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권 <광주학살과 서울 올림픽>, 인물과 사상사, 2003

 

[삼청교육대]

238p. 80년대에 저질러진 야만적 행위 가운데 광주학살 다음으로 잔인했던 건 아마도 삼청교육대에 의한 인권유린이었을 것이다.

 

239p. 각주. 조덕현 <삼청교육대 경험 40대 전,노씨 찬양 60대 치사>

서울신문, 1995.12.22 2면

 

239p. 단지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국인들이 그만큼 군사독재의 야만에 길들여진 나머지 인권유린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이었을까?

 

삼청교육. 8.4 계엄포고 제13호(불량배 일제 검거)를 근거로.

허삼수의 제안

삼청-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 삼청동 위치

8.1~11.27 4번의 단속, 6만여명 연행

3천여명 군사재판, 1만7천여 훈방, 3만9천여 삼청-

~81.1월까지 계속. 이중 7578명 계속 군부대 수용

 

241p. 국보위는 표면적으로 ‘사회악 일소’를 내세웠지만 확실한 정권장악을 위한 ‘공포분위기’ 조성과 정치적 보복의 목적이 더 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경찰서별 강제할당제였다.

 

동네 사람들의 평판, 사적 감정에 따른 고발에 의존, 외모불량, 과음의 이유로 삼청교육대.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대상지정.

즉석에서 미움을 사는 이들이 끌려감.

자장면 내기 화투판 구경하다 끌려가고, 패싸움 지켜보다 끌려가고, 경찰이 “야 XX년, 너 하나 죽이는 건 개 죽이기보다 쉽다”며 폭행

“인원이 부족하니 새마을교육(삼청교육) 받으러 가야겠다.”

노동운동 탄압용

70년대 말 파업 이끌었던 노조 지도자 등 191명 강제정화

70여명 합수부 고문수사, 19명 삼청교육대

 

243p. ...기합을 받다가 얼마나 맞았는지 아출혈로 죽어 실려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 안희정 교장에게 항의하다 제적

“불량학생을 학교가 교화시킬 생각은 안하고 삼청교육대로 보내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학교입니까”

생화수칙 제1조 “선동 및 도망치는 자는 사살한다”

언론의 왜곡보도 244~5p.

 

245p. 텔레비전은 신문들이 한 짓을 똑같이 반복해 여론조작을 꾀했는데, 텔레비전의 경우엔 신문에 비해 조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하나 있었따. 그건 바로 인터뷰였다. 입소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청교육은 정당화했지만, 입소자가 자신의 심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강요된 대사를 외우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주빈등록 등초본 ‘삼청교육 순화교육 이수자’

88.11.26. 노태우 삼청교육 희생자 명예회복, 피해보상 특별담화

2026명 보사 신청

~89년까지 피해신고자 3221명 <후유증 사망 200명, 2800명 장애자, 상해자>

예산부족을 핑계로 아무 보상 없음

13,14,15대 국회 특별법률안 제출, 자동폐기

소송제기 96년 법원 ‘손해배상 시효 만료’ 패소판결

2001.7. 정신적 위자료 지급 판결. 개인당 1천만~1천3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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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11:09 2013/12/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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