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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자살하다

핸드폰이 갑자기 울린다.

수신번호를 확인해보니 비정규직 교사로 교직에 나섰던 첫해에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그 녀석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녀석이다.

군대가기 전 한참 알바중이라며,

"첫 월급 타면 선생님 좋아라하시는 고기 사드릴게요!" 라고 했던 녀석인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그 전부터 받지 못했던 월급까지 합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떼였다며 울분을 토하던 녀석이다.

 

'드디어 월급을 받은건가..... 오늘 간만에 소주 한잔 하게 생겼네....'

라며 구닥다리 핸드폰을 조심스레 열었다.

 

"여어~ 왠일이냐, 떼인 월급 받아냈냐?"

"쌤... 안좋은 일로 전화한 거에요......."

 

덩치가 나와 비슷해서 100kg 클럽을 만들었던 녀석이라 성격도 나와 비슷하여

왠만한 일에는 우울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이상하다.

 

"쌤, 우리 2학년 때 가르치셨을 때, 재윤이 기억하세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키크고 대따 잘생기고. 왜, 뭔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자살했어요......"

 

뭔가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워낙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그렇게 친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성적 올려보겠다며, 특히 자기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다른 녀석들하고 다르게 늘 수업에 굉장히 집중하며 열심이었던 녀석이었다.

그 점때문에라도 아직 그 녀석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있을 정규직 교사 공개채용을 앞두고,

학교 비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빨갱이"라며 말이 많았고,

혹여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나에게

그렇게도 말이 없던 녀석이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쌤, 쌤이 영어 제일 잘 하고, 제일 잘 가르쳐요. 걱정마세요."

 

지금 듣자면 한없이 부끄럽고 부담되는 말이지만,

당시만 해도 녀석의 그런 한마디는 엄청난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었다.

(결국 그 해에 교장과 그에 기생하는 몇몇 선생들이 날 학교에서 내쫓았다. 결과적으로는 비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별한 경우 연속하여 계약을 하자는 조합원들의 요구로 나를 포함한 "빨갱이"로 찍혔던 비정규직 교사들과 함께 그 해 공개채용에서 떨어졌던 "교장에게 인정받은 교사들"까지 다시 2년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고, 이듬해 결국 "빨갱이"로 찍혔던 우리만 공개채용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되었다.)

 

"아직은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따 전화해줘."

 

그리고 오늘 밤 녀석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다시 전화했다.

"쌤, 나 소주 네병 마셨어....."

말이 좀 짧으면 어떠랴, 고작 열살 차이인데.

"그리고 많이 울었어요... 개새끼...."

 

여자친구 문제였단다.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자기를 멀리한 여자친구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고, 결국 양주 한병을 마신 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개새끼... 쌤, 나 막 욕나와요... 그 새끼가 졸라 미워요...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21살의 청춘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세상은 날 늘 억압하고 구속하려 하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나이다.

도무지 정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래서, 정답이 없어서 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아름다운 나이다.

 

하지만, 재윤이란 녀석은 결국 그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가끔씩 졸업생들을 만나거나, 아님 그들의 살아가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얼굴은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은 이상하게도 쓰려온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래서 너무도 많이 울었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녀석들이 겪고 있을 그 힘든 시간의 무게들이 나에게도 전해져옴을 느껴서일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 시간의 통로를 잘 극복하여 진짜 어른이 된다.

하지만 하나둘씩 낙오되어 가는 이들의 소식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낙오된 자들의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 낙오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고, 나의 친구들이었을 때,

슬픔은 고통이 되고, 눈물은 한여름 더위를 더욱 달구는 뜨거운 소낙비가 된다.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 산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녀석들에게 영어단어 몇 개, 수능문제 풀이 기술 몇 개 더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알쏭달쏭 도무지 이해를 못하게다는 녀석들 머리 속에

그 알량한 지식 몇 개 더 쑤셔넣어야먄

그게 진짜 참교사다, 라는 세간의 인식에 응하고자 나 또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그리 길지 않지만, 나름 경험해 온 삶의 무게들에 대해,

십 미터 먼저 달려온 인생의 선배로서,

삶에 관한 여러가지 단면들을 이야기해주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해서 녀석들의 삶은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랬다.

 

"쌤, 보고 싶어요....."

"그래, 나도.... 너희들 많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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