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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갑자기 울린다.
수신번호를 확인해보니 비정규직 교사로 교직에 나섰던 첫해에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그 녀석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녀석이다.
군대가기 전 한참 알바중이라며,
"첫 월급 타면 선생님 좋아라하시는 고기 사드릴게요!" 라고 했던 녀석인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그 전부터 받지 못했던 월급까지 합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떼였다며 울분을 토하던 녀석이다.
'드디어 월급을 받은건가..... 오늘 간만에 소주 한잔 하게 생겼네....'
라며 구닥다리 핸드폰을 조심스레 열었다.
"여어~ 왠일이냐, 떼인 월급 받아냈냐?"
"쌤... 안좋은 일로 전화한 거에요......."
덩치가 나와 비슷해서 100kg 클럽을 만들었던 녀석이라 성격도 나와 비슷하여
왠만한 일에는 우울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이상하다.
"쌤, 우리 2학년 때 가르치셨을 때, 재윤이 기억하세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키크고 대따 잘생기고. 왜, 뭔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자살했어요......"
뭔가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워낙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그렇게 친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성적 올려보겠다며, 특히 자기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다른 녀석들하고 다르게 늘 수업에 굉장히 집중하며 열심이었던 녀석이었다.
그 점때문에라도 아직 그 녀석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있을 정규직 교사 공개채용을 앞두고,
학교 비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빨갱이"라며 말이 많았고,
혹여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나에게
그렇게도 말이 없던 녀석이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쌤, 쌤이 영어 제일 잘 하고, 제일 잘 가르쳐요. 걱정마세요."
지금 듣자면 한없이 부끄럽고 부담되는 말이지만,
당시만 해도 녀석의 그런 한마디는 엄청난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었다.
(결국 그 해에 교장과 그에 기생하는 몇몇 선생들이 날 학교에서 내쫓았다. 결과적으로는 비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별한 경우 연속하여 계약을 하자는 조합원들의 요구로 나를 포함한 "빨갱이"로 찍혔던 비정규직 교사들과 함께 그 해 공개채용에서 떨어졌던 "교장에게 인정받은 교사들"까지 다시 2년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고, 이듬해 결국 "빨갱이"로 찍혔던 우리만 공개채용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되었다.)
"아직은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따 전화해줘."
그리고 오늘 밤 녀석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다시 전화했다.
"쌤, 나 소주 네병 마셨어....."
말이 좀 짧으면 어떠랴, 고작 열살 차이인데.
"그리고 많이 울었어요... 개새끼...."
여자친구 문제였단다.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자기를 멀리한 여자친구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고, 결국 양주 한병을 마신 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개새끼... 쌤, 나 막 욕나와요... 그 새끼가 졸라 미워요...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21살의 청춘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세상은 날 늘 억압하고 구속하려 하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나이다.
도무지 정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래서, 정답이 없어서 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아름다운 나이다.
하지만, 재윤이란 녀석은 결국 그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가끔씩 졸업생들을 만나거나, 아님 그들의 살아가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얼굴은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은 이상하게도 쓰려온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래서 너무도 많이 울었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녀석들이 겪고 있을 그 힘든 시간의 무게들이 나에게도 전해져옴을 느껴서일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 시간의 통로를 잘 극복하여 진짜 어른이 된다.
하지만 하나둘씩 낙오되어 가는 이들의 소식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낙오된 자들의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 낙오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고, 나의 친구들이었을 때,
슬픔은 고통이 되고, 눈물은 한여름 더위를 더욱 달구는 뜨거운 소낙비가 된다.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 산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녀석들에게 영어단어 몇 개, 수능문제 풀이 기술 몇 개 더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알쏭달쏭 도무지 이해를 못하게다는 녀석들 머리 속에
그 알량한 지식 몇 개 더 쑤셔넣어야먄
그게 진짜 참교사다, 라는 세간의 인식에 응하고자 나 또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그리 길지 않지만, 나름 경험해 온 삶의 무게들에 대해,
십 미터 먼저 달려온 인생의 선배로서,
삶에 관한 여러가지 단면들을 이야기해주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해서 녀석들의 삶은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랬다.
"쌤, 보고 싶어요....."
"그래, 나도.... 너희들 많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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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etarian_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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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좋은 소식이 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