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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경제학의 이단아

좌파경제학의 이단아

세계경제위기 분석에서 브레너가 거부하는 이론과 개념들은 무엇인가


사진/ 브레너는 아시아 경제위기 또한 제조업 자본간 경쟁 격화의 결과라고 본다. 주가 폭락에 울어버린 홍콩의 주식중개인.(AP 연합)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로버트 브레너는 <혼돈의 기원>과 <호황과 거품>(Verso, 아침이슬 근간)을 통해 오늘 세계경제위기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롭고 중요한 논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는 없다?

첫째, 브레너는 얼마 전까지 좌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통념으로 통하던 독점자본주의론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같은 단계론적 자본주의관을 거부한다. 브레너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경쟁이 독점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경쟁이 오히려 더 격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우리나라 좌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프랑스의 조절이론 역시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경쟁적 조절’에서 ‘독점적 조절’로의 이행이라는 단계론적 도식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거부한다.

둘째,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는 노동자 투쟁에 따른 이윤압박이 아니라 국제적 자본간의 경쟁 격화에 따른 제조업 제품가격의 하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노동자 투쟁은 단기적·국지적으로는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있어도, 장기적·체제적으로는 이윤율 저하와 이에 따른 경제위기를 야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브레너는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위기를 이른바 포드주의(Fordism)의 진부화에 따른 생산성 위기가 초래한 임금상승-이윤압박이나 노동자 투쟁의 격화에 따른 임금상승-이윤압박으로 설명하는 신리카도주의자들 또는 네그리(A. Negri) 등 좌파 경제학자들의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셋째,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론의 화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문제설정 자체를 거부한다. 브레너의 현대자본주의 분석에서 다국적기업, 금융세계화, 헤지펀드 등의 논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의 구조와 동학을 국민적 자본주의들간의 불균등결합 발전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이 점에서 브레너는 요즘 우리나라 좌파 경제학자들이 애호하고 있는 월러스틴이나 아리기 등의 세계체제론과 거의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넷째, 브레너는 또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책임론 및 이와 함께 거론되는 자본주의 유형학의 ‘라인자본주의’ 대안론(자본주의를 영미형 대 라인형으로 구분하고 주주 중심과 시장절대주의를 내세우는 영미형보다 노사타협과 국가의 시장규제를 중시하는 라인형을 한국사회가 지향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입장- 편집자)도 정면으로 비판한다. 브레너는 신자유주의는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1965∼73년 이윤율의 저하와 함께 이미 시작된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대응이라고 본다.

다섯째, 브레너는 얼마 전까지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통념이었던 신경제론 혹은 디지털혁명론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브레너는 신경제란 한마디로 금융거품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이 점에서 마이클 만델 등의 ‘인터넷 공황론’과도 명백히 구별된다.

신경제는 금융거품에 불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가 지배한 기존 좌파 경제학의 주류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이단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경쟁을 자본주의의 고유한 동학의 원천으로 보고, 부르주아사회의 총괄로서의 자본주의 국가의 복수성을 강조하며, 자본주의 공황을 자본 자체에 내재한 모순의 필연적 폭발로 간주하는 점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론을 오늘 세계경제위기 분석에 적용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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