대적 통일국가 형성이 민족적 염원이었다. 민족통일을 구호로 <게르만민족의 우월성> <피의 순결> <반유대주의>라는 독일 특유의 민족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본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이라고도한다.<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목표로 정권을 획득한 이탈리아·독일과는 달리, 메이지헌법〔明治憲法〕 체제 아래 <위로부터의> 강권적 국가체제를 형성하였다. 국가에 의한 경제의 감독과 통제의 강화, 침략적 민족주의·반자유주의·반사회주의 등의 사상교호,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 제정, 40년 대일본산업보국회 결성 등으로 천황제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여 1931년 만주침략, 33년 국제연맹탈퇴, 40년 독·이·일 3국동맹체결 등을 단행하였다.
<그 밖의 파시즘>
1920∼30년대에는 각 나라에서 파시스트 정권과 파시즘 운동이 잇달아 나타났다. 1920년 헝가리 홀티 정권, 28년 폴란드 피우스츠키 정권, 33년 포르투갈 사라자르 정권, 36년 에스파냐 프랑코 정권 등과, 제 2 차세계대전중 탄생한 칠레·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의 파시스트 정권이 있다. 이러한 정권들중 1936년 7월부터 39년 3월까지 공화주의자·사회당·공산당의 협력에 의해 탄생한 인민정부에 대해 일으킨 프랑코 우익 정부의 내전은 노동자의 저항 등 인민전선 정부측의 반격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그 밖에 정권 획득에 이르지 못한 파시즘 운동들이 일어났으나 제 2 차세계대전 후에는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예외적으로 프랑코 정권처럼 오래 살아남은 정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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