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떤 핸드폰을 살 것인가

 

2년간 써오던 스카이 핸드폰이 드디어 그 수명을 다했다.

AS를 받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용이 부담스럽다.

워낙 기계치다 보니, 새로 출시되고 있는 핸드폰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일동안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지만, 내 눈엔 죄다 그 놈이 그 놈일 뿐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란 고작,

우리나라 핸드폰이 노키아와 모토롤라에 밀리고 있다는 것,

VK핸드폰이 얼마전 부도를 내고 망해버렸다는 것,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용산 전자상가들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용산에 대한 온갖 비난을 꼼꼼히 읽었다해도

여전히 나같은 기계치들이 맘놓고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용산뿐이다.

갈수록 이태원 골목에 버금가는 호객행위에 애써 무관심한 척하며

순간 여기다 싶은 곳에 발길을 멈추고 들어가보기로 한다.

 

내가 요즘 가장 탐냈던 것은 VK핸드폰이었다.

경제적 형편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 그렇게 싼 가격에

괜찮은 디자인과 괜찮은 성능을 가진 핸드폰을 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나가던 벤처기업 VK의 갑작스런 부도는 우리나라 핸드폰 시장에 일대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았어도 나처럼 싼 가격 덕에 VK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용산을 둘러보며 느꼈던 많은 것들과 함께 더 큰 혼란을 줄 뿐이다.

VK에 대해 물어보면 미친놈 취급을 해버리는 용산 아저씨들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함께 말이다.

 

몇 주째 주말마다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핸드폰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모순들을 느끼게 됐다.

 

거대 대기업들 틈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던 작은 벤처기업 VK의 갑작스런 몰락,

소득 수준 이상의 구매를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출시된

각종 뽀대나는 멋진 신형 핸드폰들,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한 채 서서히 몰락해가는 거대 오프라인 전자제품 시장 용산의

썰렁한 모습들과 그곳에서 밥먹고 살아가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

어느 분의 말처럼 "없는 놈이 없는 놈 무시하고 사기치는 게 제일 기분 나쁘다" 는

명언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용산 전자상가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신용할 수 없는,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각종 거래행위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다녀올 수록 머리 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핸드폰이야 다른 부가기능 다 필요없고 통화와 문자보내기 정도만 잘 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아무리 굳게 다짐해봐도

기계의 튼실함과 판매가격 등을 고려해 볼때, 쉽사리 선택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음 주말에도 용산을 한 번 더 둘러볼 작정이지만,

인기 연예인들이 한껏 눈을 치켜뜨고 선전하는 여기저기 붙여진

신형 핸드폰 광고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라는 IT세계와 나와는 아무래도

가까이 할래야 도무지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