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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신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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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앞두고 우려 높아지는 극우파의 외국인 폭력
[정대성의 독일통신](5) - 월드컵 ‘축제’와 독일의 ‘숙제’
정대성 
6월이다. 며칠 뒤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꼽히는 월드컵이 개막한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지금 독일은’ 온통 축구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신문은 신문대로 쉴새없이 월드컵 관련 소식을 전하고, 방송은 방송대로 독일 팀의 상황과 월드컵에 참가하는 각국의 평가전을 신물나게 틀어댄다. 6월은 ‘축구 세상’이라는 ‘계시’라도 내려진 듯하다.

독일에 설치된 거대한 조형물
독일은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연방 정부는 “세계가 친구를 찾은 손님처럼”이라는 공식 슬로건을 내걸고, 무엇보다 지난 9.11 테러 이후 21세기 지구촌의 지표가 된 ‘테러의 시대’에 대비한 안전한 월드컵을 위해 만반을 태세를 갖추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에 총리에 따르면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축구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독일에서는 ‘친구를 찾는 독일 손님들’이 걱정할 만한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신나치 극우파 청년들의 외국계 독일인 공격 사건이었다.

4월 부활절, 베를린에서 멀지 않은 포츠담에서 이디오피아 출신의 독일인이 극우파 청년 2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 뒤에는 토고 출신의 한 흑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고, 5월 들어서는 베를린에서 이탈리아인과 터키 출신의 독일 정치인이 욕설과 집단 구타로 병원 신세를 졌다.

사실, 독일의 신나치와 외국인 폭력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일 통일과 경제침체가 맞물린 19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극우 세력과 그 폭력은 이미 고질적인 실업문제와 나란히 독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해 왔다.

반나치 집회
지난해 독일의 극우 폭력 범죄는 전년보다 23%가 늘어났고 극우파 관련 전체 범죄건수도 27%나 증가했으며, 신나치와 스킨헤드 같은 극우파의 숫자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는 민족민주당(NPD) 같은 극우정당이 일찌감치 지방의회에도 진출한 상태다. 인종주의에 기반한 지난 몇 달간의 극우 폭력사건은 죄다 구 동독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렇게 극우파의 외국인 폭력 문제가 연달아 언론을 장식하는 가운데, 최근 독일의 외국인 단체와 야당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는 일부 옛 동독 지방의 ‘외국인 위험지역’을 언급하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나치 폭력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단호한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부측에서는 독일을 ‘외국인 혐오국가’로 과장한다고 받아치며 월드컵 때 외국인이 독일 ‘전역’을 여행하는 데는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치 집회
하지만 신나치 조직들은 월드컵 기간의 ‘시위’까지 천명하고 있다. 특히 오는 21일 구 동독 지역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이란과 앙골라의 경기 때 이란을 응원하는 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대통령이 “유대인 대학살은 거짓”이고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극우파의 구미에 맞는 발언을 한 보답의 차원이다. 신나치들은 이번 월드컵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세를 과시할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신나치 시위는 대부분 훨씬 많은 숫자의 반(反) 신나치 시위대를 불러모았다. 설사 월드컵 때 극우파들의 시위가 열린다해도, 이성에 반하는 신나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 시민들이 극우파의 활보를 저지하기 위해 더 큰 시위대로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 극우파의 준동을 막아낼 근본적인 요소는 경찰 공권력이라기보다, 이성과 상식에 기댄 일반 시민들의 하나된 힘이기 때문이다.

신나치들은 '나치군대'를 공공연히 찬양한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에 독일 곳곳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의 안전 확보는 경기장 안팎의 안전 못지 않게 독일 정부가 명심할 ‘책임이자 의무’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외국인 혐오국가’로 비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극우 폭력으로 얼룩진 월드컵’이라는 오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독일의 극우파 문제는, ‘월드컵 기간’에 극우파의 외국인 폭력을 잘 막아내는 차원을 넘어, 신나치라는 독일의 고질적인 병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부의 솔선수범을 통한 전사회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각적으로 풀어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월드컵 ‘축제’보다 중요한 독일의 ‘숙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독일은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축구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겠지만, 나치와 히틀러의 전쟁으로 세상을 불안에 떨게 한 ‘어제’를 기억나게 하는 신나치 문제라는 ‘오늘’의 숙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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